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의 삼인대(三印臺)는 1515년(중종 107)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이 중종반정으로 억울하게 폐위된 신비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 곳이다. 신씨는 역적 신수근의 딸로 중종반정후 폐위되고 장경왕후 윤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는데, 10여 년만에 윤비가 죽자, 이 세 사람이 여기에 모여 신비 복위를 청했다. 삼인대라는 이름은 이때 이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허리에 차고 있던 관인(官印)을 소나무가지에 걸어 놓고 맹세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호남사림의 절의정신을 상징물이 됐다.
충청도 은진현 땅이었던 연무읍 황화정은 조선시대에 신구 전라관찰사가 임무를 교대하던 곳이다. 충청도는 진천군 만승면 광혜원(廣惠院)리 광혜원 터에 있는 정자에서 새로 부임하는 충청도의 관찰사와 퇴임하는 관찰사가 서로 관인을 주고 받았다고 하며, 경상도의 신구 관찰사는 문경새재의 중간쯤에 있는 교구정에서 관인을 주고 받았다. 고창 모양성제는 원님 교인식 즉, 신.구임의 관인 교환 의례가 있다.
‘꼬불꼬불’한 관공서 관인이 65년 동안 전북 도내 각급 기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국적 불명의 한글 ‘전서체’는 전혀 가독성이 없어 언제나 참 어렵다. 각 시군의 시장, 군수, 그리고 동장과 면장의 관인은 말 그대로 수수께끼를 푸는 듯, 어려움 그 자체다. 공문서의 관인은 기관장 등의 명의를 나타내는 인장으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적 불명의 한글 전서체(篆書體)를 사용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글자의 획을 임의로 늘이거나 꼬불꼬불하게 이리저리 구부려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국민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한글이 사용되도록 ‘사무관리규정 시행규칙’을 개정, 2011년 3월 2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월인천강지곡(보물 제398호)의 아름다운 글꼴로 집자(集字, 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해 한글로 새로 새긴 관인을 2012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청, 화성시청, 서울시의회 등 경기도를 비롯,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의회에서 바꾸고 있지만 전북은 아직 관인을 바꾼 곳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정 먼저 전북도교육청이 이를 바꿨으며, 최근 들어 전북도청이 관인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 2종을 선보일 것 같다. 전북도교육청은 1964년부터 사용한 교육감 직인을 폐기하고 도민이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한글 글씨체로 만든 직인을 6월 1일부터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도내 지자체와 시군의회, 각 사업소 등이 이른 바 가독성이 거의 없는 한글 전서체 관인을 여전히 쓰고 있다. 공인 조례를 개정하면 참 손쉬운 일을 하지 않음은 왜 일까. 한글의 다양한 글꼴을 사용해 완판본의 고장의 전통을 있는 게 그렇게 힘든 것일까. 관인 개정 등 사소한 것부터 도민 불편 해소를 위해 지속적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게 손톱 및 가시를 빼는 일이 아닐까. 글자 모양이 나뭇가지가 얽힌 것처럼 꼬불꼬불해 알아보기도 어려운데도 요지부동인 것은 청산해야 할 권위의식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는. 도민들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 바로 사소한 관인 개정 또는 변경으로부터 시작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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