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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모내기와 새참


모내기와 새참


이종근


 

바로 얼마 전, 곡우(穀雨)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봄비가 백곡(百穀)을 윤택하게 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살렸지요. 곡우에는 조기잡이가 성하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기로, 이날 비가 내리면 한 해 풍년이 든다고 여겼습니다.

싱그런 돌미역 무침에 들이키는 막걸리 한 잔이 고된 논일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오랜만에 마을 아낙들끼리 논둑에 빙 둘러 앉아 먹는 새참 맛이란 꿀맛처럼 달콤했습니다.

교외에 나가보니 들판이 파랗습니다. 어느 새 모내기가 끝나 햇살에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트랙터로 기계이앙을 하니, 한 줄로 늘어서서 모내기하던 풍경은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만 남았습니다.

못줄에 맞춰 늘어서서 진흙물 튀겨가며 뒷걸음으로 모를 심어나갈 때, 걸죽한 농담과 간드러진 콧노래도 석여 나왔지만, 발목과 종아리에 흐르는 피를 살펴야 했습니다.

거머리는 그야말로 찰거머리같이 달라 붙어 손으로 뜯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으며, 떨어진 자리에서는 지혈이 되지 않고 붉은 피가 흘러 내렸을 뿐 아니라, 상처는 나중에도 오랫동안 가려웠습니다. 거머리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풍물소리가 들리는 모내기날 풍경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여느 해보다 모내기 속도가 빨랐는데, 특히 빠르고 정확하게 심어서 다들 놀랐습니다.

아침 일찍 들판에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많이 바쁘고 분주한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들에 나가 직접 모를 일일이 심어서 모내기를 했는데, 지금은 기계로 순식간에 심어서 예전의 그런 운치는 없답니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길게 줄을 늘어뜨려 노래를 부르며 모를 심었었는데, 그리고 거머리가 다리에 달라 붙어서 놀라기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그런 풍경은 볼 수 없답니다.

하지만 모를 끝낸 논의 녹색의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심은 모들이 작은 바람에도 춤추며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심은 농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까요? 올 가을 이 녹색의 생명들이 가을에 풍성하게 결실을 맺기를 기도해 봅니다.

어릴 적에는 어느 한 집에서 모내기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품앗이로 돌아가며 모를 심는 모습을 흔히 봤지요.

못줄 잡이가 둘이 서서 못줄을 잡고 논에 대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손수 모를 심던 풍경을 흔하게 봤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 어떤 밥이냐고 물으면 모내기할 때 먹었던 새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너머로 모내기를 하는 모습,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먹잇감을 찾느라 분주한 백로의 날갯짓을 통해 그때 먹었던 새참의 오묘한 맛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더불어 모내기하는 댁의 아낙은 어김없이 광주리에 국수나 밥을 싸가지고 와서 논둑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새참을 먹는 풍경이 무척이나 흔했지요.

오래 전에 못보았던 외할머님이 손수 장만한 새참은 정말 꿀맛이었지요. 들에서 먹는다는 것,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서 먹는다는 것, 그리고 비지땀을 흘린 뒤에 먹는 밥이라 그토록 맛있었을 테지만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에게도 새참이 꿀맛이긴 마찬가지였답니다.

외할머님은 심심찮게 쌀밥에 감자를 넣고 조린 갈치조림, 고깃국 등이 나오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집에서는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풋고추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새참에는 찐 감자도 한 몫을 차지했지요.

밥 대신 국수를 삶아오는 경우도 흔하게 있었습니다. 조금 더 고급스러웠던 국수는 콩가루 물에 말아먹기도 했습니다. 새참에는 절대 빠지지 않던 단골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막걸리입니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들고 가는 건 주로 아이들 몫이구요, 새참을 머리에 인 외할머니가 훠이훠이 논둑길을 걸으면 그 뒤에 막걸리 주전자를 든 저와 꼬리를 촐랑이는 바둑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부지런히 쫓아가던 평화로운 풍경은 생각만 해도 미소가 머물었지요.

요즘은 진짜 이런 풍경은 아무리 두메산골 첩첩산중이라도 거의 볼 수 없는 추억 속의 풍경이 되었지요.

