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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구봉령의 빈일헌십영차운(賓日軒十詠次韻

백담(柏潭)구봉령(具鳳齡)은 1568년에 전라도에 나가 재상(災傷)을 안찰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며,1583년에는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빈일헌십영차운(賓日軒十詠次韻)>은 이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이다.

‘빈일(賓日)’은 부산 동래 왜관에 있던 건물로,일본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구봉령은 <빈일헌십영>에 차운하였다고 밝혔지만,10편의 시를 다 짓지는 않았다.다만 <전주팔경>에 맞추어 건지산(乾止山),견훤도(甄萱都),경기전(慶基殿),공북정(拱北亭),기린봉(麒麟峯),봉황암(鳳凰巖),제남정(濟南亭),쾌심정(快心亭)등 여덟 곳을 차운했다.


一戎神烈靖東韓 갑옷을 입고서 매섭게 동한을 안정시키니
百戰山河永妥安 수백 번 싸움터는 길이 평안하게 되었네
繡戶雕梁瞻仰處 수놓은 문 조각 들보를 우러러 바라보니
孤臣白髮血心丹 고신은 백발이 되어도 붉은 마음뿐
右慶基殿(경기전)


濟羅分界竝衰微 백제 신라 싸우던 경계도 사라지고
奸孼圖王況足譏 얼자가 왕을 바람은 말할 가치도 없네
畢竟人心歸有德 사람 마음은 끝내는 덕 있는 곳으로 가니
當年雲物已全非 당년에 풍정이 이미 바루어 졌다네
右甄萱都(견훤도)


溪上晶熒碧玉岑 푸른 옥 같은 봉우리는 시냇가에 빛나고
白虹搖影透蒼林 햇빛 비치는 숲에는 흰 무지개 일렁이네
落紅來處尋無路 길도 없이 해 떨어지는 곳을 찾아가니
一曲瑤琴寫客心 가야금 한곡조가 객의 시름 그려내네
右快心亭(쾌심정)


龍飛鳳舞逗層空 허공중에 용과 봉이 날고
桃李芳園紫靄濛 복숭아 배꽃 핀 동산에 자색 안개 어리네
却愛舂陵佳氣在 문득 용릉에 아름다운 기운이 있음을 사랑하니
上林何獨賦靑蔥 상림에서 어찌 유독 푸르름을 노래하리오
右乾止山(건지산)


가장 먼저 노래한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기구와 승구에서는 남원의 황산벌에서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토벌하고 전주로 입성했던 이성계의 옛고사를 인용하였다.온 몸을 갑옷으로 감싸고 있던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서 죽이고 왜구를 토벌하였기 때문에 동한(東韓)은 평안하게 되었다고 칭송하였다.그러한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을 바라보는 화자는 곧 늙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러움이 온 몸에 가득하다.
두 번째 노래한 ‘견훤도’는 곧 완주(지금의 전주)를 말한다.완주는 곧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곳이다.후백제를 건국했던 견훤은 왕이 되기를 바랄 수도없는 얼자였다.승구와 결구에서는 유덕자(有德者)에게로 민심이 귀의하듯,민 심이 덕이 있는 이태조에게 기울어짐으로서 완주의 풍정이 바르게 되었음을 말했다.
세 번째는 ‘쾌심정(快心亭)’을 노래하였다.쾌심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제남정(濟南亭)으로부터 4리 떨어져 있다.시내를 따라 올라가면 산이 끊어지고 물이 돌아 내려가는 낭떠러지가 있는데,돌을 쌓아 터를 만들고 그 위를 정자를 세웠다"고 하였다.하지만 지금은 정자가 사라지면서 전주팔경에서도 사라졌다.
‘건지산’은 전주의 주산(主山)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용릉(舂陵)은 후한 광무제의 고향인 남양(南陽)의 지명이다.또한 주돈이의 고향이기도하다. 용릉은 곧 패향(佩香)의 다른 말이고,이는 곧 전주를 의미한다.상림은 궁중의 동산을 말한다.건지산은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李翰)의 묘소를 조성한 조경단(肇慶壇)이 위치한 곳이다.결구에서는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서 어찌 짙은 녹음 같은 산의 풍경만을 읊을 수 있겠는가?하는 반어의 언술을 취함으로써,건지산의 신성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 공북정(拱北亭),기린봉(麒麟峯),봉황암(鳳凰巖),제남정(濟南亭)등을 더 노래하였다. 조선전기에 이루어진 전주팔경과 관련된 지명들은 서거정이 맨 처음에 정했던 ‘경기전(慶基殿),견훤도(甄萱都),만경대(萬景臺),기린봉(麒麟峯),봉황암(鳳凰巖),건지산(乾止山),덕진연(德津淵),공북정(拱北亭),제남정(濟南亭),쾌심정(快心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전주천변의 물가에 세워졌던 공북정은 향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공부에 지치면 나와서 쉬던 공간이었다.

‘공북(拱北)’이라는 의미도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다’는 의미이다.‘ 제남정’역시 임금이 계신 북쪽에 비추어 남쪽에 파견된 지방관리가 그 지역을 잘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공북정,제남정은 실제 경치와는 상관없이 전주 향교와 밀접하게 연관된 누정들이다.이는 조선전기에 소상팔경 시를 본 따서 시를 짓는 과정에 유교적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拱北亭:螭陛丁寧一字欽。拜來天日照冠簪。傾陽豈敢斯須替。晨夜茙葵寸寸心。
麒麟峯:蔥瓏秀氣碧輪囷。漏洩坤靈萬古春。須識興王曾有象。前峯晴翠踴祥麟
鳳凰巖:人物寧論大小兒。穹巖山面峙雄姿。自從聖澤淪遐邇。彩羽和風日作儀
濟南亭:地靈人傑濟南多。文彩聲華軼古過。老杜詩名留秀句。風流千載較如何(전주 팔경시의 형성과정 및 특성 연구, 정훈 전북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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