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고부면사무소 입구 군자정(전북 유형문화재 제133호)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달 중순부터 연꽃들이 화사한 자태로 수줍은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도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금상첨화로 금붕어와 비단잉어 600여 마리가 자유자재로 헤엄을 치고 있어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연정(蓮亭)’이라고도 불리는 군자정은 원래부터 연못으로 둘러싸인 정자로 고부지방 선비들이 자연을 맘껏 구경하면서 시를 짓고, 읊조렸던 곳입니다.
‘군자정’이란 이름은 ‘연꽃은 꽃의 군자(蓮花之君子者也)’라는 말에서 유래, 알싸한 향기를 뽐내는 연꽃이 활짝 피어 주민들의 쉼터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뭍과 물에서 피는 초목의 꽃 중에서 사랑할 만한 것이 실로 많으니, 진대의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때부터는 세인들이 모란을 몹시 아끼게 되었으나, 나는 유독 연을 사랑하니,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결에 씻기면서도 요망하지 아니하고 속은 통하되 겉은 바르며, 넝쿨을 치지도 않고 가지를 뻗지도 않으면서 향기는 멀수록 더 맑아지고, 우뚝 맑게 선 모습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때 묻히기는 어려운 까닭이라. 나는 말한다, 국화는 은일하는 사람의 꽃이고, 모란은 부귀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꽃이지만, 연꽃은 군자의 꽃이라(蓮花之君子者也). 아, 국화를 사랑한다는 얘기는 도연명 이후 들어본 적 드물고, 연을 사랑함에 있어 나와 같은 자가 얼마나 되리!, 그저 모란을 사랑하는 이가 많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라는 주렴계(이름은 돈이, 자는 무숙)의 ‘연꽃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愛蓮說(애련설)’로부터 비롯됩니다.
‘연정’이란 이름이 군자정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1764년에 이세형이 수리하고, 1900년에는 조규희가 연못을 파내고 고쳤으며, 1901년에 다시 짓기 시작해서 1905년에 완성했다. 이곳에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조선 중기 이후 고부마을에 인재가 나지 않아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도 없고, 군수들이 온지 1년도 안되어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연정이 황폐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1673년에 이후선이 연못을 파고 정자를 수리한 후로 인재가 나왔다는 설이 있지요. 향교의 위치가 관아보다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운이 막힌다는 전설이 있어 1765년에 동헌을 지금의 고부초등학교로 옮겼다고 합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종자부실(種字不失), 화과동시(花果同時)’ 등 연의 덕성은 불가의 경우, 수행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더러운 곳에 몸을 담고서도 저는 항상 맑고 향기롭고, 어디서나 본래의 밝은 성품 한결같으며, 그런 이타행 속에서 깨달음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유가의 이상과는 상통하기도 하지만, 사뭇 다릅니다.
군자는 유가의 이상적 인간형입니다. 인의예지신을 갖춰 평천하를 추구하지만, 실은 평천하보다 수신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주렴계가 저 홀로 청정하고 향기로워 감히 다가가 언행을 섞기 어려운 연꽃을 군자의 상징으로 꼽은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반면 불가의 보살은 애써 더러운 곳에 몸을 담가 더러움을 정화하고 스스로는 깨달음을 이루려는 인간형입니다. 외형의 서술로는 주렴계의 애련설이 적실하지만, 그 생태를 살피면 불가의 정리가 과학적입니다.
‘ 봄은 도악(道嶽)이 깊으니 모든 나무에 꽃이 피니 봉황대(鳳凰臺) 위에 안개가 개이고 달이 두승산에 오르니 밤이더라 서리눈이 많이 내리니 푸른 솔이 차고 금학루(琴鶴樓) 앞에 해저문 북소리로다 안개가 거두었으니 푸른 대나무가 맑도다’
‘군자정’ 주련의 글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나브로, 군자정 주위를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다보면 연분홍색으로 물들은 화사한 연꽃과 그 향기에 취해 무더위에 지친 심신이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입니다.
누가 알지 않으랴, 나도 모르게 알싸해지는 이 마음을,
누가 걷지 않으랴. 군자가 된 듯한 가벼운 이 걸음을.
하늘을 보면 하늘 닮은 사람이 됩니다. 연꽃을 보면 연꽃 닮은 사람이 됩니다. 오늘도 하늘 닮고 연꽃 닮은 여러분들과 함께 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