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면 소재지 봉학리
눈꽃이 운장산 능선을 하얗게 넘어선 가운데 여린 겨울을 덮치며 하늘가로부터 몰려옵니다. 메마른 풍경과 방황하는 바람도 모자람 없이 고요의 하얀 시간을 잘도 품어냅니다. 눈을 뿌린 하늘은 한 가지도 부족함 없는 세상살이처럼 푸근하고 넉넉한 시간으로 쌓여갑니다.
정천시장 삼거리, 저 멀리론 진안과 주천이란 글귀가 선명한 도로표지판이, 가까이론 정천종합슈퍼가 보이는 가운데 10여 명의 아이들이 서설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그 시간, 어른들은 다방에 모여 용담댐 수몰 이야기로 시름이 운장산 봉우리처럼 쌓여만 갑니다.
정천면 봉학리(鳳鶴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산리와 학산리 일부를 병합한 후 한 자씩 글자를 따서 불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용담댐 건설로 일부 마을이 수몰돼 마조·학동·상항만이 남았습니다. 수몰되지 않은 곳에 조림 마을·신양 마을을 새로 만들고 마조·학동·상항·조림·신양 마을을 통합해 봉학리라고 합니다.
마고할멈이 바람을 데려오고 고요를 깨워낸건 순전히 숲 때문이었습니다. 흔적 없이 사라질 눈 속에 발이 묶인 산은, 꺽꺽 울어대는 겨울 산은 그래서 눈물없이 울어도 몸이 시립니다. 마른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혼자 있는 산은 외로워서 웁니다. 몸을 비빌 낙엽마저 다 떨쳐내 버린 겨울 산의 우는 소리는 그래서 더욱 처량한지도 몰라요.
봉학리는 정천면 소재지로 면사무소·우체국·경찰 파출소·조림 초등학교·농협 등의 주요 시설이 위치해 있었으나 용담댐 수몰로 인해 모든 기관이 비수몰 지역인 상항 마을(상조림·항가동)로 옮겼습니다. 서북쪽 운장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마조마을을 적시고 흘러내리는 마조천에, 그 동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학동 마을을 적시고 합수해 동쪽으로 흘러 맞바위·항가동·상조림·신양을 거쳐 용담호에 들어갑니다.
어린 시절 첫 눈이 내리면 만나자던 약속들... 사랑의 음악이 흐르고 찻잔에 스멀스멀 녹아드는 그리움이 지난 추억으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어느새, 기다림의 세월은 쌓여가는 눈만큼 소복소복 가슴에 숨기어 집니다. 지금은 그 추억들이 메아리처럼 돌아와 순백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당신은 1995년 그해 겨울 , 정천면 소재지를 기억하고 있나요. 솔숲 사이 사이 장끼 울음 새어나는 소담스러운 이곳 언덕배기에 숱한 꿈을 키우면서 나 여기서 영원히 살려했던 지난 날이 생각나는 오늘입니다.<글 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국장, 사진 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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