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강 모래톱 사람들
김 상 휘
봄
- 향수병(鄕愁病)에 시달렸던 소년은 가난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아도 눈빛이 젖고, 바람 불지 않아도 취한 듯 흔들거렸던 가난에 몸부림한 고향 사람들의 힘겨웠던 궤적들을 그리고 있었다. -
선운산 노을이 벌겋게 물들어 가면 병 바위 텃새 떼는 노을 속으로 깊게 빨려갔다 쏟아져 나오는 곡예를 시작한다.
들녘에서 하루를 보낸 어미 소의 지친 풍경소리가 어둠을 밟으며 마을길로 들어서면 그때서야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의 고단한 하루는 저물어 갔다.
해마다 돌아오는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의 봄들…
채전 밭 노랑나비가 영롱한 봄 햇살을 잘게 부수며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는 동안 마루 밑 강아지는 눈꺼풀이 그리도 무거운가 보다.
소년은 병아리의 여린 소리에 괜한 미소를 짓다 꽃바람이 양 볼과 손등을 스치면 손은 이미 골 마리 깊은 곳에 쑤셔 넣고 고개는 자라목이 된다.
마을 입구 소릿재를 바라보던 소년은 작년 봄, 오색 깃발을 높게 휘날리며 우마차를 앞세운 곡마단 행렬을 환영(幻影)하고 있었다.
“얘! 오늘밤 저 사람들이 마술을 한다는데 구경 가지 않을래?”
남순이의 호기심 찬 목소리였다.
“………”
“저 애들은 매일 얼굴에 예쁜 분칠을 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할까?”
남순이는 소릿재를 넘어오는 소 구루마 위 소녀애 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행복이 뭔데?”
“매일마다 얼굴에 분칠하고 춤추는 것이지.”
소년은 이해하기 힘든 표정으로 남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순이 어미는 오래 전부터 소년 집 부엌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소년과 남순이는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소꼽놀이 때면 소년은 의례 아빠가 되고 남순이는 엄마가 되었다.
남순이는 계집애지만 또래 애들 중에서 겁 없는 아이로 유명했다. 어느 날 남순이가 꽃뱀을 거꾸로 잡아들고 새끼 도깨비처럼 나타났을 때 친구들은 괴성을 지르며 곳곳으로 흩어져버리자 남순이는 구리 빛 미소로 하얀 이를 들어 낸적이 있었다.
남순네는 아들 복 없는 집으로 근동에서 알려진 집안이다. 아들을 얻고자 아이를 계속 낳았지만 여 동생만 더 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단골 애미가 배부른 남순이 어밀 보고 이번만은 틀림없는 고추로 예측했으나, 딸 쌍둥이를 낳게 되자, 대문엔 금줄도 걸지 않았으며, 산모는 미역국도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곡마단은 소년 뒷집 학천댁 마당에 커다란 차일 막을 쳐 놓고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밤하늘은 뚫어진 창호지처럼 별빛들이 어지럽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트럼펫 소리가 달근한 봄 공기에 섞여 마을 골목을 떠다니자 사람들은 서서히 들뜨기 시작했다.
소년도 저녁밥을 대충 시늉하고 잰걸음으로 학천댁 네를 찾자, 무대는 발전기를 이용한 백열전등아래서 사물놀이패들이 신명나는 고갯짓을 하고 있었다.
남순이 또래 소녀애 들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다리를 묘하게 벌리면서 박수갈채를 얻어내고 있었다. 남순이도 손바닥이 아프도록 치면서 저애들을 괜히 부러워하고 있는 듯 했다.
이번에는 난쟁이가 두 눈을 쏟을 듯 양 볼에 공기주머니를 만들며 트럼펫을 불어대자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흔들려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곡마단의 숨 가쁜 묘기는 마을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석유 마신 마술사가 용가리처럼 긴 불을 관중석에 내뿜었다. 그리고 날렵한 몸동작으로 허리춤에서 예리한 칼을 뽑아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서 자신의 목을 천천히 관통시키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때 사회자가 용수철처럼 무대로 튕겨 올라와 손을 내 저으며 칼 묘기를 중지 시키고 있었다.
“아… 잠깐만!”
사회자의 돌발적인 행동과 급한 말에 사람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여러분! 마술사의 운명이 이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날카로운 칼끝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들이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정신이 흩 뜨러져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끝까지 자리만 지켜 주신다면 칼 마술은 성공적으로 끝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쉿!”
사회자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면서 긴박함을 유도하자, 마을 사람들은 고인 침마저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남순이 역시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틈새에 끼여 긴박한 마술 쇼에 넋을 놓고 있었다. 어렵게 칼 묘기를 끝내자, 마을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 묘기는 지리산과 계룡산에서 10년 동안 도를 닦았다는 차력사가 깨진 유리 조각을 손바닥으로 비빈 뒤 누룽지를 먹듯 맛있게 씹어 삼키고 있었다.
이때 사회자가 다시 무대 위로 뛰어올라 마술사가 목에 칼을 찔러도, 불을 먹어도, 유리조각을 누룽지처럼 맛있게 먹어도 몸에 이상 없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나온 만병통치약 때문이라며 설명하자 약은 그 자리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말았다.
사회자는 기분이 매우 좋았던지 이번에는 소리꾼 목으로 바꿔 심봉사 심청이와 이별하는 대목을 서럽게 토하기도 하고, 춘향전에서 어사또 출도 대목인 ‘암행어사 출도야!’를 외치며 목울대에 핏줄을 세우기도 했다.
소년은 날이 새면 남순이에게 오늘밤에 보았던 짜릿한 마술들을 흉내 내보리라 맘을 먹었다. 곡마단들은 약을 다 팔고서 마을노래자랑을 유도했다.
제일 먼저 출연자는 당숙집 부엌일을 하고 있던 말숙이 누나가 빨간 댕기머리를 입에 물며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면서 살짝이 흔들어대는 엉덩이짓에 마을어른들은 야릇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 커버렸네.”
곡마단 묘기들은 소년의 꿈속에서까지 땀을 쥐게 했다.
소년이 늦잠에서 깨자 해는 싸리문 입구 키 큰 깨죽나무 꼭대기에서 앉아 있었다.
“엄-니!” 눈 비비며 어머니를 찾는다.
“아들! 이제야 일어났는가.” 채전 밭에서 씨 고구마를 고르던 어머니가 머리 수건을 벗으면서 다가왔다.
“남순이가 우리 아들과 심심치 않은 친구였는데… 이제 어쩌면 좋을 꼬”
“무슨 말이 당가요?”
“계집애가 당돌 허기도 하지, 어젯밤 그 곡마단을 따라 떠나기로 했단다. 글쎄.”
“………”
“계집애가 마술을 배워 어디에다 쓰려구…”
소년은 햇살이 깔린 동구 밖으로 급하게 뛰어 나가본다. 마을입구가 보이는 모정에 당도하자 남순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우지 말어라우… 어려운 보릿고개 시절에 오히려 다행이지라우, 난장이가 약속 했잖어라우 아무리 어려워도 밥만은 굶기지 않겠다고...”
“막상 남순이가 떠나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메어 와서 그럽니다.”
진달래가 흐드러진 소릿재 소녀애들과 남순이를 실은 소 구루마는 잠깐의 휴식도 없이 빠르게 넘어갔고, 소년은 소멸해버린 곡마단의 화려한 행렬들을 허망함으로 환시(幻視)하고 있었다.
영모정 소재 아산초등학교 벚꽃이 만발하면, 잠잠했던 근동의 소문들도 봄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이웃동네 노총각 덕보가 밤마다 퉁소로 콩새 소리를 내 마을 처녀들을 시누대밭으로 홀려내 헐래 붙는다는 둥, 부안면 꿩 사냥꾼하고 눈 맞아 떠난 판순이가 부안 장에서 아예 박재 꿩장사로 들어 앉았다는 둥, 인천강 모래톱 빨래터는 허벅지 하얗게 드러낸 아주머니들의 홍조 만만한 이야기들이 급물살을 탔다.
소년은 인천강 빨래터와 은어 잡이에 여념이 없는 마을 청년들을 번갈아 보며 라디오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군가를 자신도 모르게 옹알거렸다.
