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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익산심곡사 ‘山공부’

“심금을 울려라” 피끓는 메아리 득음 ‘山공부’

 

 

 

 

 

 

 

 

 새벽 4시 30분,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춘향이 홀로 앉아 임을 그리는 구성진 판소리가 어둠을 뚫고 익산 심곡사(주지 화평스님, 익산시 낭산면)의 깊은 잠을 깨운다. 미륵산 북쪽의 영봉 너머로 동이 터오자 널브러진 바위 위에 유치원생부터 60세가 넘은 사람에 이르기 까지 하나 둘씩 모여 들다보면 금새 20여 명에 이른다.
 여름방학을 틈타 캐나다에서 온 레이먼 몬탈베티(61.샤스 캐치 원 대학 연극과 교수)와 그의 부인 정애란(44.프랑스 파리 8대학 박사 과정), 7살바기 이아이린양, 그리고 10월이면 처음으로 완창 발표회를 갖는 박정한(60.군산지방법웝 집행관)씨에 이르기까지 예비 명창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온종일 ‘득음’을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른 바 소리꾼들의 일년 농사와 다름없는 ‘산(山)공부(獨功, 독공)’을 하고 있는데 다름 아니다. 식사를 빼놓고는 오로지 소리를 내지를 뿐이니, 그 과정을 우리는 ‘독공(獨功)’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독공(毒功)’은 아닐까?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 즉 새소리, 바람소리. 귀신소리 등 어떠한 소리든 자유 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득음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판소리의 가장 깊은 융숭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청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 터이다.
 익산출신 정정렬(丁貞烈, 1876~1938)명창이 득음했다는 바로 그 심곡사에서 임화영명창(53.익산국악진흥원장, 한국국악협회 익산지부장)이 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준비한 이번 여름 산공부는 지난 2일에 시작, 16일까지 계속될 터이다. 정명창은 ‘떡목(판소리에서 목성이 탁하고 음량이 부족하며, 고음부인 상성(上聲)이 좋지 않아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어려운 거친 목)’이란 치명적 한계에도 불구, 심곡사 등지에서 ‘산공부’를 통해 육신의 고통을 견딘 나머지, 훗날 국창 반열에 올랐다.
 “‘정정렬 명창 득음 기념 심곡사 떡목공연장’ 은 숱한 악조건을 수십 년간 극복한 가운데 거칠면서도 힘이 있는 극적인 면을 살려낸 정명창을 기리기 위한 공간입니다. 익산시와 심곡사 주지스님 등이 공연장 지하와 인근에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지난해부터 이 곳에서 ‘산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임명창이 이끄는 산공부는 그동안 익산시 금마면 재실, 고창군 고수면, 완주군 안심사, 함양군 지리산 칠선계곡 등지에서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기도. 시나브로 임명창이 춘향가 중 ‘춘향이 이몽룡을 그리워하는 대목’인 '갈까부다' 를 선창하자 이내 학생들이 곧바로 따라한다. ‘갈까부다 갈까부다 님 따라서 갈까부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다 쉬어넘는 청석령고개 님 따라 갈까부다 하늘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 일도 보련마는 우리 님 계신 곳은 무삼 물이 막혔간디 이다지 못가는가’
 이도령이 한양으로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춘향이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이 대목에 갑자기 눈시울이 다 뜨거워진다. 몬탈베티와 정애란씨는 “익산에 우연히 지인을 만났다가 임명창이 운영하는 국악원을 보고 이번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정씨는 서울출신으로 아주 오래 전 안숙선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배웠지만, 그녀의 남편은 처음으로 판소리를 만나고 있는 것. 몬탈베티씨는 “외국인이라서 전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이처럼 선생의 표정과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면서 “이번의 환타스틱한 경험은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자리할 것 같다”고 귀띔한다.
 뙤약볕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동안에도 이들 소리꾼의 애절하면서도 정제된 소리는  물줄기를 차고 오르는 물고기의 비상처럼 맑고 청아한데, 깊은 여운을 머금은 채 심산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메아리쳐 창공으로 울려퍼지고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