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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진정한 용서와 사면

진정한 용서와 사면

용서(容恕)라는 말은 논어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용(容)자는 여기서는 "담다"라는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곧, 용서는 서(恕)를 용(容)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여러 명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 자공(子貢)이라는 제자가 공자께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평생을 두고 마음에 담아 실천할 만한 좌우명 하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님이 "있고 말고" 하며 천천히 일러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恕)니라" 라고.

이 서(恕)가 바로 용서(容恕)입니다.

서(恕)자는 같을 여(如)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붙었습니다. 자기를 용서함같이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서(恕)입니다.

하지만 용서를 미덕으로 강조할 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한, 용서를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명령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용서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피해자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고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얻는 기회가 되기 십상입니다.

가해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처벌을 온전히 받을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피해자로서 가해자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깊이 와 닿을 때, 비로소 피해자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용서입니다.

남의 잘못을 이해해 주고, 용서함에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이것이 참을성입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국민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사면에 대한 논의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통합이고,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닐런지요.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큰 잘못은 ‘참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르고 한 잘못은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참회하지 않음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공자는 인(仁)과 덕(德)을 쌓기 위해선 자발적인 참회와 반성의 정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화도 전해집니다.

일주일 내내 여행을 하던 공자와 제자들은 식량이 부족해 채소만 먹었습니다. 스승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수제자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습니다. 부엌에서 밥 짓는 냄새가 진동하길래 공자는 부엌을 살며시 엿봤습니다. 그런데 안회가 솥뚜껑을 열고 흰쌀밥을 한숟갈 떠 입에 넣고 있는 게 아닌가. 공자는 의심했습니다. “착한 안회가 저럴 수 있을까. 평소 안희는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는데 다 거짓인가.”

생각을 정리한 공자는 안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뵀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제사를 지내라고 하시더구나.”

제사 음식에 빗대 안회의 잘못을 꾸짖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져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었습니다.”

공자는 의심한 것을 후회하고 안회에게 바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공자가 성인으로 추앙 받는 건 잘못을 알면 바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정치 보복처럼 보이는 작금의 상황도 반드시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의 사면이 먼저다, 아니다' 는 논쟁의 진정성과 국민들의 눈높이가 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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