“가시는 땅 월나암-땅 맹호부대 용사들아…”
얼마전 구암, 호암, 마명 마을에서 월남을 자원해, 아산면 일대가 어수선했는데, 이번엔 반암마을 태수 형이 월남을 자원하자 우리 동네도 어수선해져 갔다.
월남에서 탄피 세 말만 더블 백에 넣어오면 논 몇 마지기는 살 수 있다는 군침 섞인 말도 함께 돌아다녔다.
하지만 베트콩들이 워낙 날렵하고 무서운 악질이라는 것을 소년도 알고 있어 마음 한구석엔 걱정이 들었다.
소년은 태수형의 택견 실력이라면 베트콩 몇 명쯤은 동시에 당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천강에서 천렵이 지치기라도 하면 떡가래 같은 모래톱을 누비며 택견 시범과 당수로 두툼한 널빤지 몇 장씩을 격파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무료함을 잊기 위해 동무들과 삘기나 소나무 송기(松肌)를 벗겨 먹기 위해 앞, 뒷산으로 몰려 다녔다.
그러다가 나무꾼이 우리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짧게 외마디를 던진다.
“각시바위 쪽엔 가지 마라.”
“왜-요?”
“…그곳엔 뱀이 많아서다.”
“무슨 뱀인데요?”
“흑질백장이지.”
“흑질백장요?”
“그래, 구렁이 숫놈?”
“예…!”
각시바위 쪽에 뱀이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제비새끼 마냥 입술을 동시에 내민다.
그래서인지 각시바위 쪽은 언제 보아도 숲이 무성해 당장이라도 구물구물한 뱀이 기어 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들은 주로 각시바위 반대 방향인 뒷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진달래를 꺾거나 삘기를 뽑아 먹었다.
앞산은 봄이 되면 지천으로 핀 진달래와 아련히 들려오는 새 소리가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소년은 태수형이 언젠가 새끼줄로 온몸을 감고 회전기법으로 올라갔다던 앞산 왕 소나무를 올려다보자 머리끝에서 아득한 빈혈이 왔다.
겨울동안 너구리가 동면했다던 바위 밑구멍에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귀를 대본다. 그러다 옆에서 파드득 꿩이라도 솟구치면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을 쳤다.
무료해진 친구들은 너럭바위에 누워 뽑아온 삘기를 발라먹거나, 벗겨온 소나무 생기로 질긴 껌을 만들어 먹어 본다.
소년은 너럭바위에서 삘기를 먹거나, 껌 만드는 것이 실증나자 혼자서 호젓한 산길로 흑질백장이 나온다는 각시바위 초입까지 간 적이 있었다.
각시바위 쪽 입구는 나무꾼들도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칙칙하고 어두웠다. 이따금씩 청솔모나, 다람쥐들이 들락거릴뿐, 이제는 너럭바위에서 놀고 있는 소꿉놀이 친구들의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그늘진 곳에서 움덕지게 피어난 진달래는 마치 모닥불처럼 옹골차게 피어 있었다.
토실한 삘기는 여기저기 뒷산보다 많이 숨어 있었다. 각시바위를 자세히 보면 마치 새댁이 오줌을 싸는 형상으로 소년을 괜실히 부끄럽게 했다.
소년은 앞산의 칙칙함을 보고 이 정도라면 겨울 너구리가 돌발적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바위 주변은 식용 버섯과 고사리 군락지가 지천을 이루고 있어, 소년은 옹골찬 설램으로 깊어가는 산속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소년은 각시바위의 유혹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묘한 맛의 공기가 소년의 후각을 휘비자 목구멍을 크게 벌리고 재채기를 하려는 순간, 보아서는 안 될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자,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급하게 뒷걸음질을 하고 말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근육질 좋은 건강한 남자 등을 야무지게 깍지를 끼고서 두 눈 몽롱히 감은 채 신음하고 있는 말숙이 누나를 봐 버렸기 때문이다.
태수형이 월남으로 떠나기 3일 전 송별회는 마을회관에서 질펀하게 이뤄졌다.
“베트콩 멕아지 꼭 따서 돌아와야 허네.”
“알았어라우.”
영광댁은 돈벌이 때문에 월남으로 떠나는 아들을 보며 못내 못 미더워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많은 논은 아니지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위토가 있는데, 그렇게 위험한 곳까지 간다니…….
“엄니? 누가 돈 벌라고 월남 간다요, 사내 대장부가 국가를 위해 가는 것 이제, 엄니나 건강 허랑 게요.”
“태수 엄니! 태수는요 월남이 아니라, 전갈이 수두룩한 아프리카 사막에 놓아두어도 살아남을 위인인께 걱정일랑 붙들어 놓으랑게요.” 동네 아주머니의 한결 같은 한마디였다.
술판 주변을 조심스럽게 오가며 심부름하던 말숙이 누나가 이따금 태수형 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빨간 댕기를 입으로 가져다 대곤했다.
그렇게 태수형이 월남으로 떠난 10개월 뒤, 날벼락 같은 전사(戰死)소식이 싸늘하게 마을 모정 앞에 당도했을 때 영광댁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고, 말숙이 누나는 당숙 집 장독을 끌어안고서 몇 날을 몸부림하고 있었다.
보름 뒤 몸이 쭉정이처럼 말라버린 말숙이 누나는 당숙집 부엌일을 그만두고, 작은 봇짐 하나 머리에 이고 소릿재 정상 귀석(歸石)탑에 한숨과 눈물 묻은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고, 무거운 걸음으로 재를 넘고 말았다.
말숙이 누나가 반암 마을을 떠난 1년 뒤… 줄포 갯벌에서 아기를 업고 고막을 캐는 말숙이 누나를 보았다는 소식과, 난장이 패를 따라 떠나버린 남순이가 마술은 커녕 곡마단 부엌데기로 어린 몸이 심하게 망가져 버렸다는 서러운 이야기들이 벚꽃 떨어지는 봄날, 인천강 모래톱 빨래터 물살을 타고 있었다.
여름
반암마을은 점심때가 되면 참매미는 ‘쌔릉 쌔릉’ 왕매미는 ‘때까중 때까중’하며 울기 시작한다.
소년 가족이란 아들만 사형제라 점심때가 되면 어머니는 간이 솥에 불을 지피랴, 채전 밭 상치 솎아 반찬 만들랴 일손이 여간 바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사형제가 퍽 이나 옹골진 듯 닭을 잡기라도 하면 “당차게 커야 한다”며 고기를 잘게 찢어 골고루 국그릇에 넣어 주었다.
모정엔 벌써부터 점심 먹은 노인들이 단잠을 청하고 있었다. 당숙집 머슴 덕칠은 단잠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 친구들과 번번이 지는 고누에 여념이 없다.
일손이 딸려 휴식없이 소를 몰고 모정을 지나가는 일꾼을 보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이런 땡볕에는 해가 두어 마장 기울어야 소도 쟁기질을 하는 것이네, 그렇지 않으면 힘 팽겨서 쟁기질을 못 허는 것여 하고 참견을 해 본다.
손바닥만한 반암 마을은 근면과 인정만큼은 다른 마을 못지않게 훈훈했지만, 가난이란 궤적만큼은 누구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
소년은 가난이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부안면 외다리 고리대금 업자에게 몇 년 동안 얻어 쓴 나락 열 가마 이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 사십 가마로 넘어지자, 농약을 마시고 남편과 자식에게 한(恨)만을 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나버렸던 장성댁 자살 사건이 서늘하게 기억되었다.
여러 번을 쓸어 내려도 두눈 감지 못했다던 장성댁 꽃상여가 마을 앞을 떠나면서 소리꾼도 장성댁의 서러웠던 삶이 떠올랐던지 ‘명사십리 해당화야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지만은 한번 간 우리 님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청(瀨)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덧없는 풍경만을 허망하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난다는 외다리 고리대금업자가 구루마를 타고 마을 모정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반암마을 사람들은 땡볕과는 관계없이 텃논이나 산밭으로 모두들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이 가난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체감하고 있었다.
