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국장
■당신의 삶에 꽃비가 가득 내렸으면 더 없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일시무시(一始無始), 널리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소서. 온누리에 삼백예순다섯날, 꽃비가 가득 내렸으면 더 없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모두가 정법(正法)으로 수양을 거듭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부처님이, 예수님, 하늘님, 하나님, 하느님이 되는게지요.
무병장수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편함을 찾지 않으며, 늘 움직이고, 낙관적으로 사는 데 있습니다. 금도끼로 찍어낸 계수나무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천세만세 살고파라. 애오라지 무병장수의 꿈을 꿉니다.
암스트롱이 첫발을 내딛은 달나라. 그곳은 이야기가 있고 신비가 있으며, 우리와 같은 삶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은 고요 속에서 탄생됐고, 그 삶은 종착역에서 새벽 첫차를 기다리고, 모든 것이 끝난 굿판에서도 뒤풀이로 새 삶을 일구어냅니다.
보름달을 자세히 살펴보면 계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바로 그 옆에는 옥토끼 한마리가 쉬지 않고 방아를 찧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참으로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옥토끼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신선의 도를 닦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활활 타는 불속에 제 몸을 던져 스스로 먹을 것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합니다.
그러므로 불사의 약을 상징하는 달나라의 계수나무로 만든 초가삼간은 ‘부-자-손’이 천년만년 함께 살아가는 삼세동당(三世同堂)의 오랜 한국인의 꿈을 상징합니다. 물질의 충족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꿈을 채우려는 더 큰 욕망인 셈입니다.
신윤복의 풍속도첩 월하정인(月下情人)처럼 달빛은 쓰개치마를 머리에 쓴 밀회의 아리따운 여인을 감싸주고 있으니 우리의 정서입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빗자루를 탄 마녀들이 보름달을 등지고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둥근 달 속의 실루엣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필버그의 영화 'ET'의 한 장면도 바로 그런 이미지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요. 일례로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남원 광한루. 광한루원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을 상징하는 삼신산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김스미, 달항아리의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만큼이나 수 많은 소망을 담아 반짝이는 그림을 그리다
달항아리는 둥근 모양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조선 백자 항아리를 가리킵니다. 그 중에서도 높이가 40센티미터 이상인 큰 항아리를 백자대호라고도 합니다. ‘달항아리’란 이름은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붙여졌습니다.
김스미작가의 달항아리 작품을 보는 이 순간, 당신의 얼굴이 떠올려지는 까닭은 왜 일까요.
작가는 어릴 때부터 도자기가 좋아 흙을 만지작 거리다 직접 도자기를 빚고 가마에 구웠습니다.
그렇게 그림과 도자기를 병행하다가 어느 순간 힘에 부치는 순간이 왔습니다. 고민끝에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습니다. 도자기를 빚지 말고 그리자는 것. 그림과 도자기,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귀한 인연들이어서 도자기를 그렸습니다.
둥근 달처럼 다복하고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선조들의 예술혼과 마음을 넉넉히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작가는 달에게 소원을 빌면서 가졌던 어머니의 꿈에 대한 염원을 달항아리에 담아 한국의 미를 회화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달항아리의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만큼이나 수 많은 소망을 담아 반짝이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작가에게 달항아리는 하늘입니다. 꿈은 많지만 안은 비어 있는, 순수하면서 당당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달항아리’는 한국의 미를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는 장치이자, 예전부터 소망과 염원을 이뤄주는 존재인 일월성신 달의 상징입니다.
달항아리는 빨강, 파랑, 노랑 등 오색찬란한 여백이 에워쌌습니다. 그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달항아리와는 결이 다를 것이라 믿습니다.
달의 상징적 의미는 어둠을 비춰주는 광명의 상징이며, 임을 지켜주는 천지신명 같은 존재입니다. 어렸을 적, 추운 겨울 칠흑같은 어둠속에 달이 비친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에 우리의 어머님은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세상의 온갖 신들에게 고하며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복을 기원했습니다.
평면 회화의 경계를 넘어 순수 페인팅에서 표현 되는 일상적인 기법의 무미 건조함을 극복하기 위해 오브제를 사용하는 등 현대 미술의 다양함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조형구성 원리에 따른 비례, 균형, 조화 등은 수직과 수평적 구도에서 형성된 균형과 질서, 안정된 통일감을 느낄수 있게 하는 요소입니다.
가장 큰 조형적 특징은 반복성입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되는 것을 반복이라 합니다. 사물을 일정하게 배치시키므로 시각적 반복의 변화를 가진 연속적인 리듬을 되풀이할 경우, 매력적인 리듬이 생기고 광선에 의해 생기는 밝고 어두움은 빛의 방향에 따라 자연적 명암이 표현됩니다. 그렇게 명암의 표현을 통하여 대상의 입체감과 양감을 나타낼 수 있으며, 평면 회화가 입체적으로 느낌을 표현합니다.
