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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잘 커다오! 꽝꽝나무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 아버지는 큰 나무로 키우기 위해/ 자신이 기른 어린나무를/ 깊은 산속에 소중히 옮겨 심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가/ 어린나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이 미안했습니다.// 가진 것이 넉넉지 못해/ 충분히 거름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배운 것이 없어/ 좋은 말을 들려주지 못한다는 점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어린나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 그 말 뿐이었습니다.”
  이상은 권영상의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라는 시이다. 부모는 늘 주어도 모자라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 같다. 나는 부모의 입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내 놓을 것이 많은 내 오빠와 동생의 경우 늘 자식들 앞에서는 더 못해주어 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 같다. 이 시에서 부모는 어린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미안하고 넉넉지 못해 충분한 먹을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하고 배운 것이 없어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함을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으로 대변하고 있다.
  꽝꽝나무는 영어로 Japanese Holly 나무라고 하고, 한자식으로는 구황양(狗黃楊)이라고 하는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불에 탈 때 꽝꽝 소리가 난다고 해서 꽝꽝나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이름치고 나무로써의 삶을 마감할 때야 자신의 이름값을 하는 나무이다. 어쩌면 자식들에게 다 못해준 미안함을 가슴에 안고 떠나며 그 마음이 터지면서 꽝꽝 소리를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나무의 특성상 쌍떡잎 식물의 상록활엽수로 가만히 살펴보면 한 가지에 가득하게 잎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 식구가 많은 흥부네 집을 보는 것 같다. 또 상록활엽수이기에 사시사철 없어도 있는 듯이 살아가는 올곧은 가난한 집의 가장과 그 가솔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시인 권영상도 그렇게 어린 꽝꽝나무와 큰 꽝꽝나무를 아버지와 자녀로 빗대어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지역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는 꽝꽝나무 군락지(사진 1)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과거에는 700여 그루가 있었지만 현재는 200여 그루 정도가 있다. 숫자가 많아서도 지정되었지만 부안 변산면 중계리는 꽝꽝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고 할 수 있어서다. 나뭇잎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을 이루고(사진 2) 꽃은 암수 딴 나무로 6월에 약간 초록빛이 있는 흰 꽃이 핀다(사진 3). 열매는 검은빛의 핵과로 익는다.(사진 4)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지역에 천연기념물로 호랑가시나무(사진 5)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며 사시사철 잎이 푸르다. 주로 전남 남해안과 제주 서해안에서 자란다. 잎 끝이 가시처럼 되어 있고 전남 남해안과 제주 서해안에 자라고 있다. 꽃은 향기가 나며 4월 하순부터 5월 상순에 걸쳐 5~6개가 잎겨드랑이에서 산형(傘形) 꽃차례를 이루며 하얗게 무리지어 핀다. 열매는 9·10월에 빨갛게 익는데(사진 6), 겨울철에 눈 속에서도 붉은 빛을 띠어 녹색의 잎을 배경으로 한 호랑가시의 붉은 열매는 겨울 내내 아름답지만 특히 적당히 눈이 내리면 그 아름다움이 더한다. 이 열매는 새들도 즐겨 먹는데 잎이 날카로운 나무보다는 부드러운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으며 나중에 먹을 게 없어지면 날카로운 잎의 나무도 먹게 된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도청리의 남쪽 해안가 산에 50여 그루가 듬성듬성 집단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나무들의 높이는 약 2∼3m 정도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집안에 마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음력 2월 1일에 호랑가시나무가지를 꺾어 물고기와 같이 문 앞에 매다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부안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이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를 갑작스레 천국에 보내고 무엇을 어찌할까?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날들을 의욕 없이 살고 있었다. 나도 엄마처럼 갑작스레 신이 부른다면 그 곳에 가야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일까? 라는 생각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심어 놓았던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네가 있어서 좋아! 그런데 너는 내가 있어서 좋지 않니?’라고...그 나무들의 생기를 통해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나무들을 심어보았다. 심은 후 몇 번 물을 준 것 밖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무심히 지나칠 때도 있었고 봄에 새 순을 내게 선보일 때, 환희에 찬 찬사를 보내주었고 슬플 때에 이쁜 꽃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으며 외로울 때 바람과 함께 그 잎들은 내게 춤을 추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묵묵하게 그곳에서 언제나 나의 오고 감을 바라보면서 지켜주는....
  그래서 우리의 옛사람들이 살았을 때, 동네의 당산나무가 묵묵히 그들의 역사를 함께 했기에 그 나무에 정령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일게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꽝꽝나무와 호랑가시나무는 이름이 매우 재미있는 나무로 부안지역이 그들의 북방 한계선이다. 이 나무들을 좀 더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문화재돌봄사업단 일이다. 꽝꽝나무는 그래도 안정적인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접근이 너무 어렵다는 안타까움도 있다. 그러나 호랑가시나무는 오랫동안 변산 앞바다의 부딪치고 외치는 파도와 함께하여 왔다. 해안도로로 인해 차량의 속도에, 매연에 시달리고 있다. 파도의 울부짖음보다 차량의 소음에 귀를 닫고 싶어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나무에게 우리 삶을 구경꾼으로 살아오는 동안 우리의 모습이 어땠는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우리가 집을 짓겠다고, 길을 내겠다고 그 자리를 지킨 나무를 한 순간 잘라 버린다. 그 매정함에 대해 나무는, 그리고 숲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답할까?
  조안 말루프의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라는 책에 “많은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7대까지의 후손을 고려했다.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 중에 미래 세대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이 각 지역 별로 한 명씩 있다면 정치가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사진자료 문화재청, 전경미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문화재돌봄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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