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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제비는 강남에 있나요?

오래 전, ‘제비 몰러 나간다’는 광고 CF가 입소문을 통해 유행처럼 번지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흥부전의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의 사연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을 지어놓고 제비가 오기만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자 놀부가 직접 제비를 몰러 나간다는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제비노정기(路程記)라고 하며, 설렁제(덜렁제)의 대가 권삼득명창이 자주 불렀다고 합니다.

 

 오는 12일은 제비가 날아들면 들로 나와 꽃놀이를 즐기며 화전을 부쳐 먹었다는 삼월 삼짇날입니다. 삼짇날은 양수(陽數) 중복일 풍속의 하나입니다. 날짜에 양기가 겹치는 날은 왕성한 양(陽)의 기운이 넘치는 날이기에 예로부터 커다란 명절로 일컬어 왔습니다.

 

 3월 3일,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절 모두 커다란 명절이었습니다. 특히 3이라는 숫자는 순양(純陽)의 '1'과 순음(純陰)의 '2'가 결합하여 얻어진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길수로 여겨졌기에, 3월 3일은 만물이 소생하는 왕성한 만춘의 봄기운으로 인해 야외에서 얻어지는 풍속이 많은 날입니다.

 

 상사, 원사, 상제라고도 하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은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 여인들이 제비가 날아들면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과 들로 나와 꽃놀이를 즐기며 화전을 부쳐 먹기도 했다지요.

 이날은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꽃을 붙여 지져 먹는 화전(두견화전)이 가장 유명합니다.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서 오미자 국물에 띄우고 꿀물을 섞고 잣을 띄운 것을 화면(花麵, 꽃국수)이라고 하며, 녹두로 국수를 만들고 붉은 색으로 물들여 꿀물에 띄운 것은 수면(水麵, 물국수)이라 합니다.

 특히 이날 봄을 즐기기 위해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감으면 흐르는 물처럼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아름답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날 나비를 보고 점을 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나비 가운데에서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고, 흰 나비를 먼저 보면 부모의 상을 당한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비 몰러 나간다 ~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 ~’라며 호탕하게 부르짖던 박동진명창은 고인이되었고, 이제 제비는 볼 수 없게됐지요. 내가 나이를 먹어 제비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요, 아니면 제비가 찾지 못할 수 없는 환경을 우리들이 만들어 놓아 종적을 감춘 것인가요.

 

 사실 ,제비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믿음’을 줘 왔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어둠이 가면 다시 새로운 해가 뜨는 것처럼, 봄이 오면 제비가 돌아온다는 것도 자연이 주는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나요. 하지만 종종 제비가 귀향(歸鄕)하리란 믿음! 그러나 문득 ‘이런 믿음도 깨어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한반도를 찾는 제비의 개체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니 ‘봄은 봄이로되 제비는 오지 않는’, 정말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요.

 

삼짇날이 지나도 쉽게 제비를 볼 수가 없는 것에 대해 조류학자들은 아파트·연립주택 등 ‘상자형’으로 집 구조가 변한 것이 제비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합니다. 환경 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엔 당연히 제비가 살 공간이 없어 오지 못하는 것이며, 또 제비의 먹이들도 오염된 물로 인해 많이 살아진 것 이겠죠.

 

 따라서 전남에서는 삼짇날 제비를 맞이하기 위해 제비집을 손보기도 하며 제비가 집에 와서 새끼를 네댓 마리 까고 길러서 나가면 그 해 복을 받는다고 여겼는데, 이를 어찌 해야 하나요. 어쩌면 판소리 '제비노정기'의 내용을 앞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라진 게 이뿐입니까. 또, 그 많던 들판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요?’ 서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봄의 들에서 나는 열매가 싱아입니다. 삭막한 도시에서는 더 이상 싱아를 볼 수 없게 된 입니이다. 더 이상 싱아를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어릴 적 평화로움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며 종적을 감추어 참 안타깝습니다.

 

제비가 오지 않는 봄은 누구나 오래 머무르기를 바라지만 인간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가보옵니다. 그래서 두보는 시 ‘가석(可惜)’에서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은 더디기를 바라는데(花飛有底急/老去願春遲)”라고 노래했지요.

 

 아마도 아무리 기다려도 제비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삼짇날에 진달래로 봄향기를 듬뿍 담아 화전을 만들어 보고, 머리를 감고 종이 제비를 접어 하늘 높이 날려보내시면 어떨런지요. 모두모두 제비들처럼 입을 모아 즐거움 을맘껏  지저귀기를 바랍니다. 보물 박씨를 물어다 줄 제비를 찾아 우리 희망 몰러 밖으로 나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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