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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영주무섬외나무다리


영주 무섬의 외나무다리에서 제멋대로 만든 종이배를 보니 강물 위에 띄우고 그 안에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편지가 갔으면 좋겠습니다. 백지를 뒤집어 종이배 하나를 만드니 책갈피 항구마다 들어선 작은 배는 드넓은 망망대해로 꿈을 찾아 떠납니다. 도종환 시인은 ‘깊은 물’이란 시에서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쫒기는 그대는 //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껏 종이배 하나 뜰 얕은 물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소란만 피우지 않았는지도 돌아보곤 합니다. 지금은 잠시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잊는, 무념무상의 시간입니다. 부산의 영도다리축제, 충청의 삽교 섶다리 곱창축제, 생거진천 농다리축제, 전북 김제의 새창다리축제, 그리고 영주 무섬 외나무다리축제 등 지역마다 다리를 문화관광 상품화하기 위한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영주 무섬마을(경북 영주시 문수로 732-20,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은 조선 중기 17세기 중반 입향 시조인 박수(朴燧)와 김대(金臺)가 들어와 자리를 잡은 이래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써 유서 깊은 전통마을입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으로, 3면이 내성천과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입니다.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내성천은 맑고 잔잔하며 산과 물이 태극 모양으로 서로 안고 휘감아 돌아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룬 가운데 외나무다리가 있어 옛 일을 생각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무섬 전통문화마을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은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한 곳입니다.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 행사는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재현하고 있습니다.

마을 대항 씨름대회와 농악한마당, 사또행차, 과객 맞이하기, 쟁기지고 소몰고 건너기, 소풀지고 장분이 지고 건너기, 소 갈비짐 지고 건너기, 말타고 장가가기, 전통혼례식, 장례행렬(상여메기), 참석자 전원 다리 건너기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집니다.

이른 새벽 회룡포에 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가 짙어지며 온 마을을 뒤덮습니다. ‘육지 속의 섬’ 회룡포. 물길이 들어오는 입구를 한 삽만 뜨면 완전히 섬이 될 것 같은 곳입니다. 이 일대는 선경(仙境)이 따로 없습니다. 해가 뜨고 바람이 일면 금빛 백사장과 옥빛 물길이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며 절경을 연출해냅니다. 이른 새벽 장안사를 거쳐 전망대에 오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섬을 뒤덮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섬 마을 앞을 흐르는 내성천의 강변은 앞갱변(앞강변), 웃갱변, 아랫갱변, 그리고 머리갱변 등 강과 관련된 지명이 많습니다. 무섬마을에서 나가는 곳에 다리가 세 곳에 있었습니다. 영주로 가는 외나무다리는 뒷다리(연주 시장 갈 때 이용)라 했습니다. 지금의 수도교 쪽에도 다리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초등학교 등교 때 건너곤 했습니다. 박종우씨 집 앞 쪽에 난 다리는 들로 나갈 때 주로 이용, 놀기미다리라고 했습니다. 놀기미논으로 가는 다리였던 셈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1983년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이들 외나무다리가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다리의 중간 중간에는 마주오는 이를 피해 갈 여분의 짧은 비껴다리가 놓여있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건어오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로 길을 양보했습니다.

다리가 있던 입구 이름은 미럼나들(또는 머럼나들, 큰 다리 있는 곳), 멍덩굴나들(큰 다리에서 내려온 것), 놀기미나들(좀더 내려온 것), 띠앗나들(디앗 강변에 띠빨산 앞에 있는 다리) 등 여러 가지입니다.

원래 외나무다리는 지금처럼 많이 구부러진 S자형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촬영팀의 사진 효과를 위해 이같은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권고미 할머니, 김두한 할아버지 등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생애사는 당시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해줍니다. 그리고 외나무다리 이외에 현재 다리가 세 곳에 있습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는 길이는 150m로, 뭍과 섬을 잇고 다리의 높이는 하천 바닥에서 60cm, 폭은 30cm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옛날엔 마을 사람들은 반드시 외나무다리를 건너 뭍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아슬아슬 외다리를 건너 육지의 시장으로 가는 아낙들도,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물건을 팔러 오는 장사치들도,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도 모두 이곳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농사를 짓고, 장을 보고, 학교에 갔습니다. 옛날에는 저 다리로 가마타고 시집오고 또 죽으면 상여가 저 다리로 나갔습니다.

외나무다리는 여름이면 사라지곤 합니다. 비가 와서 물이 많아지면 다리가 쓸려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는 다리입니다. 때문에 구조도 간단합니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서 의자처럼 다리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물에 박아 넣은 것이 외나무 다리입니다. 하지만 여름이면 사라지는 다리라 농사일과는 호흡이 맞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논, 밭을 둘러보러 강 건너로 가야하는데 다리가 없으니 난감했습니다. 때론 마을 사람들은 물살이 약하면 헤엄쳐 건너가기도 했고, 한국전쟁때는 군용 보트에 의존해서 강을 건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다리를 다시 놓았습니다. 35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도교가 생기자 이 투박한 다리는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이곳 주민들과 마을 출신 인사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2005년 외나무다리를 복원, 매년 이곳에서 옛 다리를 기념하는 ‘추억의 외나무다리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외나무다리로 꽃가마 타고 시집왔다가 죽으면 그 다리로 상여가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곳이었습니다. 뽀얀 안개 속 강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 외나무다리를 걷다 보면 어느 새 혼탁한 세상은 간데 없고 신선이 됩니다.

“너~화, 너 화~, 너화, 넘차, 너화~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화 넘차 너화~~” 금빛 모래가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무섬마을 백사장에 구성진 상여소리가 퍼집니다. 이는 무섬마을에서는 ‘추억의 외나무다리 축제’ 의 개막식 가운데 한 장면입니다.

햇살에 부딪쳐 반짝이는 잔물결들이 두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했나요.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의 심성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원수는 없고 은혜만 있는 사람도 없고, 은혜만 있고 원수는 없는 사람도 없지 않나요.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데, 돌아보면 종종 우린 그것을 거꾸로 할 때가 많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잃어버리고 버려야 할 원수는 돌에 새겨두고 기억하는 것은 아닌가요? 가장 멋지게 원수를 갚은 일은 용서하며 살다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더라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은혜라는 말로 철철 넘쳐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돌에 새겨야 할 것과 물에 새겨야 할 것을 잘 구분하며, 오늘도 행복한 일상을 추구합니다. 강물은 변함없이 마을 앞을 휘돌고 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와 다시 보는 강변 백사장. 저 멀리 외나무다리가 중천을 넘긴 햇살을 받아 기다란 실루엣을 드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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