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위나라 대부 왕손가는 요즘 말로 실세 중에 실세였습니다. 그는 공자를 만나서 “아랫목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 신에 잘 보이는 게 낫다”라고 말합니다. 왕손가는 그 당시 속담으로 보이는 이 말을 끄집어내서, 그 뜻을 알면서도 무슨 뜻인지를 공자에게 물었스니다. 아랫목 신은 안방 신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그 집 주인인 위나라 제후를 뜻합니다. 반면 부뚜막 신은 제사상이 준비되는 부엌 신을 의미하며, 그 집 실무자로 실세였던 대부 왕손가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실세인 왕손가 자신에게 잘 보일 것을 공자에게 넌지시 말한 것입니다. 이에 공자는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마저 없다(不然獲罪於天無所禱也”라고 대답합니다.
한때 조왕신은 부엌을 맡고 있는 신으로, 불의 신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거나 집안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굿을 할 때에는, 조왕신에게 조왕상을 차려 놓고 집안이 잘 되도록 해달라고 빌며 절을 하고 새벽에 부뚜막 위에 깨끗한 물을 떠 놓고 집안의 무사함을 빌기도 했습니다. 아궁이, 밥솥을 관장한다고 여기며,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느냐 못하느냐가 조왕신의 신력에 달려있는 것으로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재물신으로도 인식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구조상 아궁이에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고 방을 덥히는 등 가정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하며, 불을 제대로 때지 못함은 생활의 빈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서민생활이 어려웠던 옛날에는 그 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아서 끼니를 잇고 걸름을 판단하였습니다.
아궁이는 이와 같이 불을 때어 음식을 만들고 방을 따뜻이 해서 잠을 잘 자게 하는 문제 등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왕에 대해서 불경스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아궁이에 관계되는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아궁이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 등은 철저한 금기사항입니다.
그리고 아궁이를 개조하거나 수리하는 일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왕을 화신으로 인식하면서 정성을 들여 중하게 모시는 것은 불은 물과 더불어 종교적인 정화력(淨化力)을 갖는다는 데에도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에서, 불씨를 신성시하여 이사를 갈 때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풍습이나 이사간 집에 성냥을 가지고 가는 풍습은 모두 불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부엌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 때 자연히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과 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조왕신이 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왕신은 원칙적으로는 불을 모시는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왕신은 원래 화신(火神)으로 모든 부정을 없애 신성하게 만들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입니다. 특히 조왕신의 역할은 음식 맛을 관장하고 화재가 나지 않도록 하며 더 나아가서 가족의 건강과 무사고 그리고 자손의 무병장수까지 살피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주부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항상 만나는 가신이 바로 이 조왕신입니다. 조왕신은 부엌을 다스리는 큰 신이므로 주부의 모든 행동은 그 앞에서 조신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의 청결 상태, 땔감의 간수, 부뚜막의 위생 상태, 설거지를 해야 할 분량, 변소를 출입 한 후 다시 부엌에 올 때의 신발 갈아신기 등 성실성과 정결성 그리고 조심성을 유지하면서 조왕신의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조왕신을 모시기 위해 집안의 여자들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한 물을 길러다 종지에 담아 부뚜막 위에 조왕의 신체를 놓고 절을 하기도 했답니다.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 등 근대화를 겪으면서 조왕신이 머물고 있던 아궁이와 솥단지로 대표되는 부엌은 편리하고 위생적인 입식 주방으로 개량화 되면서 더 이상 조왕신이 머물 곳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때문에 가신 신앙 중 삼신 신앙과 같은 몇몇 신앙은 그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지만 조왕 신앙의 경우는 부엌 생활의 변화로 급속도로 소멸되어 갔습니다.
조왕신이 사라진 뒤에 삼가고 조심하는 풍조가 없어져서 그런지 부엌에서 요리하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자주 발생합니다. 보통은 뜨거운 국물에 의해서 데거나 기름으로 튀김등을 하다가 많이 발생하며, 걸음마를 갓 한 아이가 뜨거운 탕을 엎거나 하는 아이의 화상사고도 가장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집에서 발생하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참여정원 구역으로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전통 부엌이 지닌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부뚜막( 부엌에 아궁이 위에 걸어놓은 솥 언저리에 평평한 자리) 정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뚜막 정원을 외부에서 보면 직선을 이용한 방지 형태의 꽃담은 높이가 낮고 소박해 한국 부엌의 전통과 문화를 느끼게 하구요, 담을 돌아서면 부뚜막에 지필 장작더미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엿보입니다.
부엌을 지키는 한국의 화신, 조왕신은 어디에 있는가요. 그럼에도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야 하나요.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는 표현은 어떤가요. 가까운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넣지 않으면 음식이 짠맛이 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 마련됐거나 손쉬운 일이라도 힘을 들여 이용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부뚜막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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