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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능참봉


“나이 칠십에 능참봉”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나이 칠십에 능참봉을 하니 하루에 거둥이 열아홉 번씩이라.” 는 속담을 줄인 것이다. 능참봉이란 왕릉을 관리하는 9품 말직의 관직이다. 70세의 노령까지 선비로만 머무르다가 마침내 능참봉이라는 관직을 얻어 명예롭고 영광스럽기만 할 줄 알았더니, 하루에도 열아홉 번이라 할 만큼 잦은 왕의 행차 때문에 고된 일만 많다는 뜻으로, 실속 없이 바쁜 상황을 빗댈 때 위와 같은 속담을 쓰곤 한다.

 조선은 《경국대전》〈봉심규정(奉審規定)〉을 통해 능역관리를 체계적으로 수행했다. 그 중심에는 높은 직책은 아니었지만 조선 최고의 왕릉 관리 전문가로서 조선왕릉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오늘까지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한 능참봉이 있었음을 기억할 만하다. 오늘날에는 조선왕릉관리소를 중심으로 동부·서부·중부 등 3개 지구의 14개 권역에서 문화재청 직원들이 능참봉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와 구리교육문화원은 사적 제193호 구리 동구릉에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능참봉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나는야, 동구릉 지킴이 능참봉' 행사를 2019년 11월 9일까지(7·8월 제외)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일일 동구릉 능참봉으로 제수돼, 전통의상을 입고 능참봉의 일상을 체험한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왕릉을 관리하던 종9품 벼슬로 품계는 낮았지만, 왕릉을 보호하고 제례를 관장하는 실무자로서 왕의 무덤을 지킨다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중요한 직책으로 여겨졌다.

조선 왕릉은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단일왕조 왕가의 무덤 모두가 온전하게 남은데다가 유교철학과 풍수사상이 담긴 탁월한 조형미를 인정받아 40기 모두 세계유산이 됐다. 이렇듯 조선왕조 500년 세월동안 왕릉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능참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도 능참봉 출신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조선시대 인기 벼슬은 능참봉이었다고 했다. 고창출신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의 기록을 통해 당시 능참봉의 업무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능참봉은 부사와도 거리낌 없이 왕능관리 문제를 논했으며 고유제 때 지방관을 헌관으로 직접 차출하는 일도 예사였다. ‘나이 70에 능참봉을 했더니 한 달에 거동이 스물아홉번’이라는 말이 대변해 주듯 능참봉은 역할도 매우 다양했다.

 원칙적으로 2인이 매월 보름씩 2교대로 재실(齋室)에 기거하며 근무했다. 왕과 왕비의 제례를 관장하고 능을 살피는 봉심(奉審), 능역 내의 수목관리 및 투작(偸斫:함부로 나무를 베는 일)의 감시를 주로 담당했으며 능지 또한 제작했다. 정자각, 비각이나 석물을 개수하는 일에 감독을 맡기도 했고 수복(守僕:능침에서 청소하는 일을 맡은 사람)과 수호군을 살피는 방호도 중요한 역할의 하나였다.

 바로 이같은 직무특성 때문에 그들은 유학적 지식과 건축, 토목, 조경 등 기술분야의 전문성까지 겸비한 직무능력을 갖춰야만 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야말로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초등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유튜버’가 인기 직종으로 뽑혔다는 뉴스가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가운데 조선 왕릉을 소개할 사람은 없는가./이종근, 삽화 정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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