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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영사정, 사신 주지번이 썼다

 

 

 

 

 

 

 

영사정은 남원에서 금지쪽으로 가다가 요천강(섬진강)을 끼고 형성된 남원의 금지평야를 한눈에 바라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금지면 택내리 마을회관에서 사제당 안처순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을 지나 약간 산을 오르면 정자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기묘명현(己卯名賢) 사제당(思齊堂) 안처순(安處順)의 아들인 죽암(竹巖) 안전이 1521년(중종 16년)에 지은 정자라고 한다. 즉 부친의 묘소를 자주 찾아볼 수가 없어 이곳에서 망배하기 위하여 영사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부친을 오래도록 사모하였다고 전한다.
 또, 영사정은 유명한 정자로 김인후, 기대승, 양팽손, 송순 등이 교류하던 곳이며, 정철, 윤두수, 안위, 이후백, 안정, 양사형, 한준겸, 임제 등 많은 제현들이 찾아와 시를 읊은 곳이다.
 영사정의 편액은 전주객사를 쓴 중국 사신 주지번의 글씨이다.
 주지번은 남경 사람인데 중국 북경에 와서 과거시험을 보았지만 계속 낙방하였는데 익산 장암에 사는 표옹 송영구가 조선 사신으로 연경에 갔을 때 주지번의 사람됨을 보고 과거보는 방법과 학문하는 자세를 지도한 인연이 있어 이 둘은 사제지간의 예를 갖추었다 한다.
 그런데 이후에 주지번이 장원급제하여 조선 사신으로 오게 되어 익산 장암의 망모당 편액, 전주 객사 풍패지관 편액, 그리고 남원의 영사정 편액을 휘호하였다 한다
 영사정 편액은 해서로 썼으며 옆에 간지가 있으며 주지번의 낙관이 찍혀 있다.
 주지번은 대단한 문장가로 중국에서도 알려졌으며 글씨의 서체는 조맹부의 필의가 상당히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약간 부드러우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글씨이다.
 그는 사신으로 오면서 글씨를 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써 주었으며, 전국에 많은 글씨가 남게 된 연유도 이러한 이유인 듯하다.
 영사정에 오르면 멀리 지리산 자락이 눈에 잡히고 주련이 온 기둥을 감싸고 돌아가는데 이 내용을 주자의 경계잠 내용으로 주자필의이다.
 안에는 영사정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바로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사재당 안처순의 유품을 보관하는 전시관이 나온다.
 전시관에는 주지번이 쓴 영사정 편액 원본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1830년 제작한 편액목판이 있다. 또  안처순이 남긴 유품 중〈기묘제현수필〉과〈기묘제현수첩〉2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잘 보관되고 있다.
 기묘명현수첩은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를 전후하여 기묘제현들이 쓴 간찰을 묶은 책으로서 후에 전라감사 한준겸과 대재학 이호민이 선조 36년(1603)에 편지들을 배접하여 병풍첩으로 만들었다. 석봉 한호의 친필로 기묘제현수첩이라는 제목을 써 붙였고 ,이 수첩에는 사제당 안처순에게 기묘제현 13명이 보내온 간찰 39통의 내용이 실려 있다.
또 기묘명편수필첩은 안처순이 세상을 떠난 후인 선조 36년(1603)에 김인후의 발문과 함께 첩으로 만들어졌고, 순조 29년(1829)에 조인영에 의해 전라감영에서 다시 제본한 것이다.
 총 3면에서 50면에 이르고 있는데, 수필첩 끝에는 총 24명의 명현들의 성명,호,관직 등이 간략하게 수록되어 있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전북문화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