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간판과 편액에 먹물이 흥건합니다.
전주 톨게이트에는 한옥으로 만들어져 있는데다가 '전주'라는 한글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이 작품이 바로 효봉 여태명씨의 글씨로, 이를 민체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 현판의 글씨체가 다릅니다. 외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입구 글씨는 자음보다 모음이 큽니다. 자음은 자식(=子)이고 모음은 어머니(=母)입니다. 전주에 들어오는 모든 이가 부모처럼 넉넉한 민족의 고향에 안기라는 뜻입니다. 첫 글자인 '전'의 'ㅓ'와 'ㄴ' 사이 여백은 전주의 지형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전주에서 외지로 나가는 출구에선 반대로 모음보다 자음이 큽니다. 이는 자식의 성장입니다. 전주의 기와 멋을 받아 청출어람하라는 뜻입니다.
전주의 최고 상징물중 하나는 북서쪽 호남고속도로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세워진 ‘호남제일문’은 애초 ‘북(北)이 허해 부(富)가 드물다’하여 지세상 허술한 북쪽을 누르기 위해 세워졌다는 풍수지리적 의미도 갖고 있는데요, 당대 최고 서예가였던 강암 송성용선생의 작품으로 낯선 사람들에게는 전주의 고풍을 그대로 전해주는 문패이자 고향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전북은 일찍이 창암 이삼만부터 두각을 보여 온 이 땅의 서단은 차분히 실력을 쌓고 세력을 갖추면서 석정 이정직, 벽하 조주승·유재 송기면·설송 최규상, 석전 황욱·강암 송성용·남정 최정균·여산 권갑석 등 서예가를 배출해 왔습니다.
그래서 전주가 예스럽고 소박한 멋과 기품 있는 철학을 가진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편액과 간판으로 즐비합니다.
완주군에서 진안군으로 넘는 길에 ‘홍삼 한방의 고장 진안’이라는 상징어를 여태명씨의 글씨로 큼지막하게 써 놓았으며, 전주한옥마을을 걷기만 해도 글씨의 호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최명희문학관의 ‘독락재’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의 ‘세화관·단영실·다경루’, 전주전통술박물관의 ‘수을관·계영원·양화당’, 전주전통문화관의 ‘경업당·화명원’, 전주동헌의 ‘풍락헌’ 등을 비롯해 문화 시설과 유적, 음식점과 숙박업소, 공방 등 어느 건물에 걸린 이름자만 살피며 걸어도 아주 특별한 서예전시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남창당한약방, 전동성당, 한방문화센터, 최명희문학관, 오목대 사랑채, 미선공예, 미당 등은 한글 간판과 편액들로 즐비합니다.
한옥마을을 노니는 글씨들은 산민 이용, 효봉 여태명, 중하 김두경씨를 비롯, 이당 송현숙, 하산 서홍식, 백담 백종희씨 등 서예가들의 필획들을 손쉽게 구경할 수 있게 만듭니다.
가람 이병기가 시를 쓰던 곳으로 유명한 양사재의 현판과 주련은 여산 권갑석씨의 글씨요, 오목대에 오르면 석전 황욱의 글씨가, 학인당의 문을 열면 성당 김돈희와 효산 이광렬의 글씨가 반깁니다.
전북도청과 전북도립미술관의 문패 글씨는 완판본을 집자해 만든 것으로 더욱 더 글자와 문자예술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정교하게 계산된 것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수공의 힘이 살아 있는 아주 귀한 글씨들. 그래서 전북의 편액과 간판들은 의미뿐 아니라 서예의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움을 잘 조화시킨 예술성도 돋보입니다.
글씨의 호사는 우선 눈이 반갑고, 소리 내 부르면 입과 귀가 즐겁습니다.
좋은 간판을 따기 위해 이력서 한장을 듣고 동분서주 하고 있는 이 땅의 조카님들 수고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작거나 혹은 알맞게 큰 부지에 가건물을 지어놓고 각각의 간판을 달고 일하는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열심인 모습에 마음이 찡해 오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뜻대로 편액과 간판이 되지 않으면 잠시 잠깐 고개를 들고 코발트색 하늘 한번 바라보세요.
온고을 ‘전주’의 간판과 편액, 먹물과 만나는 오늘, 이 조그만 조각배 서신에 살듯한 정을 담아 여러분들께 두 손 모아 공손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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