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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주 간납대(諫納臺)

간납대(諫納臺)의 비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창영
 

전주한옥마을 동쪽에는 오목대, 이목대, 간납대가 있다. 간납대는 오목대보다 약간 높고 이목대보다 약간 낮은 산이었다. 한때 남노송 사람들의 산책로이기도 했다. 오목대에는 고종의 친필인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란 비석이 있어 유명하고, 이목대는 태조 5대조인 이한사의 출생지로 알려졌다.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어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간납대는 그 이름조차 잊혀져가고 있어 아쉽다. 간납대는 지금 천주교전주교구청이 들어선 곳이다. 전주문화원 해설사에 따르면, 간납대의 유래는 옛날 이곳에 한산이씨 이기발, 이흥발, 이생발 3형제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기발이 사간원 헌납이라는 벼슬에 올랐는데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하여 사간(司諫)의 간(諫)자와 헌납(獻納)의 납(納)자를 따서 간납대(諫納臺)라 했다 한다.

 간납대는 전주시장을 지냈던 이주상 씨의 부친인 이석한 씨의 소유였다. 남문교회 강홍모 장로는 전라선 철도로 인하여 시내와 단절되어 쓸모없는 산으로 보이는 이곳에 이석한 씨의 협조로 영생학원 인가를 얻고, 개척교회인 영생교회를 세웠다. 언덕배기에 가건물로 교실 몇 칸을 짓고 간납대에 영생호를 출범시켰다. 교장은 강홍모 장로, 이사장은 부인 김삼순 여사가 맡아 영생야간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야간중학교는 먹고 살기에 힘들었던 시기여서 배움의 기회를 잃고 시내 유관기관에 사환으로 있던 남녀 학생들이 모여들어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

 전주시내에서 최초로 남녀공학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날로 발전해갔다. 유관기관의 기관장들은 야간학교 시간이 되면 학교 갈 시간이 되었다며 학생들을 퇴근시키는 등 배려를 하여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어두웠던 간납대는 형설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 간납대를 밝이고, 학교는 날로 번창해갔다. 그런데 3년만에 영생호는 좌초되었다. 소유주로부터 모종의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간납대 토지사용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를 신축할 수 없게되었다. 영생학원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봉착했다. 고민 끝에 간납대의 경계밖 박씨의 토지에 좌초된 영생호를 이르켜 세우고, 소유주와 협상 끝에 토지사용허가를 얻어내고 3층 짜리 건물을 세우니 이목대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얀 비행기가 북쪽을 향해 날아가는 형국 이었다. 새 건물을 짓고 구 건물은 여학교, 새 건물은 남학교로 분리하였다.

 간납대는 온통 황토흙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길이 진흙탕이어서 장화 없이는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다. 시내에서 신발만 보아도 영생학생들은 표가 난다고 했다. 진흑탕에 신발이 빠져 발을 빼면 발만 빠져나오고, 신발은 진흑속에 묻히곤 하였다. 그런데 이 황토흙은 그냥 황토흙이 아니라 황금토였다. 전주시내에서 집을 지으려면 지대가 낮아서 집터를 돋우기 위해서 이 황토흙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운동장을 닦을 필요도 없이 자연적으로 운동장이 이루어졌다. 중고등학교가 분리되자 중학교를 폐교조치하고 밤에 비어 있는 교실을 이용하여 영생야간대학을 설립하니 학벌로 진급에 손해를 본 직장인들이 모여들어 야간대학은 순풍에 돋 단 것처럼 날로 번창해갔다. 대학을 발전시키려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영생대학이란 교명을 전주대학으로 개명했다. 드디어 지금의 전주대학교 터에 토지를 널따랗게 확보하여 영생고등학교를 전주대학교 부근으로 옮기고, 영생고등학교 자리에 전주공업전문대학을 설립했다. 전주대학교를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려고 무리한 투자를 하는 바람에 부도가 나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정부는 관선이사를 선임하고 학교를 신동아그룹에 인계했다. 영생학원은 사라지고 강 장로는 목사가 되어 영생교회만 갖고 간납대를 넘겨주어야 했다. 신동아 학원은 공업전문대학을 전주대학교 옆으로 이전하고 간납대를 처분하게 되었다.

 간납대는 한동안 건설회사에서 아파트를 세우려 했으나 전주시가 고도제한을 하니 타산이 맞지않아 포기하는 바람에 천주교전주교구청이 사들였다. 영생학원은 초창기에 재력가들의 원성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인재를 배출해냈고, 오늘날 전주대학교를 있게 한 산실이므로 그 공적을 인정하고, 이 학원 캠파스 안에 강홍모 목사의 공적비를 세워주면 좋을 성싶다.

 간납대는 전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늘날 천주교신자들의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는 교구청이 들어서 있어서 전주의 명물이 되었고, 오늘날 세상을 비추는 등불 역할을 하고있다.(2014.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