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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흥덕 강선교


전북 고창군 흥덕면에 전해 내려오는 ‘기생이 만든 강선교-降仙橋)’는 흥미롭다. 조선 성종 연간에 강선이라는 기생이 사비를 털어 해마다 물난리로 큰 피해를 입는 냇물에 다리를 세웠다.
흥덕에서 서해안을 향해 십 리쯤 가다 보면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냇물이 있고, 이 냇물을 가로질러 놓여 진 다리가 하나 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이곳은 해마다 물난리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사람이 떠내려가고, 논이나 밭이 물에 씻기고, 집이 가라앉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이런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재난을 막겠다고 나선 한 사람이 있었다. 강선이라는 기생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남자들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나이 어린 기생이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선은 원래 훌륭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기생이 됐다. 강선은 입을 것 입지 않고, 먹을 것 먹지 않고 번 돈을 몽땅 털어 다리를 놓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냘픈 여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때는 조선 성종 때 일이었으므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관청에서 많은 협조를 했다. 성종은 농사를 나라 일의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저수지를 만들거나 둑을 쌓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때였으므로 강선이 하는 일에 관청에서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빈둥거리던 마을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 일에 나섰다. 몇 달이 지나 다리 공사는 끝이 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강선의 거룩한 뜻을 길이 새기기 위해 그 이름을 ‘강선교’로 붙였다고 한다.
‘기생이 만든 강선교’의 주요 모티프는 ‘기생 강선의 선행으로 세운 다리’이다. 일반적으로 설화에서 기생은 신의가 없고 욕심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배비장전’의 근원설화가 되는 ‘발치설화(拔齒說話)’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기생이 만든 강선교’는 다수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기생의 면모를 보여준다. 다리를 세우는 일뿐 아니라 만년에는 빈민 구제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희사했다고 한다. 기생 강선의 환난상휼의 정신은 이후 계월향, 논개 같은 의기(義妓)에게 이어 김만덕에게 계승됐다. 원래 다리는 없어졌고, 현재 흥덕면 석교리의 강선교는 새로 만든 것이다. 강선과 같은 훈훈한 사람이 그리운 무술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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