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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전주한옥마을 우편함, 나 예뻐!

 

 

 

 

 

 

 

 

 

 

 

 

 그대여! 오늘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 당신 닮은 옥색 한지를 샀습니다. 내 맘 가득 담은 종이 위에 물길 트이고 소슬한 바람도 살랑살랑, ‘고향의 골목’ 고샅이 사라진 지금 삶이 소살거리는 이곳에 마실을 나왔습니다.
 지붕 같은 하늘채에는 흰구름이 윤무하고 침실 같은 대지와 출렁이는 저 하늘 밑엔 푸른 산과 꼬막 등 같은 사람의 집, 아름다운 전주천이 천년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작은 안마당 장독대에 석양빛 서서히 내리고 있습니다. 붉은 햇살은 처마에 걸터 앉았다가 한 나절 잘 쉬었다 간다고 인사를 합니다. 시나브로, 대금 소리와 함께 타닥타닥 불 지피우는 소리가 들리면 목청 큰 소리꾼의 함성이 서서히 잔잔해지면서 밤은 이내 더욱 깊어지고 그윽한 정취를 선사합니다. 손님맞이에 분주한 이들 마을의 이른 아침. 달그락 달그락 그릇을 옮기는 소리와 인근의 전주향교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은 게으른 사람들의 늦잠을 막는 훼방꾼으로 다가옵니다.
 요즘의 전주 한옥마을은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달라지고 있어 종종 조바심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주전부리를 하며 인파로 북적이는 이곳 태조로를 걷다가 유난히 노랗게 보이는 우체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멈춥니다.
 세월호의 아픔 탓인가요. 전주 한옥마을의 ‘느린 우편함’이 노란색이군요. 이는 늦어진 세월호 구조 작업 만큼 늦게 배달됩니다. 달팽이가 우편함에 그려진 것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한옥마을을 의미하는 상징물에 다름 아닙니다. 이는 경기전 안내소와 전주공예품전시장 건너편 전주관광안내소 등 2곳에 자리하고 있지요. 이곳에선 1인당 1장의 엽서만을 받을 수 있으며, 우편함에 이를 넣으면 6개월 후 사연을 가득 담아 배달되는 반면 빨간색으로 치장된 최명희문학관의 ‘느린 우체통은’ 1년 후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개인집과 공방으로 샅샅이, 서서히 들어가 볼까요.  경기전 앞을 나와 전주공예품전시관으로 가는 길에서 ‘에루花떡갈비’를 떡하니(?) 만날 수 있습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란 입춘첩 바로 옆엔 나무를 정성스럽게 깎아 마름질한 나무 우체통이 전주 사람들의 장인정신을 말하는 듯,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게 앞 몇 개의 항아리들과 잘 매치가 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전주공예품전시관 역시 소나무로 만든 우편함이, ‘공명헌’은 초록 바탕에 꽃이 그려진 우편함이, ‘데미샘’은 구름 모양의 길상 문양과 함께 ‘좋은 소식만...’이란 글귀가 선명한 우편함이 각각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마음이 제각각인 것처럼 알록달록한 우편함이 이처럼 골목골목마다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오늘에서는. ‘제인당’은 연꽃 문양이 부조된 나무 모양의 우편함이, ‘달 이야기’는 금속 문양으로 치장됐지만 상당히 멋을 부린 우편함이, ‘꽃자리’ 는 빨간색이 선명한 가운데 이를 통해 주인네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집니다.
 바로 인근의 우편함은 아주 특이합니다. 구 주소 ‘3가 81번지 9호’라는 번지수가 새겨진, 사과 모양의 우편함이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최명희길 26-19’ 새 주소가 병행됐군요. ‘어진길 39’에 자리한 ‘뜰’은 빨간색 함에 탐스런 꽃이 소담하게 피어났으며, ‘어진길 38-1’ ‘푸른돌’엔 기하학적 무늬가 더욱 돋보입니다. 또, ‘하루 일기’는 함석 모양의 우편함에 영어로 ‘MAIL’이란 글귀가, ‘달빛 정원’은 축소된 한옥 모양의 우편함으로, 한 쌍의 나무 문짝과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손으로 눌러 쓴 편지의 기억이 까마득하군요. e메일,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에 밀려 ‘손 편지’가 ‘이색 편지’가 된 시대입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손 편지 한 통을 써서 당신에게 부치고 싶습니다. 싱그러운 ‘온고을’ 쥘 부채 하나 손에 쥐고 한옥마을 어귀에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이 조그만 조각배 서신에 살듯한 정을 담아 ‘슬로시티’ 편지를 보냅니다./새전북신문 이종근 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