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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용담

<3>정천중 눈사람

 

 

 

 

1996년 겨울, 지금은 수몰된 정천중학교 대문 왼편으론 전국 불조심 강조의 달 플래카드와, 바로 그 앞에 까치집이 보입니다. 중학교를 알리는 표지석 빗돌 위로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눈사람이 녹지 않은 채 맨 위에 남아 있습니다. 새끼들을 건사하느라 무시로 들락거리던 미루나무 위의 까치집도 텅 비어 있습니다. 사각사각, 오솔길에 드러누운 빛바랜 들풀이 발길에 짓밟혀 부서지는 소리가 애처롭기만 합니다. 한때 하늘도, 들판도, 나무도, 풀도 한때는 푸름과 열망으로 가득하지 않았던가요.

마이산 높이 올라 내려다 보니/ 주천 안천 정천 합수쳐 용담이라/ 용담에 목욕하고 이골 평화를/ 천황사에 밤낮으로 기도하니/ 상전 담밭 김매는 아낙네들과/ 마령 평지 배미 배미 모내는 농군들의/ 우렁찬 풍년 노래 백운과 같이/ 퍼져가 집집마다 부귀와 성수/ 동향의 지하 자원 파내 가지고/ 진안에 살고 지고 진안에 살고 지고/에라 좋네 좋고도 좋네/좋다 지화자자 좋고도 좋다

1953년 제정된 진안군가는 당시 진안군수였던 김재영이 작사하고 진안중학교 음악 교사였던 고경석이 작곡한 성악곡으로, 진안의 자연과 마을의 특징을 살려 표현한 가사가 돋보입니다.

옥려봉 비친 햇살 꽃구름피고, 정자 천 맑은 물이 비단 펼치네, 아담한 보금자리 우리의 요람~, 그 이름 빛나리라 정천중학교~.’ 이 교가 가사처럼 아담한 보금자리 요람은 정자 천 맑은 물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 이름만이 빛나고 있습니다. 정천중을 졸업한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가 없습니다. 용담댐이 만들어지면서 이 학교 또한 건물은 헐리고 그 터는 물속에 잠겨, 이제는 찾아 가고 싶어도 찾아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배미에서 팬티를 입고 수영하다가 남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연,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4km 비포장도로를 오가던 기억 등에 눈시울이 다 뜨겁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아수목원엔 정천중 교정에 살았던 느티나무가 옮겨 살아있으며, 수령이 320년이 됐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첫 눈이 왔을 때 무척 오랜만에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뭉쳐지는 눈을 동그랗게 굴려서 두 개를 나란히 올려놓고 보니 내 손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지요. 철이 지난 나무 열매로 눈을 박고 마른 풀잎을 잘라서 입을 만들고 멋지게 구부러진 낙엽으로 모자를 삼았지요. 그럴듯한 얼굴로 저를 향해 미소를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뿌듯하고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길 잃은 찬바람만 부질없는 용담중 표지석엔 까치집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이지요. 언젠가 떠날 거라는 걸 미리 알고서 말입니다. 2019정해년(丁亥年)’ 새해엔 저도 이 눈사람처럼 하늘을 우러러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주 웃어주고 싶습니다. 웃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는 구김살없는 영혼의 표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 부을 것처럼 우중충합니다. <글 이종근, 사진 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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