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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정읍의 상춘곡(賞春曲)비

 

 

 

 

 

 

 

 

 

 

 
 태산의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하는 글 ‘상춘곡’
 
 정읍은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로 호남인의 자존심을 간직한 고을이며 유일하게 전해오는 백제가요 <정읍사>와 사대부 가사의 최초 작품인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을 비롯한 자랑스러운 문화와 역사에 빛나는 정읍지역은 현대문학사에도 많은 시인. 소설가를 배출하였다.  장마의 계절이지만 반짝한 틈에 충절을 지키고 풍류를 즐겼던 호남지방 선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정읍의 칠보를 찾았다.
 칠보는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의 고을이다. 불우헌 정극인을 비롯해 최치원, 이항, 최익현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낸 인재의 고을이기도하다.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은 무성서원을 비롯해 서원과 사당이 즐비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태산선비문화의 뿌리부터 궁금해진다. 886년 태산 태수 ‘최치원’의 리더쉽에 의해 유교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최치원의 시가에서 싹튼 풍류와 낭만이 조선시대 정극인(1401~1481)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경기도 광주 총각 ‘정극인’이 정읍사 여인의 기다림에 이끌려서 일까, 정읍여인을 아내로 맞는다. 과거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고 세종이 흥천사를 증건하자 부당함을 항소하다 유배를 갔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처를 따라 태인(泰仁)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집을 짓고 거처하며 집의 이름을 ‘불우헌’ 이라고 지었다.  잠시 공직에 나가지만 단종이 폐위되자 사직서를 던지고 태인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자신의 처지를 <상춘곡>으로 표현했다. 벼슬에 뜻을 접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성종이 정3품 당상관의 품계가 내리자 성군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불우헌가’와 ‘불우헌곡’을 지었다.우리나라 최초 가사인 ‘상춘곡’의 저자 정극인은 태산의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하는 글이다. 1481(성종 12)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정극인 묘가 있는 원촌마을에는 불우헌의 동상과 ‘상춘곡 시비’ ‘태산선비사료관’이 세워졌다.  ‘상춘곡’을 감상해보자.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 옛 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 한 이 많건마는 산림에 묻혀 있어 지락을 모르는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앞에 두고 소나무 숲 울창한 속에 풍월주인 되었어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화 행화는 석양 속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는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마름질했나 붓으로 그려 냈나 조물주의 솜씨가 물물마다 대단하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거니 흥이야 다를쏘냐 . 사립문에 걸어 보고 정자에 앉아 보니 소요음영하여 산속 하루가 적적한데 한중진미를 알 이 없어 혼자로다. 여보소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꾸나. 답청일랑 오늘 하고 욕기란 내일 하세. 아침에 나물 캐고 저녁에 낚시 하세. 갓 괴어 익은 술을 칡베로 밭아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 놓고 먹으리라. 봄바람이 건듯 불어 녹수를 건너오니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에 진다. 술병이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작은 아이에게 주막에 술을 물어 어른은 막대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맑은 모래 깨끗한 물에 잔 씻어 부어 들고 청류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들이 그곳인가 소나무 숲 가는 길에 두견화를 붙들고 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 많은 마을이 곳곳에 벌여 있네. 연하일휘는 비단을 펼쳤는 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사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단표누항에 허튼 생각 아니 하네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 한들 어떠하리'
 
 사대부 가사의 최초 작품인<상춘곡>은 자연을 즐기는 양반 처사의 소요음영과 강호한정의 심경이 잘 묘사되어 물아일체의 경지와 취락을 즐기는 풍류의 미학이 뛰어난 서정가사이며 정격 양반가사이다.
 정읍은 현대문학에도 많은 작가를 배출하는데  김소월 이후 최고의 서정시인 으로 불리기도 하는 ‘박정만’의 ‘산 아래 앉아’ 시비가 문화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46년 정읍 산외면 출신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 시 겨울속의 봄 이야기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박정만은 80년대 군부독재시절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투옥과 고문 끝에 후유증으로 요절한 천재시인이다.  그의 시비는 내장호 부근에 서 있다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와 정읍사비, 송동균의 ‘思井邑’시비와 함께자리하고 있다. 산외중학교 교정에 소고당 ‘고단’의 가사비가 건립되어있으며 산외면 정량리 원정마을 입구에는 송기섭의 시비가 있다. 정읍에는 이외에 이평면 양성우시인의 ‘만석보’ 시비가 있고 황토현 전적지 고갯마루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과 함께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로 시작된 민요 가사비가 있다./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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