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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빈곤포르노 뒤에 숨겨진 ‘눈물’ 사라져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모금운동, 마케팅을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고 부른다. 장애 아동과 저소득층 보호자가 나오는 TV 모금 광고를 보자. 울적하고 무기력한 분위기가 감돈다. 음악과 배경, 연출을 동원해 최대한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열악하게 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 익숙할 지경이다. 한동안 거의 모든 TV ‘공익’ 프로그램은 이런 방식의 내러티브를 보여왔다.그러나 이제는 안타깝고 열악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바로 이같은 방식을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사실 빈곤을 자극적으로 연출해 동정심만을 이끌어내는 빈곤 포르노는 지금도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곤 포르노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최빈국 아동을 위해 모금을 펼치는 광고 방송이다. 아프리카 르완다, 소말리아, 우간다 같은 국가의 아동들이 굶주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클로즈업해 초점 없는 눈, 거품이 인 입가를 어지럽게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부모가 눈물을 흘리는 모금 광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영된다. 이 빈곤 포르노 광고에서는 화면에 노출되는 아동과 보호자의 인권이 큰 문제가 된다. 특히 아동의 경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얼마만큼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 설령 충분히 동의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광고로 노출되고 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아동 보호 비영리단체 홍보담당자의 설명이다.

대부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같은 표현들은 빈곤 아동이 항상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무기력하며 남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등장 인물들이 겪는 고통이 개인적인 문제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빈곤 포르노의 내러티브는 저소득층을 위한 모금 광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알게 모르게 광범위한 범위에서 빈곤 포르노 내러티브가 쓰인다. 방송 채널에서 이주노동자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자. 이주노동자 출신 국가에 찾아가 가족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는지, 가족들을 위해 이주노동자가 어떤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런 방식 역시 빈곤 포르노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해당 저개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가족들에 대한 인권 보호 없이 이뤄지는 방송은 자극적이기만 하다. 요즘은 반려동물에까지 빈곤 포르노 내러티브가 쓰인다는 지적도 많이 제기된다. 동물보호단체들이 후원금을 모으고 실적을 홍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연출까지 감행해가며 동물들의 ‘비참한 현실’을 강조하는 영상들을 많이 제작해왔다는 지적이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비참한 현실에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반려동물 가족과 동물보호기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빈곤 포르노의 문제는 ‘돈’으로 귀결된다. 편견을 부축이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모금운동이 갖는 폐해는 심각한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빈곤포르노’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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