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곡(嵐谷) 하수정(河秀貞)은 전주 출신으로, 추사의 필맥을 이어온 성파(星坡) 하동주(고조부) 선생과 강암 송성용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한 문인화가다.
남천교 빗돌을 휘호하기도 한 작가는 캔버스, 모시, 광목, 한지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그 위에 황토, 쪽빛, 홍화, 오배자 등으로 천연염색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인위적인 작업이 아닌, 천연적인 색감과 조직적 디테일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섬유가 가지고 있는 조직적인 특성은 작가의 근성을 상징하며, 곧 삶이 예술이며 예술은 곧 삶이라는 작가의 사상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무엇보다도 대담하게 그어 내려가는 선들과 색감은 서양화에서 보이는 터치들과 같아 보인다.
또한 작위성을 배제하고 떠오르는 즉시 즉흥적으로 작업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전통적인 것을 뛰어넘어 현대적이고 새로운 감각으로 대담한 도전을 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전의 미국 개인전에도 갖 잘 먹혀들었다.
작품 속 내용들은 평소 유쾌하고 시를 좋아하는 작가의 성격에 맞게 위트 넘치는 소재들과 아름다운 시들을 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자유스럽고 자연스럽게 그리고자 하는 욕구를 구속 없이 화면에 옮겨 낸다.
아름다운 시들은 작품들과 하나가 되어 의미가 스며든다.
그렇게 작가는 작품 속에 삶의 이야기를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는 서화불이(書畵不二)의 동양정신과도 맥이 닿아 있다.
무엇보다도 천연염색을 적재적소에 사용, 동양적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키고 있는 듯, 때문에 재료적 기법을 확대한 작품, 새로운 이미지를 시도한 작품들이 아주 많다.
작품들마다 고전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할 것인가 하는 작가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까닭이다.
화선지가 아닌, 광목에 천연 염색, 캔버스지에 유채, 수묵, 목공단에 감물, 댓잎 염색 등 혼합재료를 사용한 적극적인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은 참신한 발상과 함께 형식과 내용의 다양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미새’, ‘나비에게도 좋은 색이 있다’, ‘초록물이 떨어지듯’, ‘어두움이 짙어질 때’ 등 작품은 고달픈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솟구치는 생명력의 기쁨을 순수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붓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면을 활용한 서양화적 기법과 선을 사용하는 서예적 기법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결코 가볍지 않다.
때론 어쩐지 애잔하고 숱한 사연의 덩어리인 우리네 인생을 노래하는 듯한 느낌 바로 그 자체다.
외로운 저 새 한 마리가 어디로 둥지를 틀 것인가.
'작업실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슬이명희, 2회 서예개인전 (0) | 2020.04.19 |
---|---|
권은경이 담은 감천마을 사진 (0) | 2020.04.19 |
하수정, 51회 개인전 (0) | 2020.04.13 |
김시현펜화전 (0) | 2019.04.23 |
유기준개인전 (0) | 2019.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