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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1920년 전북자동차상회 버스 요금은 전주-이리 2원, 전주-남원 4원 80전이었다'

'1920년 전북자동차상회 버스 요금은 전주-이리 2원, 전주-남원 4원 80전이었다'

전북고속이 올해로 창립 100주년이 됐다. 1920년 3·1 운동 정신에 입각한 최종렬, 최승렬 형제가 순수 민족자본으로 당시 전주군 전주면 상생정(현재 전주시 완산구 태평동)에서 「전북자동차상회」를 창립했다. 우리나라 최초 기업형태의 여객자동차 운송사업을 시작하고 최승렬 사장이 운영한 이후로 100주년이 된 것이다. 당시 요금은 전주-이리 2원, 전주-남원 4원 80전있었으며, 쌀 1가마니 가격은 6~7원이었던 바, 자동차 요금이 매우 비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반인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 창업자이자 초대 사장 최승렬은 청소년기에 서울 성균관 등 경성고보(경기고 전신) 유학 중 말과 가마에 의해 왕래했다. 1930년 6월 일제 조선총독부 자동차령에 의해 「조선자동차연합회」가 발족되고 회장은 자동 일본인이고, 부회장에 전북자동차상회 사장 최승렬 피선됐다. 1934년 12월 여객운송업이 호황이라는 입소문으로 이리, 군산, 김제, 정읍, 부안 등 돈 있는 지주들이 1921년부터 운수업에 뛰어드는 등 우후죽순처럼 운송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1944년 3월, 일제 조선총독부령의 1道 1社 방침에 따라 전북 도내에서 운영하던 여객운수회사 전부를 공화자동차운수주식회사 중심으로 통합 사장에 최승렬 상호 「전북여객자동차주식회사」로 출발하게 됐다. 일제는 무질서를 핑계로 ‘전북자동차상회’ 최승렬 사장에게 도내 군소업자들을 통합 주식회사로 운영할 것을 권유했다. 당시 회사는 일제 자본 침투를 위한 압력으로 거부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1950년 6·25사변으로 제3대 최한규 사장이 희생되고 전북여객 버스 98대 중, 39대와 택시 20대 전부가 방화, 약탈, 탈취 당하고 남아있는 버스 59대도 대부분 파괴됐다.

최한규 사장은 창립자 최종렬의 장남, 전 사장 최승렬 장조카로 1947년부터 1950년까지 경영 책임을 맏아 활동했다. 그가 살았던 집은 여전히 승광재 옆에 자리, 꽃담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 남아있다./이종근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686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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