이앙기가 대신하는 모내기,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이 일요일에 모두 모이면 그날이 바로 모내기를 하는 날이지요. 그만큼 식구들만으로도 그 넓은 논에다가 모심기를 뚝딱 해치우지요. 어릴 적, 추억 속에 머무는 풍경은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한나절이면 다 심을 수 있는 모내기를 하면서 농사꾼들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할까요? 농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우리도 이같은 풍경을 보기만 해도 가슴 벅차니까요

지금, 우리 지역은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도시에서 산지 오래 되었건만 해마다 모내기철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농사일이 기계화로 수월해진 탓에 부모님께서 조금 덜 힘드실 거라 생각하면 기계화되는 농촌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겨웠던 풍경들이 사라져 가는 걸 보면 안타까움도 없잖습니다.

때문에 고향의 모습이 아무리 변한다 할지라도 내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리운 풍경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니 그것도 감사할 일이네요. 삭막한 도시생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한 풍경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시작~'도 아닌,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 '이야~ ~이차~' 못줄을 띄우시고는 모심기를 시작하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일렬로 줄지어 모판의 모를 한 움큼 떼어 눈금에 맞춰 모를 심기 시작합니다.

못줄을 잡은 이들의 목청이 높습니다. “어이~ ” 이들의 소리는 모를 심는 농부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모심는 위치와 간격을 바르게 잡습니다.

못 줄 잡이들의 줄이야~” 소리에 일제히 사람들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논은 작아도 농사 짓는 일은 힘듭니다. 허기도 집니다. 점심 먹은지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중반을 지나니 서로 눈치를 봅니다. 새참이 올때가 되었는데 마침 반가운 소리가 들립니다.

"새참 먹고하세요~" 모내기의 즐거움에 새참 먹는 행복까지 더해집니다.

이렇게 쉬엄 쉬엄해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모내기는 끝이 났습니다. 머지않아 땅이 주는 자양분과 하늘의 햇살, 구름의 비가 벼를 키우고 흰뺨검둥오리 가족들이 해충과 잡초로부터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풍년이 오길, 그리고 모두가 풍성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밥숟가락

  

'밥숟가락은 비어 있어서 밥을 뜬다 그리고,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하여 비워진다. 너는, 누구의 밥숟가락이냐'(김용옥시인의 '밥숟가락')

오늘따라 제 밥숟가락이 어찌 저리 작아보이는지요. 내 속에 '빈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들어오고, 지인들의 생각이 들어오고, 새로운 지식과 지혜가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허겁지겁 담아 넣기 바쁩니다. 자꾸 채워 넣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고 초조함이 덜해질 것 같아섭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이, 내 머리 속이 가득 차있고 번잡하기만 해서는 오히려 더 큰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판단력,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혜안, 멀리 보는 지혜는 이렇게 내 마음에 빈 공간이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닌가요?

아이나 후배에게 해주는 선의의 훈계도 내 속에 빈 공간이 있어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선승의 이야기가 전해줍니다. "()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사람에게 그 선승은 찻잔에 차를 계속 따르라고만 시킵니다. 말로 된 설명이 아니라 넘치는 찻잔을 보며, 그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차를 따르려면 먼저 찻잔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보며, 그는 도의 이치를 알아차린 것이지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만든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쉴 수 있고, 소중한 이들이 나와 진실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진정한 지식과 지혜가 들어올 수 있는 내 속의 빈 공간.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항상 마음 속의 일부를 비워두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지 흘러가지 않고 고이게 되면 그것이 생각이든, 돈이든,애정이든 반드시 썩게 되고 냄새가 나게 됩니다. 고인 것은 반드시 흘러야 하고 비워져야 합니다.

맛있는 걸 먹어도 늘 반쪽은 텅 비어 있어 그 나머지 당신 몫은 그리움으로 채웁니다. 외할머님이 그리울 때면 늘 창가에 머무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마음 속의 굳은 다짐을 당신 그리울 때 마다 더운 가슴 안에 가득 채웁니다. 가진 것을 버릴 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고 있느냐를 질문합니다. 그래서 종종 끝없이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납니다.

무언가를 채우기를 추구할 나이가 아니어서 이제는 조금씩 더는 연습을 합니다. 흐르고 비우고, 나누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