그런 탓으로 반암마을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면 중학교 진학보다는 자신의 밥벌이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애들이 하나둘씩, 가마니공장, 자전거 수리점, 봉제공장, 음식점으로 떠나갈 때, 모정에 둘러앉은 어른들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면 그들은 무거운 담배 연기만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서울로 떠나가는 어린아이가 소릿재를 막 넘어서면 그때서야 어른들은 붙어버린 쓴 입술을 떼곤했다.
“저놈은 당찬 데가 많아 어딜 가도 지 밥벌이만은 충분히 해 낼 것이구먼.”
언젠가 소년 형들이 사랑방에 숨어 만화책을 보다 아버지에게 들켰을 때 노여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날 새워 공부를 해도 시원찮은 판국에 만화책을 봐!”
회초리가 형들의 종아리를 피맺히게 휘감고 있을 때 어머니도 만화책만큼은 용서하지 않고 있었다.
“너희 형제들은 돌상에서 돈보다 연필을 모두 잡았었다. 만화책 좋아하면 가난허게 산다는 걸 명심해야지!”
맹 더위가 쏟아지는 폭염 속, 숨통을 조여 맨 말매미의 힘든 울음이 들녘을 채워 가자 소슬한 어둠이 잔잔하게 몰려왔다.
가족 전체가 말 잊은 초저녁 밥상, 무더운 여름밤을 알려라도 주듯 두견새는 대숲쪽에서 울혈을 토하고 있었다.
쑥과 겨가 섞인 모깃불 연기가 고소한 냄새를 흘리며 용꼬리 처럼 하늘로 곧게 치솟아 올랐다.
군청색으로 은은하게 번진 저녁 하늘… 맑은 별들의 촘촘함,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외양간 누렁이가 모기떼를 쫓는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한 점이 없구나. 어서들 밥 먹자.”
어머니의 투박한 목소리는 토장국처럼 입맛을 돋우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앵두나무 밑에서 따낸 새끼 방망이만한 오이를 식구 당 한 개씩 배당하자, 소년은 샘물에서 떠온 물에 허적허적 밥을 말았다.
“오메, 내 새끼가 더위로 입맛을 잃었는 갑네.”
밥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자식들을 보고 어머니는 더운 한숨을 토한다.
“밥 다 먹으면 오늘밤 밤불 보러 갈란다. 어쩔래.”
아버지 목소리가 어머니 말꼬리를 이어 형제를 유혹한다.
“정말?”
“그렇다!”
저녁식사를 마친 형제들은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서자, 옥수숫대는 저마다 새끼를 안고 기다란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흙 담을 따라 길게 피어난 도라지꽃은 달빛과 속삭이고 있었다. 외양간 섬돌 밑은 여름 찌르레미가 조용한 노래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우리 형제는 인천강가에 사는 사람답게 이미 만들어 놓은 솜 불과 투망, 그리고 고기를 넣는 어망과 초장 그릇을 옆구리에 차고 모래톱에 깔린 달빛 밟으며 씩씩하게 강가로 나갔다.
“밤공기가 차암 상쾌도 하다.”
힘줄이 새끼처럼 꼬인 건장한 아버지 종아리를 바라보면서 큰형이 어른스런 말을 했다.
우리 형제가 논길을 따라 인천강 모래톱에 도착했을 때 등 뒤를 따라오던 통통한 달이 어느새 맑은 물속에 담겨져 있었다.
솜 불을 높이든 작은형의 모습은 늠름한 장군이었다. 손뼉치며 잠에 취한 은어떼를 쫓는 형들의 폼들은 노련한 천렵꾼들이었다.
소년은 애호박처럼 늘어진 고기망과 초장그릇을 조심스럽게 들고 따라 다녔다. 아버지는 밤하늘에 박힌 달과 별을 향해 열 두자 어망을 화려하게 펼쳐냈다. 형들은 동시에 물속에 뛰어 들었다.
“은어 잡혔어?”
“그래 잡았다!”
큰형과 작은형은 은어를 손아귀에 넣고 희열 찬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자, 손아귀에 잡힌 은어들은 허연 입을 벌리면서 꼬리를 당차게 휘감고 있었다.
“히-야.”
아버지는 병 바위가 보이는 모래톱에 형제를 둥그렇게 앉혀놓고 유연한 혀 놀림으로 초장이 범벅된 은어를 통째로 씹고 있었다.
은어를 맛있게 씹어가는 아버지 모습을 바라본 큰형과 작은형도 은어 머리통은 비틀어 떼어내고 몸통을 초장에 찍은 다음 잘강잘강 씹어냈다. 시큼한 초장 맛과 고소한 은어 냄새가 소년 입맛을 돋우게 했다.
“나도 줘어….”
“먹을 수 있겠냐?”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소년에게 초장 바른 은어를 내밀었다, 소년은 씹히지 않는 물고기를 양어금니로 씹어가며 첫 야성을 배우고 있었다.
병 바위 모퉁이를 돌아 금밭정을 지날 무렵 더위는 어느새 소년의 등에서 떠났으며, 달은 서녘 하늘 구황산쪽으로 완연히 기울고 있었다.
사위어간 모깃불과 외양간 풍경 소리마저 조용해진 여름밤, 어머니는 입맛 떨어진 형제를 위해 잠든 눈꺼풀을 힘겹게 올리시며 콩국수를 만들기 위한 맷돌을 돌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가 밭에 나가면서 더위 먹은 소년에게 “점심 때 단 수수 꺾어 올 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야 해...”
“...녜.”
그러나 오뉴월 맹 더위는 소년을 집밖으로 내쫓고 있었다. 사카린 물을 몇 사발 들이켜도 갈증은 쉽사리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라면 인천강에서 멱이라도 감겠지만, 태양빛이 강렬한 한낮이라 당숙집 울타리 끝에 있는 왕 감나무 그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감나무 그늘에 멍석을 깔고 퇴침을 베개로 하고 반바지 밑을 살며시 벌려 바람을 맞이하자 감미로운 느낌이 전해온다.
언젠가 뒷동산 소나무 밑에서 종조할아버지가 소년에게 마을쪽 망을 보게 하고, 골마리를 거침없이 풀어 내린 채 솔바람을 쏘이던 때가 생각났다.
“할아버지 뭣 하는 것이에요?”
“거풍하는 중이다.”
“거풍이 뭣인데요?”
“니 새알이 굵어지면 그때 알게 된다.”
소년은 종조할아버지에게 들었던 ‘거풍’을 되 뇌이며 반바지를 슬며시 벌려 새알까지 시원하고 바람을 유도해 본다.
그리고 감나무 밑에서 바라본 감잎이 송아지 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아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적했던 주위가 갑자기 삼삼오오 떼 지은 참새 소리에 주변의 수선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처마 밑 새 구렁이 와 헛간에 흑질백장이 나타났을 때처럼 참새 떼들의 민감한 반응이었다.
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소년은 뱀에 대해서 소년은 긴밀한 사연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잡초가 우거진 당숙집 제각 석회담에서 참새 떼의 요사스런 광경으로 뱀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길이는 독사와 흡사했지만 죽은 자도 살릴 수 있고, 임자를 만나면 벼락부자가 된다는, 속내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백사(白蛇)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배-액 싸다!”
소년의 흥분된 목소리가 마을 길목을 벅차게 깔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와 마을 형들이 숨 가쁘게 몰려왔을 때, 백사는 이미 잡초 우거진 제각쪽으로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뒤였고, 참새 소리마저 멈춰있어 허망한 공기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백사에 대한 아쉬움이 깊어진 형들은 백사의 횡재를 여러 번 확인하고 싶어했다.
“정말 몸뚱이가 허연 뱀이였어?”
“그렇다니께.”
소년은 백사를 발견하게 되면 이젠 소리치지 않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직접 잡아 형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던 차였다.
소년은 참새떼가 울부짖는 당숙집 탱자나무 밑으로 반사적으로 뛰어 가 보았다.
탱자나무 밑에 당도한 소년이 까무라치게 놀란 것은 몸통은 작대기처럼 굵고 옆구리엔 또렷한 태극 문신이 있으며, 귀까지 달린 희귀한 뱀이 능글맞게 똘물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참새떼들은 난리를 만난 것처럼 허공에서 얽히고설키고 있었던 것이다.
