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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용담

<4>용담면 원장마을

 

 

 

 

1997년 설 전날, 용담면 원장마을 노인정에서 돼지를 잡은 후,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포즈를 취한 마을 사람들의 중앙에 아심불로(我心不老)’라는 글귀가 선명합니다. 오늘따라 이삼만이 휘호한 이같은 글귀도 생각이 나는데요. ‘나는 늙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풀이가 가능하지 않을런지요.

孰是孰非如聾過(숙시숙비여농과):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와 험담은 귀먹은 바와 같이 하라는 글귀가 오른편에, ‘水成潭處却無聲(수성담처각무성):물이 연못을 가득 채울 때면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글귀가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23명의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돼지를 잡는 일이 아낙네가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인가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용담면 수천리 원장(元長)이란 이름은 1914년 마을이 통폐합 될 때, 원두리(元頭里)와 장미룡리(長尾龍里)를 합하면서 두 마을 이름의 머릿자를 취해 됐다고 합니다. 수천리(壽川里)는 주자천이 원장 마을 앞을 흐를 때는 수성천으로 부른 바, 이 때문에 마을을 수천동 또는 수동이라고도 불렀으며, 여기에서 수천리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토방의 쾌종시계는 오후 445분을 알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삐 살아가는 시대에 살지만 원장마을의 쾌종시계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일도 없습니다. 내 할 일만 하면 된다는 듯이 시계추만 오뉴월 쇠부랄 처럼 매달려 왔다갔다 합니다.

때마침 동네에서는 잔치를 치르기 위해 공동으로 돼지를 잡았습니다. 대부 분 집에서는 가족의 규모나 경제적 사정에 따라 한 근인 600g 또는 두세 근을 사서 설날을 보냈습니다. 동네 일부 몇집을 빼놓고는 일 년에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그것도 삼겹살이 아닌, 돼지고기 미역국을 끓여 먹는 시기는 추석이나 설날, 아버지 생일상 이외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돼지를 잡으면 돼지 잡는 아저씨를 졸라 간신히 얻은 돼지 오줌보로 축구공을 만들어 해가 가는 줄도 모르고 놀곤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짚공을 신나게 차다 보니 어릴 적 돼지 오줌통을 가지고 공을 찼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에서 어른들이 돼지를 잡으면 으레 나오는 게 돼지 오줌통입니다. 물렁물렁하고 얇아 금방 터질 것 같으면서도 요상하게 잘 터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고무신을 신고 차던 우리들은 나중엔 맨발로 공을 찼습니다. 그러면 그 느낌이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공을 차다 말고 어떤 녀석은 냉큼 손으로 오줌통을 들어 가슴에 대곤 낄낄거렸습니다.

여드레후에 맞이할 설날은 한 해의 첫날(元旦)로 송구영신의 기점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묵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는 설은 근신의 날신(愼日)인 동시에 한 살을 더 먹는 날입니다. 원장마을 출신 실향민들은 지금 어디서 차례를 준비하고 있나요. 이제, 그만 지워버려야만 될 것은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서로의 인생 시계를 돌아보며 "세월을 아끼자"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떡국을 풍성하게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샌가, 까치 한 마리 가지 끝에 앉아 새파랗게 질린 하늘을 엿보고 있습니다. 이제, 온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눌 바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조리를 매달아 놓을 바로 그때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고샅으로 나가고 싶은 오늘. 그때의 쾌종시계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성질이 느긋하고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여전히 쾌종시계가 제격입니다. 조심조심 손을 모아 세배를 드리니 새해맞이 희망 비나리입니다. <글 이종근, 사진 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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