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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익산 쌍릉, 소왕릉→대왕릉 순으로 만들어졌다



‘백제시대 왕릉급 고분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의 두 무덤 가운데 대왕릉보다 소왕릉이 먼저 축조됐다는 학계 주장이 나왔다.
지난 18일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열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봉영기와 새로운 백제사 인식’ 학술대회에서 이문형 원광대교수는 소왕릉에서 발견된 배수시설과 둘레석은 부여 왕릉의 구조와 유사하다며, 이런 시설이 없는 대왕릉보다 먼저 조성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대왕릉과 소왕릉 석실의 세부 속성과 출토 유물을 비교 분석한 결과, 대왕릉보다 소왕릉이 먼저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익산 쌍릉은 북쪽의 큰 것을 대왕묘,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 부른다. 대왕묘는 지름 30m, 높이 5m 정도이고, 소왕묘는 지름 24m, 높이 3.5m 정도의 원형이다. 다만 대왕묘에 관한 2017년 조사에서는 동서 약 25m, 남북 약 28m로 남북 방향이 약간 긴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다. 두 무덤은 모두 화강암을 잘 다듬어서 만들었는데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동일한 판석재 굴식돌방으로 단면 육각형이다. 대왕묘의 경우 석실이 봉분의 중앙에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있으며, 판축 기법을 활용하여 봉토를 성토한 것이 새롭게 밝혀졌는데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이다. 대왕묘의 돌방 규모는 길이 4m, 너비 1.75m, 높이 2.25m로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하총[길이 3.26m]보다 크다. 남면 중앙에 널길[羨道]이 설치되었으며 널문[羨門]은 너비 1m, 높이 1.5m이고, 길이가 1m 정도였다. 바닥 중앙에는 길이 2.71m, 너비 0.85m, 높이 0.25m의 관대(棺臺)가 놓여 있었다. 소왕묘의 경우 2019년부터 조사가 시작되어 아직 전모를 알 수 없다. 1917년 조사 때에는 돌방 규모가 길이 3.2m, 너비 1.3m, 높이 1.7m로 대왕묘보다 더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대왕릉은 기존 왕릉의 구조적 속성을 반영했지만, 배수시설과 둘레석이 없다고 했다. 또한 미륵사지 조영척인 남조척(南朝尺)을 석실의 용척(用尺)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소왕릉보다 후대에 축조됐다고 했다.
특히 이교수는 "소왕릉은 배수시설과 둘레석 설치까지 부여 왕릉원의 왕릉을 충실하게 답습하고 있다"며 "배수시설은 백제가 한성과 공주에 도읍을 뒀을 때 만든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에서 전통적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익산 쌍릉은 백제 제30대 국왕인 무왕과 왕비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전해져 왔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차적인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대왕릉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학계에서는 대왕릉과 소왕릉에는 각각 무왕과 선화공주가 묻혔으며, 발견된 인골의 주인공은 무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왕은 익산 미륵사를 창건하고 익산과 관련된 설화를 남기는 등 이 지역과 연관이 깊은 국왕이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