채색하는 과정에서, 음양의 조화와 수없이 반복적인 작업은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랐습니다. 작가는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진공의 득도에 이르고자 하며 공(空)은 수행의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네 인간들은 물욕, 식욕, 색욕, 명예욕, 권력욕 등 5욕(慾)과 희노애락애오욕 등 7정(情)의 굴레를 가진 채 힘들게 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작품 속 여백의 의미는 실제로 사물이 존재해야 할 곳에 어떠한 효과 없이 공간의 비움을 나타냅니다.
보라색 등 색깔이 주는 명상은 순수한 영혼을 내면 깊은 곳으로 인도하며 심리적 안정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빈 공간을 상상하게 하며 반대로 무엇인가 그려진 표현 부분에 시선이 다시 한 번 집중되어 시각적인 흐름을 유도합니다.
여백은 말 그대로 생략된 표현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배치와 작가의 표현력으로 인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형 구도의 절제미, 조형적 구성상의 여백의 미가 도드라지게 나타납니다. 절제와 강조를 통한 나자신만의 독창적, 조형적인 언어로 달에 비친 달항아리에 우리들의 염원을 담아 아름다운 미를 노래합니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세상사 포용 못할 것 없다는 달관자의 부드러운 미소라면 작가의 달항아리는 싱그러운 청춘의 파안대소입니다. 달항아리의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만큼이나 수 많은 소망을 담아 반짝이는 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나브로, 뜨겁고 긍정적인 기운이 달항아리에 넘실댑니다. 선을 좋아해 도자기를 그렸고, 도자기 표면에 빙렬도 넣었으며, 때론 추상적인 모습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달항아리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꿈’과 ‘소망’입니다. 달항아리를 ‘기도를 담는 그릇’으로 은유해 수 많은 기도를 올리며 ‘꿈’과 ‘소망’이 이뤄지기를 염원합니다.
하나의 색과 하나의 빙렬과 선은 한 번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즉, 실타래처럼 엮인 사람들의 인연과 관계 속에서 윤회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달항아리 표면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빙렬은 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약의 온도에 따라서 생겨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세월 속에서도 생겨납니다. 캔버스를 압도하는 거대한 항아리를 미디움(MEDIUM)으로, 마치 우리 손의 손금처럼 아티스트 자신의 삶의 감정과 생각을 빙렬을 통해 그려 넣습니다.
이내, 수 많은 색과 이들이 중첩되면서 끝없는 무욕의 세계와 정갈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작가와 가족, 나아가 주변과 세상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망인 셈입니다.
도자 소성과정에서 생겨나는 빙렬의 미학이 수십 혹은 수백 번 아로새겨져 생겨나는 형상들마다 종교를 초월한 기도와 염원을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도 관람객들은 작가의 달항아리에서 주술적인 의미들을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색과 가득찬 보름달의 넉넉함, 반짝임 등에서 이같은 요소가 스며들었습니다.
달항아리의 온화한 백색과 부정형의 정형이라 불리는 둥근 형태와 또 이를 둘러싼 충분한 여백과 사방에 배치된 입체적 선의 콜라주는 달항아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름의 아우라를 자아냅니다.
이내 소생시킨 흔적의 에너지로 영원의 숨결을 보듬습니다. 오늘 밤하늘에도 둥근달이 떠 나의 마음 속 달항아리에 환히 비쳐 오랜 세월, 기억 속의 여행을 할 것입니다. 각각의 달항아리에 김스미작가의 열정이 자잘하게 스며 당신의 가슴에 녹아들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염원합니다.
산길처럼 들길처럼 걸어가라 하네.
햇살처럼 윤슬처럼 지나가라 하네.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다가라 하네.
강물처럼 별빛처럼 흘러가라 하네.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작가가 응집해놓은 우리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염원의 이미지까지 가득 담아가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더 추락하고 황폐하기 전, 달항아리 닮은 향기로운 삶이고 싶습니다.
조심조심 두 손 모아 치성을 드리오니 천지신명을 향한 ‘무심(無心)과 무욕(無慾)’의 희망 비나리입니다. <끝>
'작업실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성곤, 석채화 작품전 (0) | 2021.10.11 |
---|---|
도예가 진정욱,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0) | 2021.10.06 |
윤명로의 ‘벽B(1959)’ (0) | 2021.09.16 |
고창에서 백두까지 「운치있는 선운산기맥전」 봉산 정재경 초대전 (0) | 2021.07.27 |
완주 고산에서 사진 갤러리-포시즌을 운영하는 황재남 사진가를 만나보니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