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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남원 금수정

 

 

 

남원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요천가에 1936년에 만든 금수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노암동 금암봉(錦岩峰) 중턱에 있으며 예전에는 부근에 남원신사가 있었던 지역이다.
 지금도 계단 흔적이 남아 있으며 옛 원불교에서 사용한 우물 등이 있다. 이곳 정자의 이름을 금수정이라 한것은 아마도 금암봉 아래에서 맑은 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금수정이라 이름하지 않았나 사료된다. 정자에 오르면 멀리 위용스런 교룡산성이 굽어보고 발아래는 새파란 요천이 흘러 시인문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금수정은 이현순, 조광엽, 서봉선 등이 주축이 되어 지역의 문사들이 시문을 짓고 교류를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건립할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금수정이 세워진 정상에는 남원의 신사가 세워져 남원 주민들이 이곳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도 강제로 이곳에 와서 참배를 했고, 신랑신부들은 결혼식을 할 때도 이곳에 와서 예식을 했고 신사앞에서 결혼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이러한 시점에 지역 유지인 이현순 등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저항하기 위하여 금암봉 중턱에 금수정을 짓고 신사참배를 가는 척하다 이곳에 들러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기며 놀았다고 한다. 즉 금수정은 건립한 시기고 미루어 볼 때 신사참배의 거부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방편으로 신사 바로 옆에 우리 민족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루정을 세웠던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1출목 주심포집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정자 내외부가 모두 화려한 단청이 특징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벽면에 남원 8경을 그려 놓았는데 지금은 퇴색하여 그 흔적을 알 수 없다 하니 아쉬울 뿐이다. 정자는 일반적으로 직사각형으로 짓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정사각형으로 지어 공간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금수정이란 편액 글씨는 전 민의원 학산(鶴山) 조정훈(趙定勳)이 1935년에 해서로 썼는데 약간의 행기를 넣어 들어가는 동쪽 입구에 걸었다.
 내부에는 단기 4269년 병자년에 이근우가 지은 금수정기가 있고, 이어 금수정창건시 의연방명기가 있는데 박선화, 강봉기, 양경수, 서상원, 이현주, 정인권, 조광엽, 이현기, 이태묵, 강경섭, 이근상, 이종경, 김현석 등 총 45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또 김내수가 지은 금수정중수기가 있으며, 또 석봉 이용옥, 동초 주량훈, 낙봉 사광욱, 최성식, 임종환 등은 시를 지여 시판을 만들어 걸었다.   학산 조정훈은 광한루의 호남제일루와 용성관의 편액도 썼다 전하는데 아쉽게도 용성관 편액은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또 1936년경에 군수를 했던 배석린은 남원향교에 있는 진강루같은 편액을 쓴 것으로 보아 많은 예술활동이 펼쳐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강대형이 쓴  광한루의 계관 편액과 관왕묘의 편액과 주련 등은 모두 남원의 예술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금수정안에는 남원 춘향사당을 지을 때 많은 힘을 기울인 양경수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강한루 보수에 많은 목재를 제공한 강대형의 아들 강봉기가 중건기에 나타나고 있어 남원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남원의 광한루와 금수정을 둘러보고 맛있는 음식과 남원의 판소리를 한 대목 듣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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