귀 달린 구렁이는 참새 떼의 요란스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똘물에 몸뚱이를 능청스럽게 담근 채 죽은 듯이 움직임이 없었다.
소년은 순간 겁이 벌꺽났지만, 저 구렁이라도 잡아 마을 형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심정 간절했다. 소년이 작대기를 구해 왔을 때도 구렁이는 그대로 있었다.
소년은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작대기로 머리쪽을 조심스럽게 건드려 보자 뱀의 절륜한 힘이 손끝에 전달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당숙모가 소년과 구렁이의 팽팽한 대처 상황을 발견하자 질겁하듯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 당숙모의 정서가 아닌 반대 감정으로 소년에게 다가와 냅다 뺨을 때려버렸다.
“망측한 놈 같으니라구?”
소년은 당숙모의 초조하고 불안한 행동을 지켜보면서 한쪽 뺨을 얼떨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업…이다.”
종조할아버지 목소리가 뒤에서 급하게 들려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머슴 덕칠이와 마을 청년 몇이서 작대기로 업을 들어, 당숙 집 석류나무 그늘에 옮겨 놓았다.
“마을에선 이집 기운이 제일인디, 기운이 다 헌 모양일세, 업이 다 나와 버리고…”
“이 사람! 입 조심하게.”
싸리 담장 밑에서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입놀림이 터져 나왔다.
당숙집 석류나무 그늘에 옮겨진 귀 달린 구렁이가 똬리를 틀자 당숙모는 찬물을 떠다놓고 두 손을 비벼 빌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셔야 해라우….”
그 사이 종조할아버지는 양손을 내저으며 마당의 구경꾼을 밖으로 내쫓고 있었다.
소년은 점심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개구멍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얼떨한 당숙모의 기이한 행동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업은 녹두죽으로 달래야 허는디….”
그 말을 당숙모가 전해든 순간, 당숙모는 손 빠르게 녹두죽을 끓여 내왔다. 녹두죽 그릇을 덕칠이가 구렁이에게 작대기로 밀어 주고 있을 때 소년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었다.
“맛있게 드시고 어서 돌아가셔야 해라우!”
당숙모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구렁이는 머리를 징글맞게 움직여가며 녹두죽을 가는 혓바닥으로 여러차례 오가며 핥고 있었다. 당숙모의 공력(公力)이 통하는 듯했다.
녹두 그릇을 핥던 구렁이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버리자, 지켜보던 아주머니들은 당숙모가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말을 내뱉고 있었다.
구렁이가 먹다 남은 녹두죽을 큰며느리가 남김없이 먹어야 복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범스런 당숙모도 이 순간만큼은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숙모는 얼굴 표정하나 바뀜없이 환한 얼굴을 하며 구렁이가 핥았던 백 사발을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남은 녹두죽을 뜨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년은 허리를 시궁창에 꺾고 말았다.
소년은 날이 어두워져도 움직일 줄 모르던 업의 행방이 궁금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당숙모가 소년 집을 찾아와 밤이 되자 업이 맑은 이슬을 먹고 더위를 식힌 뒤 새벽에 제집을 찾아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신비감을 전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지자 마을 청년들의 행동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뒷동산 외진 모퉁이 시누대밭에서 거북이처럼 등 굽어 나오며 한결같이 입술을 훔치거나 마늘 한 쪽씩을 씹고 있었다.
소년은 마을 청년들이 시누대밭을 들락거리는 모습과 말숙이 누나가 떠나버린 당숙집이 세월이 지날수록 왠지 왜소해져 갈 것 같은 불안한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가을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들은 처량한 음색을 뿌리며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기럭아! 기럭아! 기역자 써라… 니은자 써라!”
반암마을 악동들의 집요한 노랫가락에 선운산쪽 가을 하늘은 빨갛게 취해 가고 있었다. 밤이 되자 카랑한 별들은 얼음 조각처럼 빛나고 있었다. 풀 여치와 귀뛰라미도 늦가을 정취가 아쉬운 듯 울음을 서서히 줄이고 있었다.
“엄니! 앞집 새댁은 왜 맨날 혼자 있어?”
소년은 새댁과 먼 친척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년은 깔끔하게 정돈된 툇마루에 앉아있는 새댁의 단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갈하고 예쁘다는 감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놈이 노름에 미쳐서 집에 붙어 있을 리가 있나?”
아버지의 허심한 한마디가 창호지를 짧게 울렸다. 소년은 서울에서 살다 고향으로 내려온 앞집 형님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소년은 언젠가 머리에 지독한 기계충을 앓은 적이 있었다. 그로인해 새벽이면 아버지의 생마늘 치료에 새벽이 두려웠다.
생마늘로 기계충 부위를 짓이겨갈 때 세상은 사정없이 찢겨 나갔고, 눈앞은 수없는 조각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소년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 아버지는 그때서야 “치료가 끝났다” 한다. 그러면 소년은 모진 통증을 잊기 위해 뒷동산 오솔길을 정신없이 뛰는 버릇이 생겨났다.
새댁이 서울에서 내려온 지도 세 해가 지났다. 앞집 형님은 늦은 밤 족제비처럼 남몰래 다녀가는 날이면 새댁은 눈이 붓도록 울고 있었다.
“아랫집 성님은 뭣 땜시 맨 날 새댁을 때리고 가버려?”
“선친이 물려 준 많은 전답, 노름에 다 날리고 이제는 여편네 반지까지 빼앗아 가니 누굴 닮아서 저러게 살고 있는 것일까, 쯔쯔…” 아버지는 밭은 가래를 끌어 올린다.
“질부, 눈물 밥에 체하면 약도 없다네.”
어머니는 집을 찾은 새댁 등을 어루만지면서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어떻겠냐며 달래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댁이 시집올 때 해온 금반지, 팔찌, 목걸이, 비녀 등은 이미 형님이 빼앗아 갔다는 말을 듣고, 소년은 고창 장에 간 어머니를 졸라 뿔 비녀를 새댁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새댁 머리에 꽂으니 이쁘다.”
“아짐한테 새댁이라니…”
“아무렴은 어때서요.”
“헤헤헤.”
소년은 아버지보다 새댁이 기계충 치료를 해 주는 것이 훨씬 덜 아픈 듯 했다.
“도련님 아프지요?”
새댁의 고운 목소리에서 아팠던 통증도 참아 낼수가 있었다.
“성님은 언제 또 오는가요?”
“………”
소년은 말없는 새댁을 올려다보며 형님이 아예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계충은 새댁의 정성어린 치료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다.
“시계꽃?”
“예뻐요. 도련님!”
새댁은 소년의 꽃시계를 받으면서 하얀 이를 드러났다.
“도련님에겐 꽃반지 드릴께요.”
소년은 새댁에게 받은 꽃반지를 바라보며 뒷동산 구릉에서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어느덧 마을 앞산이 홍 단풍으로 깊게 물들어 갈 무렵, 뒷동산 역시 상수리 나뭇잎이 구수하게 메말라가고 있었다. 앞집 형님이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는 소문이 마을을 휘 감고 있을 때였다.
“질부에게 돈 내노라며 매질을 또 한다네요.”
어머니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말에 맞춰 새댁 울음이 다른 때와는 다르게 담장을 크게 넘어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새댁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황급히 안으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세상천지, 젊은 삭신 다 상해버렸네….”
새댁 얼굴은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었다.
“맨소리담 이라도 바르세. 여자 팔자가 두레박 팔자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 하는구먼.”
한동안 흐느끼던 새댁이 갑자기 시든 꽃잎처럼 방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선 멈출 줄 모르는 양어깨의 들썩이고 있었다. 소년의 눈가에도 동그란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미안해요, 도련님.”
한참을 흐느끼던 새댁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쩔려구, 질부.”
“숙모님 죄송해요 번번히……”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난 새댁은 절름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잠자리는 집에서 해야지요.”
소년은 상해있는 새댁 얼굴이 밤새도록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녘 어머니는 벌써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으며, 아버지는 멍석 위에 콩 다발을 널고 있었다.
소년은 꺼칠한 두 눈 비벼가며 고적한 새댁 집을 훑어보았지만, 인기척은 느낄 수가 없었다.
“뭘? 보냐.”
