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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

문화재청은 정읍 무성서원(사적 제166) 한국의 서원과 고창 등한국의 갯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무성서원은 신라후기의 학자 최치원과 조선 중종때 관리 신잠 등을 제사 지내는 곳으로, 교육 기능과 제사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이 가장 발달한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각 지역에서 활성화된 서원들이 성리학의 사회적 전파를 이끌었다는 점과 서원의 건축이 높은 정형성을 갖췄다는 점이 세계유산 등재에 필요한 탁월한 보편적 기준으로 제시됐다.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자리한 무성서원은 신라후기의 학자였던 최치원과 신잠 등을 모시고 제사지내고 있다. 원래는 태산서원이라 하던 것을 1696년에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무성서원이라 하게 됐다.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현가루, ·서재, 명륜당 등이 있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종종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무성서원이라고 부르는지 질문을 받곤 한다. 그 답의 하나는 무성리에 있어 무성서원이다. 그 나머지는 아래와 같다.

무성서원의 문루인 현가루(絃歌樓, 32층 건물)는 곱게 단청이 돼 있다. 이는 논어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공자가 무성에 가 현악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 소리를 들었다<子之武城 聞絃假之聲>’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현가루이고, 그래서 무성서원이 된 것이다.

현가루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자문의 현가주연 접배거상(絃歌酒讌 接杯擧觴: 현악기로 노래하고 술로 잔치하고 잔을 잡고 권함)’이란 문장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거문고를 타서 노래하고 술로 잔치하고, 잔을 공손히 쥐고 두 손으로 들어 권한다

  비파를 타며 노래 부르고 술을 마시는 잔치에서 술잔을 얌전하게 쥐고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권한다. 귀족들은 잔치할 때 당비파를 잡히고 이에 어울려 노래하면서 계속하여 술잔을 주고받았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노나라 무성(武城)의 현감이 되었던 바, 예악(禮樂)으로서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고 한다.

 공자가 이 고을을 찾아가니 마침 현가지성(絃歌之聲)이 들려와 탄복했다는 일화와 연관되는 명칭이며, 글씨는 손병호(孫秉浩)가 썼다고 한다. 다른 서원의 문루가 신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의미를 함축하는 내용인 것과 달리, 현가루(絃歌樓)는 원시 유학의 현실 참여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구한말 격동기 순국지사 면암 최익현 주도하에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이곳에서 각지의 유생 및 의병들을 집결시켜 격문을 열읍에 보내 호응을 촉구하는 무성서원 창의와 일제시대, 6.25를 거치면서 100년 이상의 세월을 지켜온 바 참으로 대견하다/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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