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각은 아날로그적으로 작동하고, 우리의 생각은 디지털적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은 항상 아날로그를 향해야 합니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이를 '디지로그'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를 '휴먼로그'로 부릅니다. 언제나 비가 오는 날이면 향기 나는 사람의 냄새를 곧잘 기억합니다. 그 냄새는 웃음이 묻어난다는 소리의 파동, 그것은 흐린 날을 한 방에 지배해버릴 수 있는 은은한 커피의 향, 그것은 비 뿌리는 구름 사이로 뻗치는 햇살의 구김살 없는 빛. 떡을 하거나 부침개를 부친 날이면 돌담 위로 오갔던 소쿠리는 내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혹시 '기억'과 '추억'의 차이를 아세요? 기억과 추억 모두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회고하는 것, 지나간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라는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기억을 기억으로, 추억을 추억으로 나눌 수 밖에 없게 하는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움'입니다. 지난 순간을 떠올릴 때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기억'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추억을 생각할 때는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거나, 서늘해지는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지만, 기억은 어떤 순간에 대한 정확한 사실만 떠오를 뿐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기억'으로 알고 있었던 과거가 어느 순간 '추억'으로 바뀌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소중함을 몰랐다가 뒤늦게 소중함을 깨달았던 기억이 후회와 미련 가득한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기억' 혹은 '추억'이 됩니다. 오늘의 어떤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 오지 않듯이, 비슷비슷해 의미없어 보이는 이 일상도 언젠가는 반드시 추억으로 '그리워 하는' 순간으로 남는 날이 옵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비슷하지 않은 바로 오늘입니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부산 원도심 역사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원도심 근대역사 골목투어’를 개발, 2015년 6월 14일부터 스토리텔러 이야기 할배·할매를 안내자로 파견, 국내외 관광객을 맞고 하고 있면서 우리들의 기억과 추억을 되뇌이게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부안의 영도대교는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나요. 추억의 영도다리가 복원돼 2013년 11월 27일 개통식과 함께 매일 낮 12시부터 12시 15분까지 15분간 한 차례 상판을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바닷 바람이 매섭게 느껴집니다. 오고가는 작은 배들을 볼 수 있었고 영도와 자갈치 시장 등이 보입니다. 영도대교가 들리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다리 밑에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기다란 안전바가 내려가고 완벽한 통제를 위해 올라가 있던 철근이 내려와 앞을 막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다시 흘러나오며 톱니바퀴가 돌아갑니다. 육중한 다리가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각자 그 순간을 추억하며 사진을 찍고 감상합니다. 5분 동안 서 있던 다리는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다리가 완전히 내려가고 통제가 풀리자 하나 둘 씩 돌아갑니다.
전주 한옥마을이 국내 여행지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연간 600여 만명이 찾는 부동의 내륙 관광 1번지로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빈약한 문화컨 텐츠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전주가 추억을 잘 팔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추억을 사가게 하는 데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최명희작가는 이름조차 희미한 추억 속, 고향집 기억은 저마다 한 채의 집을 짓는다고 말했지요? 아날로그의 미학은 기다림입니다. 그 매력을 꼽을 때 가장 많이 드는 예가 진공관 앰프입니다. 차가운 디지털 앰프에서 이를 느끼긴 쉽지 않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리매김했지만 반대로 새삼 필름 카메라를 찾는 이들도 많습니다. 스마트폰의 주소록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고 몇 권의 명함 첩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은 외롭습니다. 사람들과의 전주에서의 진솔한 만남이 그립습니다.
추억, 사는 것인가요, 파는 것인가요?/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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