콩 다발을 뒤집다 만 아버지 목소리였다.
“아니예요.”
소년은 평소 버릇처럼 내달리던 뒷동산 새벽길을 향해 달음질 을 해댔다. 상처가 심하던데 불은 지피고 잤을까? 소년은 달음박질하는 동안에도 새댁 얼굴이 밟혀만 갔다. 뒷동산을 한바퀴 돈 다음 새댁 집을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탈길을 막 오르려는 순간 그만 자지러지고 말았다.
소년은 풀어진 다리를 이끌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부지!’를 힘겹게 부르며 콩 다발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냐?”
소년의 정신이 돌아올 무렵, 아버지 목 낫에 의해 새댁의 목을 감았던 질긴 광목이 베어지고 말았다.
당일 오후,
짧은 생을 마감한 새댁의 주검을 실은 마을공동 상여는 상주도 없이 먼 친지와 마을사람들의 손에 의해 앞산으로 더디게 떠나고 말았다.
새댁이 꽃상여에 실려 앞산으로 떠나버린 뒤, 소년의 가을이란 슬픈 계절로 화인(火印)되어 남고 말았다.
그 해 가을이 저물어 갈 무렵 앞산 초당(草堂) 단골네 집에는 밤마다 오십 중반의 남정네 목청으로 ‘육자배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연유는 모르지만 몇 해 전부터 오십 중반 소리꾼이 단골네를 찾아 초선이 누나와 맞교대로 맺힌 소리를 풀고 있었다.
초당에서 소리가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호롱불을 끄지 못하고 문설주에 귀를 대고 있었다.
“지금 그 남자가 소리 허니께 북은 초선이가 잡고 있겠지라우?”
“그러겠지.”
“무슨 사연이 있어 소리가 저리도 애절할꼬?”
어머니는 바늘 끝을 머리에 문지르며 말을 내뱉자 침잠했던 호롱불이 너울거린다.
“한이 있어야 저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네.”
소년은 벌씸 타 들어가는 아버지의 담뱃불을 바라보며 무거운 솜이불을 턱밑으로 당긴다.
고리대금업자 부안면 외발이가 지나간 반암 마을은 추수가 끝난 직후부터 배는 허기져 있었다.
추수 걷이로 마을이 풍족해야 단골네도 마을 출입이 잦아질 텐데, 마을 전체가 끼니가 걱정이라 단골네 발걸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소년의 잔병은 단골네 됫밥 질 효험도 컸지만, 초선이 누나의 손길에서 더 많은 효험을 얻은 듯했다.
단골네가 젊은 시절 환갑집에서 우연히 만난 연하 소리꾼과 연을 맺고 초선의 누나를 낳았다는 사연을 반암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인천강 강가 수초처럼 풋풋한 버들잎 냄새가 났고, 귀엣머리 사이로 드러난 불그스레한 살결과 맑게 서린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방아깨비를 잡아온 초선이 누나가 맑은 눈을 보이며 “선물!” 하며 내밀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춘향이가 옥에 갇혀 이 도령을 그리워하며 가슴으로 불렀다던 ‘쑥대머리’를 초선이와 남자 소리꾼이 새벽 별이 사그라질 때까지 애절하게 소리를 토한 후 다음날부터 초당은 절속 같은 정적만을 남기고 있었다.
앞산에 나무를 다녀오던 덕칠이가 단골네 소식을 어머니께 급하게 전해 주었다.
“단골 네가 몹시 아픈 것 같구만요.”
덕칠에게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쌀 몇 되 머리에 이고 급하게 초당 길을 향하자 소년도 따라 나섰다.
낙엽이 져버린 앙상해진 가지, 단풍잎을 떨구는 소슬한 바람, 알밤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다람쥐 한쌍이 눈에 띠기도 했다.
빨간 까치밥으로 울타리가 쳐진 단골네가 사는 초당은 스님 떠난 암자처럼 왜소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단골댁!”
어머니가 단골네를 부르며 문을 열었을 때 단군 할아버지와 삼신할머니 큰 초상이 무섭게 보였다. 단골네는 쾡 한 눈을 가늘게 뜨면서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당가.” 한다.
“무슨 말씀이요. 당연히 와 봐야제.”
어머니는 빈 쌀독을 열어보며 청렴스런 단골네에게 미더운 한마디를 뱉는다.
“죽게 생겼는데 체면이 무슨 소용이랑 가요.”
어머니가 식어버린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단골네는 하얀 머리띠를 묶은 채 지팡이에 온 몸을 기대고 아궁이 곁으로 다가왔다.
“끼니를 얼마나 굶었으면…”
단골네는 어머니 어깨에 머리를 떨구면서 맺힌 한마디를 쏟아낸다.
“쓸쓸해서 더 이상은 못살 것 같어라우.”
“어쩔려고 그런 약헌 말을 허시요.”
미음을 뜨는 동안 문풍지는 시린 늦가을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초선이가 어찌 안 보이는 것 같어라우.”
어머니가 초선이 누나 안부를 묻자 지금까지 버텨왔던 단골네가 순식간에 비에 젖은 흙담 무너지듯 미음 그릇을 밀치면서 참았던 어깨를 흔들고 말았다.
“뭔 일이 당가요! 단골댁?”
“이내 신세가 가여워라우.”
초선이가 며칠 전에 머물었던 오십대 소리꾼과 함께 초당을 떠났음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소리하던 그 사람이 초선이 애비였다오.” 예상대로 였다.
“………”
“그 사람이 초당 싸리문을 나서면서 모든 것 버리고 조용한 곳에서 말년을 보내자고 했는데, 젊은 삭신 다 보낸 년이 무슨 낯으로 젊은 신랑 따라 나선다고 허겠소, 그냥 편하게 떠나라고 손짓 이별을 하고 돌아섰는데 그때부터 참기 힘든 외로움이 솟구치데요.”
“그러지라우 혼자 몸이란게….”
“그 사람이 떠나면서 그랬어라우.”
“………”
“아직도 감꽃처럼 예쁘다고…….”
“단골네를 퍽이나 아꼈던 모양이지라우.”
기력이 쇠락한 단골네는 어머니의 맞물음에 지나온 회한들을 간간이 쏟아내고 있었다. 어느덧 초당 하늘에 별들이 차갑게 솟아나자 멀리 부엉이가 가을밤이 춥다며 간헐적으로 음색을 토해내고 있었다.
소년은 어머니와 굽어진 앞산을 내려오는 동안 엊그제 남자 소리꾼이 애절하게 쏟아냈던 ‘쑥대머리’를 단골네가 기력을 다해 소리하고 있었다.
겨울
“형님 계쉬?”
뒷집 울산네 삼촌이었다.
“어서 오게나.”
울산네 삼촌은 허리를 크게 굽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과잉적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바깥 날씨가 죽게 춥네요. 형수님! 술잔만 하나 챙겨 주쇼.”
그러면서 울산네 삼촌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특별히 공화당에서 배급 나왔다는 고무신 한 꺼레씩을 내밀며 옆구리에 끼고 온 막걸리 주전자까지도 내려놓는다.
“웬 고무신이랑가.”
“박정희 후보님이 성님 내외분에게 보낸 특별 선물이지라우.”
요즘 반암 마을은 울산네 삼촌이 이 근동 선거 총책을 맡은 뒤부터 심심치 않게 막걸리 추렴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마을 이장과 호흡이 적당히 맞은 울산네 삼촌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김대중, 무소속 진복기 후보의 장·단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경제발전엔 누가 뭐라 해도 박정희 후보가 제일이다며 당연히 당선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성님? 이번에도 우리 당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해야 쓰겄습니다.”
“자네는 이제 골수 공화당원이 되어버렸네.”
“헷헷헷….”
울산네 삼촌은 막걸리 잔을 비우더니 속주머니에서 노란 봉투를 살며시 꺼내 어머니께 밀었다.
“뭣이 당가요.”
“우리 박정희 후보님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돼지고기라도 사 드시라고 드리는 보냈습니다.”
울산네 삼촌은 며칠 남지 않은 선거일을 맞아 매일같이 술에 취한 채 근동 마을을 샅샅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열심히 선거 운동하고 있는 참일꾼이 버티고 있는 한 박정희 후보는 당연히 당선일세? 그리고 이제는 선거 끝나면 자네에게도 한몫 단단히 쥐어 주어야 하고.”
