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엔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담이 있습니다. 꽃담, 말부터 참 예쁘고 앙증스럽지 않나요. 여러 무늬를 놓아 독특한 치장을 한 벽체나 합각,굴뚝,담장의 통칭을 꽃담이라고 부르지요.
꽃담은 집주인의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가 하면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초청을 합니다.
'여기는 내 땅이야', '타인 출입금지'식의 엄포가 전혀 없습니다.
질박하면 질박한대로, 화려하며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아는 꽃담을 보면 흙이 내뿜는 좋은 기운과 당신을 생각하곤 합니다.
대한민국의 (전통)꽃담은 곡선으로 쌓는게 정석입니다. 삐뚤빼뚤하게 꾸미는게 아니라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는데, 직선으로 쌓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꽃담은 숨어있는 조상들의 지혜와 여유의 산물입니다.
꽃담은 '반 발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요', '적게 흐르는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하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순자처럼 살다가라 합니다.
또, 한 웅큼의 배추 속같은 하얀 마음을 타인들 앞에 활짝 열 수 있게 끔 한울타리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부디 소원하건대, 서로 엇갈리는 두 마음을 갖지 말라 하고,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하게 한다는 삶을 좌우명으로 제시합니다.
4자는 죽을 사(死)가 아닌, 일 사(事), 사례할 사(謝), 섬길 사(仕)로 해석하면서 긍정적 사고를 낳게 했으며, 달덩이처럼 큰 미소와 함께 찰진 눈웃음을 머물게 하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서양에 악당을 물리치는 독수리5형제가 있다면 백의민족은 5부자가 오순도순 콩 한 조각도 나눠 먹으며, 정에 죽고 의리에 사는 세상사를 실천해 차라리 눈물겹습니다.
6월이라 유둣날에 3현6각, 3정승6판서의 이치마냥 3과 3의 배수인 6의 결합으로 행복 바이러스를 언제나 소원했지요.
일곱 색깔의 고운 무지개를 맘 속에 새겨놓고 견우직녀의 상봉과 그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라. 8월 한가위를 맞아 9988234,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저승에 갈 수 있도록 정화수를 떠놓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의 항아님에게 무병장수를 기원했습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 중구절에는 국화주가 좋을시구. 삼천리 방방곡곡마다 푸진 잔칫상을 베푸는 한편 아홉 번 구운 죽염을 한 모금 입 속에 털어 넣을 양이면 피폐해진 몸추스리는 명약이 따로 없습니다.
봄이 오면 담쟁이덩쿨이 휘감고 가을이 오면 빨간 홍시와 낙엽으로 수를 놓았던 꽃담이 시멘트담과 아파트 스카이 라인에 밀려 하나둘씩 밀리면서 세상이 각박한지도 몰라요.
우리의 삶이 더 추락하고 황폐하기 전, 꽃담닮은 향기로운 삶이고 싶습니다. 늘 꽃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반반자 쉬어가는 여유를 배우며, 한 박자 건너가는 마음을 통해 가슴에 쌓인 원한과 저린 기억마저도 저 멀리 몰아낼 수 있는 자신감을 충전하곤 합니다.
애써 서두르지 않고 한 뼘의 여유를 지닌 채 세상의 파고를 무사히 뛰어넘을 수 있도록 님 오시는 길목에 나지막한 화초담 하나 쌓으며 다운 시프트로, 슬로 시티로, 앙증맞은 굴뚝 하나, 바자울 살창 하나 곁에 두고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이 꽃담, 저 꽃담은 버림은 소유의 끄트머리가 아닌, 무소유의 아름다운 절정이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입니다. 고기는 씹어야 제 맛이며, 흙은 자꾸 밟아주어야 기운이 생기며, 꽃담은 자꾸 눈길을 주어야 기분이 좋게 된다는 생각을 하는 오늘에서는.
'한 돌 두 돌 세 돌, 징검징검, 띄엄띄엄' 쪽빛 한쪽을 벗삼아 꽃담길을 걷노라면 , 얼굴을 반쯤 내민 해바라기, 능소화는 정겨운 친구.
바로 그 돌담길을 휘감고 내뻗은 덩굴들은 느릿느릿, 여여(如如)히, 내 삶의 슬로시티. 삼백예순다섯날, 모두가 꽃담처럼 방실방실 웃으며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늘 닮은' 당신
'하늘 담은' 마음
을 가진 이 땅의 모든 당신들,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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