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청산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오늘도 청산에 살고 있고,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청산에 살고 싶다.
이문수화백(교동아트미술관 큐레이터)이 16일부터 2월 5일까지 전주 얼 갤러리에서 '청산별곡'을 주제로 한 열두번째 개인전을 기획, 20여의 작품을 선보인다.
'청산별곡'이란 삶의 여정을 함축적으로 담은 드로잉과 인간을 의인화 한 나귀가 노래하는 희망 노래로, 천박한 소비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미술적 항변을 고스란히 펼쳐보이는 것.
작가는 "그림으로 날이 새고, 그림으로 날이 저무는 고독한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며, 천박한 소비자본주의가 득세하는 현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자괴감에 빠져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을 뒤척이면서 자체를 뒤돌아보고, 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던 시기를 잘 극복하면서 청산에 살고 있는 마음"이라고.
작품 속 나귀는 자신의 꿈과 밥을 위해 노동하는 인간을 의인화한 사의(寫意)적 표현이다. 나귀를 그릴 때는 자유로운 가변성과 개칠(改漆)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이 공존하는 먹을 사용한다는 것. 먹의 엄하고 철저한 물성은 소중한 한 번의 삶이기에 깨어 있어야만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재료여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캔버스 위에 젯소를 반복해서 칠하고, 광활한 빈 캔버스를 허정(虛靜)하게 바라보고, 숨 멈춘 긴장감으로 오늘도 드로잉을 계속하고 있다.
연필 드로잉은 나귀가 짊어진 현실의 무게나 삶의 여정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이기고 청산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내딛게 하는 기(氣)에 다름 아니다.
"우연히 남송(南宋)의 이름 없는 화가 작품을 만났다. 제 몸보다 더 큰 조사를 등에 진 힘겨운 나귀의 모습에서 ‘이게 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다!’라는 생각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름을 참지 못해 거칠게 담배 한 대를 피운 이후로 나귀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쉽게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새벽에 밀려오는 짜릿한 현기증이 내가 살아있는 증거이고 나만의 소요유(逍遙遊)다"며 "다른 이의 측은지심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오늘도 청산(靑山)에서 살고 있다. 어찌 되었든지 마흔 중반을 넘겨서 하루 내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해도 궁색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작가는 전북대에서 미술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 전북미술대전 우수상과 대상, 전라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전북도립미술관, 교동아트미술관, 정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작가는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강의전담교수, 교동아트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