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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새통

이치대첩의 주인공 황진, 소설 '임진무쌍 황진'으로 태어나다

'바다에는 이순신장군! 육지에는 황진장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영웅이 돌아왔다. 김동진이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이후 11년 만에 장편 역사소설 '임진무쌍 황진(교유서가)'으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일제강점기의 의열단원 김상옥과 황옥을 현재로 불러냈다면, '임진무쌍 황진'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초기에 크게 활약했던 황진을 독자 앞으로 끌어온다.
남원출신 황진의 우리 지역 이치대첩, 웅치대첩, 안덕원 전투 등이 소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북 기념물 제26호 '이치전적지는 (梨峙戰蹟地)는 완주와 금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權慄)과 동복현감 황진(黃進)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전적지이다. 이치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해질무렵까지 계속된 치열한 전투에서 우리보다 우세한 적을 대항해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장수들의 성실한 진두지휘와 향토병들의 불굴의 투지, 험한 지세를 이용한 철저한 대비, 차질없이 진행된 군수품 보급에 있었다.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치대첩은 지금까지 권율 장군이 이끌어 승리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전장에서 직접 지휘했던 맹장은 황진장군으로 밝혀졌다. 또 웅치전에서 마지막 화살까지 적의 가슴에 겨누면서 임전무퇴 정신으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장군도 정담(鄭湛) 김제군수로 알려지면서 난중일기에 담긴 어록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의 뜨거운 삶을 되돌리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 황진과 치열했던 그의 시대와 삶이 우리 후손들에게 ‘불멸의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독자에게 황진의 삶을 뜨겁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 책은 황진이 1590년 3월 통신사로 일본에 가게 되면서부터 1593년 6월 28일 진주성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3여 년간의 불꽃같은 삶을 담고 있다. 최대한 사료를 근거로 스토리를 전개하되, 사료에서 채워지지 않는 팩트와 팩트 사이의 빈 공간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웠다. 일본의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조선은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황진도 5촌 당숙인 황윤길을 따라 통신사 호위무관으로 사행길에 나선다.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각각 서인과 동인으로 당색도 다르고 성향도 달라 사행 내내 충돌한다.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고자 여러 술자리에 참여하는 황윤길과 달리 김성일은 예법을 중시하며 임무를 다하기 전까지 방에서 서책만 읽는다. 통신사 임무를 마치고 조선에 귀국해서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묻는 선조에게 황윤길과 김성일은 서로 다른 의견을 보고한다.
“도요토미는 사납고 탐욕이 강한 자로 강한 군세를 내세워 외국을 노리는 자. 머지않아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75쪽)라는 황윤길의 의견에 동인들은 “세력을 잃은 서인들이 왜침 가능성을 부풀려 주상 전하의 심기와 백성의 인심을 동요시켜 정국 주도권을 되찾으려 한다!”(76쪽)라며 맞서고 결국 일본의 내침을 부정한 김성일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1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소설 속 시간은 통신사 출발부터 진주성 2차 전투까지 3년에 불과하지만 그사이에 황진이 남긴 행적은 심상치 않다. 일본은 다년간의 전쟁을 거쳐 무력적으로 매우 성장한 상태인데 조선 조정의 인식은 이전의 일본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선조와 조정은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채 탁상공론만 펼치고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권력 싸움에 정신없던 그때, 한 발짝 떨어져 미래에 대비한 인물이 바로 황진이었다. 황희의 5세손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하급 무관 황진의 활약을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에 작품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일본도를 들고 싸우는 저 조선군 지휘관은 동복현감 황진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2년 전 조선 통신사 일행의 호위무관으로 관백을 알현했었다고도 합니다. 군사를 지휘하고 싸우는 모습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자 같습니다.”(133쪽)
황진은 일본에 편견이 없었다. 일본의 발전된 모습을 보며 놀라워하고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우려 했다. 통신사로 일본에 방문했을 때에도 왜검법을 배우고 조총과 일본군의 훈련을 관찰하며 그에 대응할 방법을 강구했으며 귀국할 때에는 왜검을 몰래 구매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이 후에 일본과의 전쟁에서 빛을 발했다. 수로 밀어붙일 생각만 했던 오합지졸의 조선군에게 황진은 구세주와 같았다. 백발백중의 명궁인 데다 일본도를 들고 일본인들을 베는 황진은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황진의 뛰어난 무예와 재치 있는 계략을 엿볼 수 있는 이치, 웅치, 안덕원, 죽주산성 전투, 그리고 외롭고 치열했던 진주성 2차 전투까지,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오직 조선의 백성들을 지키고자 싸웠던 무관의 이야기이다.
임진왜란은 한국문학사에 수도 없이 등장한 소재이지만 잊혔던 인물 황진을 오늘날 다시 숨쉬게 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다.여러 사료 속에 활자로 남아 있던, 그 시절 분명히 존재했던 황진은 오늘의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의인이다.
이 작품에는 이순신, 권율, 곽재우 같은 유명한 인물들도 등장하지만 황진처럼 낯선 이름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우리는 모두 무쌍(無雙)한 존재이지만 그것을 알아봐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다정한 마음이 배어 나오는 소설로 작품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역사’란 시간이란 전장 속에서 펼쳐지는 끊임없는 ‘기억의 전쟁’이다. 한편에선 잊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선 기억하기 위해서 처절하고 집요하게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시간은 원래 망각의 편인지라,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 속에 누구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면 잊히기를 바라는 쪽이 결국에는 승리하고야 만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