“별 말씀을요, 그저 박정희 후보가 똑똑해서 하는 짓인데요, 뭐.”
소년은 공화당 박정희 후보만 빼놓고 다른 후보 벽보는 만신창으로 찢어져 있거나, 아니면 빨간 페인트로 X자가 그어져 있던 마을회관 담벼락 포스터가 생각났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 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 고창을 들러 대중 연설이 있다던 날 이장과 울산네 삼촌은 막바지 선거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다.
이장은 스피커를 통해 교통비와 점심 신발까지 제공한다고 안내방송을 연이었고, 울산 네 삼촌은 군청 앞에서 반암마을 사람에게 막걸리와 돼지고기를 걸판지게 대접하겠다며 마을 유권자들을 집요하게 이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일이 끝나 특별히 할 일이 없자 이장과 울산네 삼촌의 체면에 못 이겨 당에서 나누어 준 플래카드와 어깨띠를 매고 공화당 후보 이름을 부르며 트럭에 올라탔다.
군청 앞에 모인 사람들은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키가 유난히 작아 보이는 공화당 후보는 유권자들을 바라보며 자신 있는 미소와 손을 흔들자 군중들은 일제히 박정희 후보 이름을 부르며 플래카드를 흥분되게 흔들어댔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지정된 천막으로 들어가자, 여자들은 국수를 말고, 남자들은 푸짐한 돼지고기 안주에 옴팡지게 술판이 벌어지고 있다.
고무신, 노란 봉투, 수건을 받아든 마을 사람들은 흥겹게 노래 부르며 서서히 취해가고 있다.
“어이? 울산네! 한잔 받소.”
“성님들 날씨가 단단히 추운데도 나와 주셔서 정말 고마워라우.”
“자네가 허는 일인데 당연히 나와 봐 야제. 내 술도 한잔 받소 그려.”
“그러믄요.”
울산네 삼촌은 마을 사람들이 한잔씩 건네주는 술에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만취되어 있었다.
“너무 취했네, 술은 이제 그만하고 함께 마을로 같이 들어가세.?
소년 아버지가 울산네 삼촌의 게슴츠레한 눈을 보고 걱정된 말을 하자 울산네 삼촌은 허리를 조아리며 괜찮다고 했다.
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서울로 곧바로 떠난 뒤 허성해진 유세판에 갑작스럽게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다.
소년 아버지는 마을 사람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 왔지만, 아직 질펀한 안주와 막걸리 유혹 때문에 술판에 붙어 있는 사람도 많았다.
“웬 술들을 그렇게 마시능가?”
“대통령 후보 술 인께 그러지라우.”
얼마나 지났을까?
겨울밤이 깊어진 시각 나머지 술 팀들도 왁자한 소리를 내며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마을은 얼음보다 차가운 소식으로 마을은 온통 슬픔에 휩싸이고 말았다.
다름아닌 어젯밤 울산네 삼촌의 객사 소식 때문이었다. 울산네 삼촌에게 술잔 한번이라도 권한 사람들은 그 순간 심한 원죄에 빠져들고 있었다.
만취된 울산네 삼촌이 마을 사람과 떨어져 혼자 돌아오는 길에 빠른 길을 택해 온다는 것이 영모정 쪽 인천강 외다리를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얼음 속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사투 끝에 물 속을 나오긴 했지만 탈진된 그는 등 굽은 지루재를 넘지 못하고 추위에 동사한 사건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공교롭게 울산네 삼촌 꽃상여가 겨울 삭풍을 가르며 동구 밖을 떠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투표소에 가지 않았고, 울산네 삼촌의 꽃상여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소년은 눈이 내리자 당숙집 사랑방 화롯불에서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학자 손님! 방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썰매나 팽이치기랑 허시제.”
소년은 당숙집 머슴 덕칠이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샌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덕칠이가 깎아 준 팽이를 들고 텃논으로 나가 본다.
친구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썰매타기에 신바람이 나 있었다.
“요런 날T엔 팽이보다 썰매를 타야 제 맛이다.”
친구들 말대로 오늘 같은 날엔 팽이보다 썰매 타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팽이치기를 포기하고 다시 당숙집 사랑방을 찾았다.
“와따매! 학자 손님 어찌 도로 오셨능감?” 덕칠이가 새끼를 꼬다가 소년을 새삼 반겼다.
마을 청년들은 옆에서 토끼와 꿩을 잡기 위해 붉은 까치밥에 청산가리를 넣고 촛농으로 밀봉하느라 손놀림이 바빠 있었다.
“토끼몰이 갈라고 그런당가?”
“워찌? 학자 손님도 같이 가시게.”
소년의 가정은 비록 가난했지만 교육열만은 오래전부터 대단하여, 덕칠이는 소년 형제에게 만큼은 학자 손님이라는 존칭을 빼놓지 않고 붙여 주었다.
“오늘은 눈발이 성성히 날리니까, 토끼몰이는 눈발이 멎는 내일이면 좋겠구만.”
옆집 막동이 형이 입안에 알 맞는 물고구마 하나를 집어넣은 뒤 동치미국물을 마시면서 토끼몰이를 상기시켰다.
“아차! 여보게… 지난 고창 장에 호피허고 호랭이 뼈 나온거 알고들 있었능가?”
“뭣여? 호랑이 가죽이 나와?”
“쌍둥이 아버지가 지난 고창 장에서 두 눈으로 분명 보았다네.”
“그 귀중한 호피를 누가 가지고 나왔는데?”
“심원놈들이 안장바위 입구에다 불을 지펴 호랭이 암놈을 잡아 왔디야.”
“와따메? 그걸 누가 사갔는감?”
“장이 파할 무렵 부안면 외발이 고리대금업자가 쌀을 무려 열 가마를 주고 은밀히 사갔다네, 숫놈을 잡아오면 그것까지 사겠다면서 말여?”
“심원놈들 토끼 잡으러 갔다 큰 횡재를 했더구만.”
“그런데 천하에 놀부보다 구두쇠인 외발이 고리대금업자가 뭣 땜시 그 많은 쌀을 주고 호랭일 사갔디야?”
“그 고리대금업자도 슬픈 사연이 있었더구만, 글쎄 여동생이 문둥이가 한명 있다네. 문둥병엔 호랑이 고기하고 뼈가 특효약 이라누만.”
“내참 문둥병엔 사람 간이 효험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호랭이 뼈가 특효라는 말은 머리털 나서 처음 듣네 허허.”
소년은 선운산 능선에 장엄하게 서 있는 안장바위에서 사는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언젠가 눈 내리던 밤, 마을 형들이 사랑방에서 토끼 탕을 끓여놓고 윷놀이로 왁자한 때였다.
소년은 마을회관 근처에서 친구들과 뛰놀다 갑자기 밤똥이 마려워 회관 울타리에서 뒤를 보고 있는 참이었다.
아랫배에 힘주며 하얀 설원에 펼쳐진 오밀한 마을 집들을 바라보면서 춥고 가난한 마을이지만, 마을이 평온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리던 엉덩이가 따스한 감촉이 느껴져 왔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 돌아본 순간 심장이 멈춰 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말로만 듣던 안장바위 호랑이가 두 눈에 투명한 불을 쓰고 소년 궁둥이에 콧털을 살며시 대고 있지 않은가.
몸은 순식간에 경직되어 갔으며 식은땀과 함께 숨 막히는 시간이 더디게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숨조차 쉴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마침 건장한 마을 청년이 회관의 드럭문을 힘차게 밀치면서 끌어 오르는 가래침을 내뱉으며 밖으로 나오자, 호랑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눈 깜짝 할 사이의 일이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소년은 어렵사리 바지를 올리고, 해명태명한 발걸음으로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안장바위 호랑이는 어느새 앞산 초당 근처에서 훤한 불을 밝히고 구암쪽으로 유유히 넘어 가고 있었다.
“산신령이로구나.”
그 호랑이를 심원 청년들이 잡았다니 소년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혼자 된 호랑이가 언젠가는 심원 청년들에게 큰 벌을 내릴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반암마을 토끼몰이는 대단했다.
