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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남원 무진정

 

 

 

 

무진정은 남원시 대강면 방산리 456-1번지에 있다.
 이곳에 도착하려면 대강면의 방뜰을 지나야 한다. 방뜰을 지나가 섬진강과 맞닿으면 우회전하여 방산나루 뒤쪽으로 가면 송림 속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앞에는 전남 곡성 땅과 섬진강이 펼쳐지고 좌우에는 드넓은 평야가 보인다.
 대강면의 방산리 일대는 ‘방뫼(매)’로 불렀으며 이는 ‘꽃 방(芳)’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방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정자는 1751년 남원 윤씨의 선조인 무진(無盡) 윤정근(尹廷根)이 세운 정자로, 본래 이름은 무진장(無盡藏)이었다. 원래 이곳의 지명이 무진장으로 작은 주막이 있었으며 오고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그래서 윤정근은 자호를 이곳의 지명을 따서 무진으로 했던 것이다. 무진장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덕이 넓어 끝이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한없이 많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곳은 무진(無盡) 윤정근(尹廷根)의 선산이 뒤쪽에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남원윤씨의 선영과 유적이 많은 곳으로 윤대표와 윤씨의 외손인 유팽노, 양대박 등의 지사들이 구국의거를 모의한 곳이기도 하며, 일찍이 임제 정홍명 등의 문사들이 교유하고 소요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섬진강이 있어 전남 곡성과 남원 대강을 잇는 나룻터가 자리한 지역으로, 남북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도록 이 정자를 지었던 것이다. 건물 기둥에는 원형을 썼으나 안쪽에는 사각기둥을 세워 다채로움을 보였다. 또 건물 뒤편 마루를 조금 높게 깔아 앞뒤의 공간을 나누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건물 안쪽의 상량문을 보니 숭정 기원후 4 기사년에 입주상량을 한 후에 서기 2003년 계미 7월에 중건상량을 다시 했는데, 기록을 보면 “현인들이 이 정자에 가득 차 국운이 융성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 정자가 한번 만들어 지면 세월이 흘러 없어지게 되는 것이 이치인데,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는 것도 무진이란 의미와 상통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무진정중건기은 종인 보국숭록대부 행판돈령부사치사 봉조하 윤정현이 삼가히 썼으며, 기옹이 쓴 숙무진장(宿無盡藏)과 정홍영의 과무진장(過無盡藏), 무진장감회(無盡藏感懷)시가 있으며, 또 신곤이 쓴 시가 판 하나에 새겨져 있다..
 이중 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의 시를 옮겨 본다
  양경우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하자, 아우 양형우(梁亨遇)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하고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학문에만 전념했던 의리의 선비이다. 

漠漠平林淡淡烟(아득한 평지의 숲에 엷은 안개 깔려있고)
小亭風景似前年(아담한 정자의 풍경은 옛날과 같구려)
人情縱有悲歡異(인정은 넉넉한데 슬픔과 기쁨은 다르고)
眼底江山只自然(단지 눈 아래 강산은 자연스럽네)

무진정 편액은 1811년 십세손 윤병한이 해서에 행기를 넣어 썼다. 정자 안에는 주사 민철호가 근차한 시와 진병주가 근차한 시가 있다. 또 후손 윤병희가 쓴 무진정상서, 윤태길이 쓴 무진정중건기, 십세손 병기,병홍이 근차한 시가 있다.
무진정이 있는 나루터는 섬진강을 건너 남북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곳으로, 많은 문인묵객들의 시와 글씨가 있는 곳으로 조용한 계절에 들러 이곳저곳을 둘러본다면 좋은 감상거리가 될 것 같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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