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숟가락은 비어 있어서 밥을 뜬다 그리고,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하여 비워진다. 너는, 누구의 밥숟가락이냐'(김용옥시인의 '밥숟가락')
오늘따라 제 밥숟가락이 어찌 저리 작아보이는지요. 내 속에 '빈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들어오고, 지인들의 생각이 들어오고, 새로운 지식과 지혜가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허겁지겁 담아 넣기 바쁩니다. 자꾸 채워 넣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고 초조함이 덜해질 것 같아섭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이, 내 머리 속이 가득 차있고 번잡하기만 해서는 오히려 더 큰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판단력,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혜안, 멀리 보는 지혜는 이렇게 내 마음에 빈 공간이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닌가요?
아이나 후배에게 해주는 선의의 훈계도 내 속에 빈 공간이 있어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선승의 이야기가 전해줍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사람에게 그 선승은 찻잔에 차를 계속 따르라고만 시킵니다. 말로 된 설명이 아니라 넘치는 찻잔을 보며, 그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차를 따르려면 먼저 찻잔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보며, 그는 도의 이치를 알아차린 것이지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만든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쉴 수 있고, 소중한 이들이 나와 진실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진정한 지식과 지혜가 들어올 수 있는 내 속의 빈 공간.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항상 마음 속의 일부를 비워두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지 흘러가지 않고 고이게 되면 그것이 생각이든, 돈이든,애정이든 반드시 썩게 되고 냄새가 나게 됩니다. 고인 것은 반드시 흘러야 하고 비워져야 합니다. 맛있는 걸 먹어도 늘 반쪽은 텅 비어 있어 그 나머지 당신 몫은 그리움으로 채웁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면 늘 창가에 머무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마음 속의 굳은 다짐을 당신 그리울 때 마다 더운 가슴 안에 가득 채웁니다. 가진 것을 버릴 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고 있느냐를 질문합니다. 그래서 종종 끝없이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납니다. 무언가를 채우기를 추구할 나이가 아니어서 이제는 조금씩 더는 연습을 합니다. 흐르고 비우고, 나누면 됩니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 연탄 한 장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