김진돈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으로부터 들어본 `팔과정'
팔과정은 신복리와 합쳐져서 팔복동 동명이 탄생됐다. 즉 팔과정은 글자 그대로 이곳 팔복동 선비인 진사 송사심(송면)의 제자 8명이 줄줄이 장원급제를 하니 ,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팔과정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정자가 됐다.
팔과정에서 배출된 인물은 이철수가 쓴 전주기록을 보면 부성팔현이라 명명하고 있으며, 동몽을 가르치는 진사 송사심을 국포선생이라 불렀다. 서당은 완산 부성밖 북쪽 황방산 산자락 반룡마을에 위치했다.
국포선생은 아버지 용암담 송진문선생도 서당을 했고, 그는 봉곡 김동준과 석계 최명룡과 교유했고, 아들 호규도 아버지를 이어 서당을 했으며 병자호란시 의병으로 진군했다. 부성팔현은 구사리 살았던 홍남립을 시작으로 황방산아래 살았던 이흥발, 이기발, 이생발을 들 수 있다.(이흥발 이기발은 사간과 헌납을 해서 간납대라는 명칭이 탄생하기도 한다)
또, 목사를 했던 추옹 이흥록, 장령을 했던 만성당 이후선, 판관을 했던 이순선은 모두 관향이 전의이고, 지평을 했던 서계 송상주는 인의송씨(여산송씨)이다. 충신 이흥발은 정려각이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으며, 이기발은 문집 서귀유고가 4권 전하고 있다. 또 시문에 뛰어난 홍남립은 문집이 있으며, 소양에 대승서원이 있어 주벽으로 배향되고 있다. 또 송상주의 후손은 만경현령, 순천부사를 했던 교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팔과정 국포 제자들은 병자호란 때 많은 제자가 참여하게 된다. 즉 호남절의록에 기록된 아들 송호규를 위시하여 이흥발, 이기발, 홍남립 등이 참여하였고 송상주는 군량을 책임졌다.
원래 팔과정 위치는 팔복동 2가 500-1번지 였다. 이곳에는 주춧돌이 있지만 예전에는 약 300년 경에 팔과정이라 편액을 하고 세칭 부성의 명소가 되었다. 그 후 오랜 세월로 정자가 유실되어 다시 1900년경에 다시 지었고, 이후 또 공업단지가 형성되면서 정수장 옆에 현대식으로 김용진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다시 지었다.
이후 퇴락된 것은 전주시가 관심을 가지고 새롭게 편액과 현판을 다시 거니 다시 팔과정이 태어난 것이라 봐도 된다. 우리 지역민들이 교육의 중심에 선 팔과정 학맥을 깊이 이해하고, 황방산과 팔복동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장소라 사료된다. 팔과정의 연원을 알고 새주소로 사용하는 팔과정로도 널리 홍보했으면 하고 전주가 교육도시로써 자리매김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김진돈 전주문화원 사무국장
'전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연, 전주아리랑 신곡 발표 (0) | 2022.05.11 |
---|---|
전북교육박물관 건립 만전을 기해야 (0) | 2022.05.10 |
왜 무성서원이라고 하나 (0) | 2022.05.02 |
청목미술관, 전북 미술관 최초 공익 법인 승인 (0) | 2022.04.24 |
[전북 범종 만든 이를 알고보니] 무주 안국사 이만중, 고창 선운사 권동삼, 군산 상주사 김치운 (0) | 202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