날씨는 다른 때보다 더 추웠지만 눈발이 멈춰 토끼몰이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상황 봐서 안장바위에 사는 호랭이 덫까지 놓을지 모르니까, 초등학생 이하는 빠지는게 좋겠다.”
“뭐셔! 토끼몰이가 아니라 호랭일 잡는다고?”
덕칠이가 놀라며 되물었다.
“심원놈들이 호랭일 잡아 이 엄동설한에 쌀 열 가마를 벌었다는 디, 우리라고 못 잡으란 법 있능감?”
동천댁 아들 막동이 형이 깡다구 있게 말을 씹었다. 마을 형들이 토끼몰이 겸 호랑이 사냥을 위해 선운산이 있는 안장바위 쪽으로 떠나자 우리들은 갑자기 심심해져 버렸다. 그래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까운 앞산으로 토끼몰이를 떠났다.
토끼몰이는 발자국이 가깝게 먹어야 가능하지 십리 이상을 뛰어 있으면 일찌감치 포기를 해야 한다. 소년은 토끼 발자국을 좇는 도중 단골애미가 살았던 초당에 다다르게 됐다.
찢겨버린 창호지와 아무렇게나 열려 있는 문짝을 넘어드는 겨울바람에서 단골네와 초선의 시린 목소리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들의 토끼몰이는 마을 형들이 빠진 탓으로 토끼는 잡지 못하고 토끼 똥 발견만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강추위에 토끼몰이를 다녀?”
소년 어머니는 이렇게 추운 날엔 토끼몰이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며 강추위를 상기시켰다.
마을 형들은 토끼몰이를 다녀오면 언제나 서너 마리의 토끼를 잡아들고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오늘따라 늦도록 마을 형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호랑이 덫까지 운운하며 떠났던 형들의 기세를 본 소년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그들의 소식이 더욱 궁금해져 갔다.
소년은 토끼몰이 떠난 형들의 소식을 끝내 듣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이 되자마자 얼마 전 울산네 삼촌의 객사 소식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게 마을은 뒤집혀 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마을 형들이 동천댁 아들 막동이 형을 빼놓고 안장바위에서 돌아와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쥑일 놈들! 퇴끼몰이를 같이 갔으면 같이 돌아와 야제. 그 어린것만 떼 놓고 느그들만 돌아오고 싶었더냐. 쥑일놈 들아! 우리 막동이! 우리 막동이 살려내!! 이놈들아….”
동천댁의 피맺힌 절규가 겨울 허공을 찢고 있었다. 막동이형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안장바위 밑 능선이었다. 안장바위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막동형이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마을 형들은 막동이 형을 목놓아 부르다, 어둠에 갇혀 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어둠과 추위에 싸울 수 없어 양턱을 떨며 걱정을 가득안은 채 눈물로 하산해 버린 것이다.
아침나절 막동이형 수색은 안장바위 동굴 입구에서 손쉽게 끝나고 말았다. 막동이형 주검은 양 팔뚝이 끔찍스럽게 뜯겨져나간 채 숫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안장바위 입구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슬픈 겨울도 더디게 가고…
덕칠이는 섣달그믐 당숙집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일로 삼년의 서러운 머슴살이를 마감했다.
지게 바지랑에 조기 새끼 몇 마리, 정월 초하룻날에 끓일 떡살 한 줌과 지푸라기에 묶인 돼지고기를 들고 소년 집으로 인사 왔을 때 그의 음성은 섣달 그믐밤 만큼이나 어눌하게 짓눌려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라우….”
“무슨 말인가? 자네가 고생 많았제.”
“설 쇠면 서울로 올라가 품팔이로 해야 겠구먼 이라우.”
“그믐밤 불 없이 십 리길이 넘는 자네집을 어떻게 갈려구, 호롱은 들어야제.”
어머니가 호롱불과 암탉 한 마리, 계란 몇 줄을 건너 주자, 덕칠이는 뜨겁게 솟구치는 눈물을 소매자락으로 훔치며, 너울거리는 호롱불을 앞세우고 섣달 그믐밤의 어둠을 더디게 뚫고 있었다.
입춘이 지나자 소년은 형을 따라 도회지 학교에 입학을 서둘렀다. 소년도 소릿재를 넘던 날,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작은 돌멩이 하나 집어 들고 귀석탑에 정성껏 올려놓으며 금의환향을 꿈꾸며 고향을 떠나온 지가 어느덧 삼십 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고향의 젖줄 인천강과 각시바위의 요염함은 지금도 변함없는데, 고향을 서럽게 떠났던 사람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소년은 불혹의 나이가 넘어지자 잊혀져 갔던 고향 사람들의 소중스런 지난 세월들을 채색하고 싶어 붓을 들었는지 모른다.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는 수채화’ 작품을 개작하고 개명한 작품임을 밝힙니다.(2004. 10)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을 읽고 (향수에 젖은 소년의 눈빛을 따라...)
늦가을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햇살에 몸 기대며 볕 잘 드는 창가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채워져 있는 책 한 권을 펼쳐보았다.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
150여 쪽의 분량이 말해주듯이 단숨에 읽기에는 무게가 있는 이야기,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읽기로 다짐했다.
푹 퍼진 햇살만큼이나 따스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첫 장의 이야기는 향수병에 시달렸던 소년이 가난한 눈물을 이해하기 위해 건너는 징검다리와 같았다.
이 책은 우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소제목을 달면서 시작하는 테마로 수채화를 보는 듯 하고 구수한 냄새가 '고향'이라는 포근함을 푸짐하게 느끼게 한다.
"향수병(鄕愁病)에 시달렸던 소년은 가난 때문에 비 오지 않아도 눈물이 젖고, 바람 불지 않아도 취한 듯 흔들거렸던 고향 사람들의 힘겨웠던 궤적들을 그리고 있었다" 첫 구절의 내용이다.
장성한 눈으로 그려지는 고향사람들의 몸부림과 눈물이 그려지고 있다. 소년의 젖은 눈빛을 따라 노을빛이 수놓은 선운산 자락, 소년의 기억에서 그려지고 있는 고향 그림들이 필자를 빠져 들게하고 '그래 맞아!"라는 공통의식과 '정말?'그랬을 까라는 호기심까지 유발시킨다.
첫 번째 테마, 봄이 주는 따스함이 남순이에게로 전이(轉移)된다.
예쁜 분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때 묻지 않은 산골 소녀의 소박함이 남순이 에게서 묻어나고 소년의 소꿉놀이 상대가 되어주고 가려운 마음을 긁어주는 순박한 소년 소녀의 자화상이 되어 주었던 남순이가 곡마단을 따라 떠나는 날 동구 밖까지 달려가는 소년의 모습은 춘곤증을 핑계로 스르르 눈을 감게 만든다.
월남 땅에서 전사한 태수형과 이로 인해 쭉정이처럼 말라버린 말숙이가 마을을 떠나갈 때 귀석(歸石)탑에 쌓여있는 작은 돌멩이를 들고 말숙이도 막막한 미래가 불투명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벚꽃 흩날리는 봄날 남순이의 소박한 웃음이 슬픈 이야기로 흘러 내려오는 인천강 모래톱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의 입에서 안타깝게 전해지는 다양한 이야기에 우울증에 빠져버린 소년의 슬픈 얼굴을 그려보았다.
두 번째 테마, 여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금이라도 문을 열면 참매미 왕매미가 연주를 하는 여름 한 낮의 소년의 마을에 다다를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미소리가 '쌔릉 쌔릉' '때까중 때까중' 우렁차다.
반암 마을 사람들의 성실함은 어느 마을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모질게도 떠나지 않는 가난의 흔적들이 고리대금업자로 인해 자살한 장성 댁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이 가난이라고 몸부림치는 아이들은 학교보다는 자신의 밥벌이를 향하여 고향을 떠나 어느 공장에서 어느 식당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까. 가난 때문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고향은 인천강 모래톱을 향하게 하고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은어 잡이를 나선다.
초장에 빠른 은어를 잘강잘강 씹어먹는 모습을 통해 가족들의 화목이 잘 그려져있다
거풍하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으며 따라하는 더위에 지친 소년의 행동을 훔쳐본다.
