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면 부항마을은 마을 뒷산이 오리혈입니다. 그래서 오리목이라 부릅니다. 물오리가 물을 찾아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날개 부분에 선돌을 세워 눌러 놓았습니다. 진압 풍수는 마을 지세에 결함이 있어 마을에 불상사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서 만들어졌습니다. 즉 음풍·재앙·화재 등이 일어나면 거북·짐대·선돌 등을 세워 문제를 해결합니이는 마을 공동체뿐만 아니라 읍·면 단위에서도 조성됐습니다.
마을을 감싸안고 있는 산줄기는 명당이라 하는 오리혈이 있고 산의 모습이 남양강을 향해 날아가는 오리와 같다고 해서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됐습니다. 항이란 한자음으로 오리부자와 목항자를 따 지어진 이름입니다. 오리목골에는 뇌성 윤씨가 살았다고 전해오는 옛 마을의 터가 있습니다. 이가 내려와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어 마을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바라본 동쪽은 오리목재입니다. 재넘어에는 남양소와 금당마을이 나오고 대항재를 넘어 안천과 이어지고 있습니다. 옛날의 소로길인 재입니다. 서쪽으로는 새들을 지나 정천면 모정리 망덕을 거쳐 정천면 소재지와 통하게 됩니다. 남쪽은 청안들과 구름바우,구름밭들을 가르면서 띠작고개(서낭재)에 이르는 도로가 나있습니다. 고개 넘어에는 상전면 용평리 운암마을과 강건너에 새벼루 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흘러내려가는 쪽으로 정천면 망화리 이포의 뒷산이 있으며 웃뜸을 반으로 나누며 삼태봉과 오리목산이 만나는 곳에 뒷고개가 있습니다. 고개를 넘으면 정천면 망화리 척금마을로 이어지고 용담면의 황산과 옛 삼천서원 터가 있습니다.
오리목산은 오리혈이 있다 하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전주최씨, 용담고씨, 영산신씨등이 혈을 찾아 묘를 썼다고 합니다. 묘 앞에는 상석이 없습니다. 날으는 새에 돌을 얹으면 오리가 날지 못하여 묘바람 덕을 볼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을에는 탑이라고 불려오는 큰 돌을 두 개 세워 놓았습니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1탑은 마을 입구에 2탑은 마을회관 아랫쪽 이중영씨의 밭가장자리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웃뜸과 아랫뜸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웠으며 마을을 둘러 큰 돌을 세웠다고 전해옵니다. 두개의 탑인 입석은 양쪽마을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믿어 온 것입니다. 당산나무가 있는 삼태봉 기슭에는 당산밑에 있으며 제 지낼때 준비하던 집이라고 해서 당산집이라고 부르는 집이 있습니다. 이 집터는 쌀에 섞인 돌을 이는 조리와 같다고 해서 조리터라고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 집에서 살던 사람은 자녀가 성공하고 재산이 불어나며 실패가 없었습니다.
당산제를 지내기전에 산신제를 지냅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 저녁 10시부터 제관, 이장, 집사등 제사장이 주민을 대표해 제를 지냅니다. 제물로는 삼색실과 돼지머리의 젓갈, 떡, 밥 등을 준비합니. 차례는 산신제, 강신, 제물진설, 제, 소지등입니다. 초헌, 아헌, 종헌 등이 세 번씩 절하며 마을의 평안과 각 집의 성공을 빕니다. 절하는 것이 끝나면 마을 주민의 나이를 노년,중년,청년 등을 상징하는 석장의 한지를 불에 태우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제가 끝난 뒤에는 노인정에서 기다리는 주민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흥겨운 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오리목 마을에는 54세대 187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를 열 며 대동회를 통하여 마을의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1990년 노인회관을 세우고 겨울에는 회관에서 공동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1996년 상당산과 하당산이 있었습니다. 이 해에 우리네 어머니가 정성스레 제수를 장만해 강신을 염원했습니다.지게를 놓은 채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저 남자는 누구일까요.<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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