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열악한 환경을 딛고 전주의 출판 역사를 지켜온 ‘신아출판사’는 어느 사이에 전북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된‘신아’의 존재는 반갑다. 1970년 인쇄업으로 시작해 올해까지 50년. 신아는 지역에서는 유례없는 출판사로 꼽힌다. 지금까지 낸 단행본만 4,000여 종, 여기에 4개의 문학상과 11종의 정기간행물을 이어가고 있는 신아의 존재는 출판문화의 자존심이 됐다. 지역은 물론 국내 출판 역사에 유례없는 궤적이다. 전주 태평동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지난 반세기 가까이 전국의 문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자, 든든하고 따뜻한 숲이다. 만만치 않았을 역경의 노정에서 끝내 살아남아 지역 출판사의 모범이 된 신아출판사가 최근들어 국내 최초로 1,000종의 수필집을 펴낸 바 서정환 대표를 만났다.
△우선 소감 한마디를 한다면
돌아보면 스무 살에 시작한 신문배달이 지역출판을 부흥시키겠다는 꿈을 갖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삶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출판의 길에서만 존재합니다. ‘신아’의 존재가 곧 제 삶이 된 셈입니다.하지만 1990년대는 출판 부흥기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좋았었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출판시장이 위축되니 경영 악화로 출판사들의 부침현상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확대되면서 종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불안과 회의가 깊었어요. 그래도 책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결국은 자본주의가 융성해질수록 책을 찾게 된다는 믿음. 그것이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죠. 비결이 있다면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바로 그 믿음일 수 있겠네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수필집 발간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수필이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확장 또는, 수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던 바, 벌써 35년의 세월의 흘렀습니다.1985년 정주환수필가의 작품집으로 첫 선을 보인이래, 최근들어 아람수필동인회의‘아람수필’ 제6호가 1,000번째 책으로 발간됐습니다. 올 11월 6일 현재 형효순의‘꽃주름’이 1,007번째 수필집으로 독자들 앞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식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던 시대에 전주지역에서 찍던 완판본은 한글로 배포돼 문화를 보급했으며, 특히 전라도의 판소리 가락도 담겨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전주가 출판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을 찾도록 그 맥을 잇고 싶습니다.
△지금 정기간행물만 11종을 발간한다고 들었다
모든 문예지나 잡지를 출혈 없이 만들어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내는 것 중에서는 〈수필과 비평〉이 비교적 성공한 예인데, 나머지 문예지나 잡지는 돈이 되지 않아도 역할과 의미를 살려 만들어내는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현재 월간 <수필과 비평>, <소년문학>, <좋은수필>, , 계간 <계간문예>, <문예연구>, <인간과문학>, , 격월간 <여행작가>, 반년간 <표현>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창간 한 것이 〈K스토리로 이 책은 문학의 탈장르를 예상하고 기획한 것입니다. ‘미래 한국 스토리의 지평을 여는 신개념 문예지’를 부제로 달았는데 이를테면 좋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콘텐츠로서의 이야기를 모아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 〈소년문학〉을 처음으로 문예지로 창간했고 2년 뒤 창간한 것이 〈수필과 비평〉이죠. 처음에는 격월간으로 출발했는데 월간으로 바꾸었어요. 수필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시키면서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는 통로가 됐다고 자신합니다.
△전북인쇄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지난 2월 전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제25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전자매체 인쇄물들의 디지털화와 지식정보산업화 등 인터넷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인쇄정보산업 경영방식과 전략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모든 조합원들이 일치단결해 한 목소리를 내야 영세업자들의 숨통이입니다. 인쇄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쇄조합을 통해서 인쇄물을 맡겨야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인쇄물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쇄업체가 서로 소통 화합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조합원들과 협의해서 하나씩 매듭을 풀어나가는 가운데 전북인쇄발전을 위해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나가고 있습니다. 전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은 인쇄문화인들의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로 도내 90여개 관련 업체 직원들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인문학의 도래를 준비해 왔다고 알고 있는데
오늘도 ‘인문학 시대의 도래’를 꿈꿉니다. 11종의 정기간행물과 매년 100권 안팎의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넉넉지 못한 작가의 사정에 마음이 쓰여 실비만 받고 책을 내주기도, 공짜로 만들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한 상(賞)도 연달아 제정했습니다. 1992년 ‘수필과비평문학상’을 비롯 ‘신곡문학상’, ‘백제문학상’ ‘황의순문학상’ 등을 제정, 문인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저변을 확대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도서벽지 학교와 군부대·교도소 등에 책을 기증하고, 지갑이 얇은 작가들에게는 무료로 책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신아문예대학과 전북문화살롱을 소개한다면
신아문예대학을 열어 시, 수필, 아동문학, 사진, 시낭송 강좌도 개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기는 하나 돈벌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2015년 3월‘신아문예대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등단하는 작가는 많지만 실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는 드물기만 합니다. 한 가지 분야의 문학 장르만 몇 달 배워서 등단하는 작가가 많은 가운데 이를 탈피하기 위한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신인뿐 아니라 기성 문인도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소양을 갖춰 깊이 있는 글쓰기를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작품의 발표 지면을 제공해 이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 수필, 소설, 시낭송, 아동문학, 사진 등 6개 과목의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스럽지 못해 몇 개의 강좌는 진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문화 토론의 장 '전북문화살롱(회장 이태영 전북대 교수)이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개화·근대·개혁을 상징하는 ‘살롱(salon)’은 지성의 상징이며, 문학가와 음악가들이 토론과 비평을 통해 시대의 예술 정신을 이끌어가던 곳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6시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 하는 모임으로, 신아출판사 2층 문화공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사실 몇 사람의 전공자가 전북의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쌍방향 의사소통의 관점으로 문화를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젊은 문학인들의 단체 ‘문학과 지성’은 1962년 전주에서 발행한 ‘산문시대’와 1966년 전주에서 발행한 ‘사계’ 동인들로부터 시작한 바, 전북문화살롱’은 그 정신을 이어받아 문화가 그리운 이들이 사람 가리지 않고 모여 아기자기하게 전북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소식지 ‘전북문화살롱’ 발간을 통해 특강, 토론 행사 등이 실려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전북의 문화가 발전하도록 전북문화살롱을 방문, 문화의 꽃을 피워주기 바랍니다.
서정환 대표가 걸어온 길
서정환대표는 순창 구림면에서 태어났다. 1940년생으로 지금도 인쇄사와 출판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현역’이다. 스무살의 나이에 청년가장이 되어 전주에서 신문배달부터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 성실한 그를 눈여겨 본 민국일보 지사장이 그에게 총무일을 맡겼다. 민국일보가 발행하는 사보에 글도 썼다. 1965년 신아일보가 창간되면서 총무로 ‘스카우트’ 되어 직장을 옮겼다. 글 쓰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신아일보의 주재기자가 됐다. 한국일보 지사 총무를 거쳐 다시 신아일보 지사장이 됐다. 다시 신문사 지사를 맡으면서 ‘프린트’일을 부업으로 삼았다. 내친김에 인쇄소를 본격적으로 차린 것이 1970년, 〈신아문예사〉의 시작이었다. 그즈음 조선시대 책을 제작했던 전주의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알게 됐다. 1984년 〈신아문예사〉로 출판 등록을 낸 것은 전주를 다시 출판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전북애향대상, 장수기업인상, 순창군민의장(문화장) 등을 수상했으며, 애향운동본부 부총재, 전주문화원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출판물간행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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