어느 동네마다 있음직한 뱀의 이야기는 이 곳 마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똬리 튼 귀가 달린 뱀에게 공을 드리는 당숙모의 모습과 뱀이 핥고 남긴 녹두죽을 '복'이라 보너스에 넙죽 비우는 행동에서 '기복신앙'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동네 청년들에 의해서 보신이 된 뱀과 남순이마저 떠나버린 당숙네의 기울어질 것 같은 살림은 '업'이라는 뱀의 신비를 믿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세 번째 테마, 가을로 껑충 뛰어 간다.
만산홍엽으로 물들어진 선운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새댁을 향한 소년의 마음속 온기를 느끼면서 지아비의 횡포로 짧은 인생을 마감한 새댁의 가느다란 목에 각인되어 있을 절단 난 삶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소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같은 고통을 나도 느끼는 것일까.
'육자배기' 걸쭉하게 쏟아내는 사내의 목청을 따라 초선이의 애절한 하소연 같은 '쑥대머리'도 혈육의 정을 따라 선운사의 가을은 흐르고 당골네의 감꽃처럼 아름다웠다는 젊은 한 시절도 따라 흘러간다.
새댁의 꽃상여 서글픈 사연 따라 깊게 멍울진 소년의 가슴을 왜 쓸어주고 싶은 것일까.
네 번째 테마, 겨울은 기다리지 않아도 먼저 와 있다.
울산네 삼촌의 비명횡사(非命橫死)를 아파하는 동네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이 노란 봉투의 유혹도 고무신의 따스함도 몇 근의 고기의 달콤함도 모두 덮어주는 살아있는 인간애를 보는 것은 아닌지......
하얀 설원 위에 새겨진 토끼의 발자국을 보며 안장바위 호랑이가 비웃는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은 소년의 마을 속에서 살아있는 이야기였고 찢겨진 막둥이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가족들과 이웃들의 모습이 겨울의 긴 터널 속에서 아픔과 추억으로 교차된다.
삼 년의 머슴살이를 끝낸 덕칠이를 따스한 마음으로 품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해 덕칠이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대롱거리며 봄날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겨울이 주는 어둡고 차가운 삶은 뒤 이어 따라올 봄처럼 포근한 삶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자로 하여금 무슨 그림을 볼 수 있게 하였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작가가 그리는
소년의 고향을 더듬어 볼 수 있어 책을 읽는 순간 행복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통해서 이 소설의 평가를 소설 속 예문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해볼까한다.
첫째로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을 것' 이라고 했다.
'학자 손님'이라는 말이 교육열이 높은 집안의 소년 형제들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이름으로 "하나밖에 없는 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둘째로 '어감 있게 써야할 것이다' 라고 했다.
"웬 고무신이랑가."
"..............선물이지라우."
"성님,.........해야 쓰겄습니다."
"뭣이 당가요?" 에서 느끼는 것이 그런 '어감 있게' 라는 말이 아닐까 감히 꼽아본다.
셋째로 '성격적이게' 라고 이태준은 주장한다.
"엄-니"
"아들! 이제야 일어났는가"
"남순이가 우리 아들과 심심히 않은 친구였는데...이제 어쩌면 좋을꼬"
이 책에서 소년은 '엄니'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한다. 호칭에서 느낄 수 있듯이 소년은 어리고 나약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자애로운 성격을 보이는 '아들'이라는 단어가 이름을 불러줄 때보다 더 정겹게 느껴진다.
넷째로 '의음어 의태어' 사용을 꼽을 수 있겠다.
은어 몸통을 초장을 찍은 다음 '잘강잘강' 씹어본다
참매미는 '쌔릉 쌔릉' 왕매미는 '때까중 때까중' 하며 울기 시작한다
"헷헷헷" 울산네 삼촌은 막걸리 잔을 비우면서.....
어떤가? 은어를 씹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지고 매미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웃는 모습이 떠올려지지는 않는지.
짧은 지식으로 네 가지로 구분을 해봤지만 여러 번 읽을 수록 소년의 손을 잡고 그 마을의 일원이 되는 착각이 든다
외다리 고금업자가 지나가면 땡볕에도 마을사람들이 논과 밭으로 흩어질 정도로 가난으로 인해 자살한 마을 아낙의 사연을 통해서도 가난으로 힘들어했을 고향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고 사계절을 통해 채색되어지는 이야기는 그만큼 그리움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순간 시어(詩語)들이 봉기를 들기 시작했다
"너 시인 아니니?"
짧은 지식을 통해서 열거하는 것보다는 詩로 대신하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의 사계(四季)
봄,
꽃비 내리는 소릿재엔
곡마단 풍악이 깃발에 나부끼고
부엌데기 순박한 행복
유량의 행렬 속 눈물로 번져간다
월남 땅에 묻힌 청춘의 한(限)
시골처녀 애간장 녹이며
모래톱 빨래터 물살을 탄다
여름,
폭염에 지친 반암 마을
도라지 꽃 달빛에 속삭이는 어둠이 오면
인천강 모래톱엔 둥글달이 멱을 감는다
담장밑에 졸던 구렁이
소년의 호기심으로 화들짝
복(福)달라며 공(功)들이는
녹두죽 한 사발에 유유자적
공(功)들인 미래가 불안하다,
시누대밭 들락거리는 청년들의 모습
왠지
가을,
걸쭉한 노랫가락
선운산 붉게 태우고
지아비 횡포
새댁의 가슴은 파랗게 물들어갈 때
기러기 먼 산을 넘어간다
초당에 번지는
쑥대머리, 육자배기
당골네 가슴을 위무(慰撫)하는
젊은 날의 초상
"아직도 감꽃처럼 예쁘다고....
겨울,
울산네 삼촌
인천강 외다리 건너
얼음 강에 삶을 던지고
호랑이 사냥 나갔던 막동이
피맺힌 절규로 겨울을 흔들고
덕칠이의 머슴살이 삼년
보따리 속 푸짐함으로 채워진다
더디 가는 슬픈 겨울
입춘 초입에서 긴 하품을 한다
고향이 주는 따스함은 과학적인 온도계로는 절대 잴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그 무엇이다.
소년을 통해 들여다본 고창의 자그마한 고장이 주는 인간애의 따스함이 인천강 모래톱을 훑으며 내 마음속으로까지 들어왔다.
금의환향을 꿈꾸며 떠나온 소년의 모습은 어찌 변했을까.
불혹의 한 사내를 그려보면서 반듯한 맵시에 승용차로 고향 동네 어귀를 막 돌아가는 듯한 장성한 소년을 떠올린다.
부모님의 골 깊은 주름살만큼이나 깊은 성공의 우물을 품은 소년은 언제까지나 향수에 젖은 눈물을 머금고 있다.
곧 추위가 엄습해올텐데...
울산네 삼촌이 빠졌던 외다리가 문명의 옷을 갈아입었을 인천강에 얼음이 눕고 시리게 추운 겨울 하늘을 보면서 봄을 기다리듯 소년이 품은 성공의 우물을 기다리지는 것처럼 강줄기의 흐림이 느껴지는 물소리를 듣는다.
지금도, 인천강 모래톱은 아낙네들의 재잘대는 수다를 그리워할 것이다.
백화점 쇼윈도우 안에서 호피무늬 코트를 입은 마네킹의 차가운 미소가 번지고 그 위로 초장을 뒤집어쓴 은어를 잘강잘강 씹던 소년의 모습이 지나간다.
햇살에 기대어 졸고 있는 젊음도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고향은 언제나 성장하지 않는 모습으로 간직되어 있을 테니깐.
가을의 끄트머리에서 몸부림을 친다.
서산을 넘어가는 태양의 빠른 몸부림이 겨울 이야기 속으로 밀어내고 있다.
인천강에 얼음이 누우면 구멍뚫인 얼음 밑으로 은어들을 유혹할 것이다.
초장에 발라진 은어의 주검이 아니라 눈인사 건네며 소년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채색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할 것이다.
소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금의환향을 꿈꾸며 고향 땅을 밟는 나를 포장하고 싶다.
겨울이 쏟아지는 꽃밭에서 민들레의 노란 손짓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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