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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오목대와 이목대



오목대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노래


['당신에게, 전주'] <18> 오목대와 이목대 

기사 작성:  이병천·소설가  - 2015.03.11 16:13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은 어느 때 도도한 노래를 스스로 지어 불렀다. 변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승승장구하면서 아마도 대업을 이룰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자신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저 유명한 대풍가(大風歌)다.


'큰 바람 일어나니 구름이 절로 흩어지더구나(大風氣兮 雲飛揚)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느니(威加海內兮 歸故鄕) 어찌하면 날랜 장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꼬(安得猛士兮 守四方)'


남원 황산벌에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에게 대첩을 거둔 이성계는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목대에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일대는 전주 이씨 가문이 시조 이한(李翰)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아온 곳이었다. 이성계의 고조부였던 목조 이안사 대에 이르러 지역의 한 권력자와 알력이 생겨 강원도로 함경도로 거푸 이주해갔지만 아직 남아 있는 종친들도 많았다. 그들과 부하 장수, 그리고 전주 관리들이 참석한 축하연에서 주흥으로 거나해진 이성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득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게 하필 유방의 대풍가였다. 이성계를 따라 종사관으로 출전했던 정몽주는 이미 고려의 운이 다했음을 알았다. 그래서 홀로 말을 달려 남고산 자락 만경대에 이르러 읊었다는 시가 전해지는데….


'구월 소슬바람에 나그네 시름 깊으니(九月高風愁客者) 백년 호탕한 기운을 서생이 그르쳤네(百年豪氣誤書生) 하늘가 해는 기울고 뜬구름 모이는데(天涯日沒浮雲合) 고개를 반듯이 들어 송도만 바라본다(矯首無由望玉京, 정몽주의 칠언율시. 일부)'


유방과 얽힌 이런 사연이 있어 전주에는 풍(豊)이나 패(沛)라는 글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아졌다. 전주 남문인 풍남문의 풍, 서문이었던 패서문의 패, 전주 객사의 별칭인 풍패지관이 다 그렇다. 유방의 고향이 현재의 중국 강소성, 패현 풍읍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오목대는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건너편 동쪽에는 배나무가 많았다는 이목대도 있다. 이목대에는 고종 임금이 친필로 쓴 비석이 모셔져 있다.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 목조 이안사가 거주하던 옛 터라는 뜻이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원래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져 있었다. 일제가 그 사이 산허리를 잘라 철로를 깔면서 둘은 나뉘었다. 고약한 심보가 아닐 수 없었다. 두 지역은 현재 높은 구름다리로 통한다. 이제 그 철로도 옮겨간 지 오래, 전주시는 두 곳의 맥을 이어 전처럼 하나로 연결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동나무는 그 자신이 가락을 품고 있다고, 이건 당신이 들려준 얘기였다. 우리 전통의 현악기들은 거의 전부 울림통을 오동나무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나는 미루어 짐작했다. 그래서 오목대에서는 늘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성계의 대풍가가 울려 퍼지던 곳, 낮은 동산 위에 심어진 큰 나무들이 오늘도 바람에 우우 울고 있다. 그게 바람의 노래이고, 내 노래이기도 하다./이병천.소설가 삽화 김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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