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리문화의전당 인근의 오송저수지로 마실을 나가 편백나무숲을 사부작사부작 거닐어보는데, 내 모습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땅과 하늘을 진동하고 있는군요. 저에게는 무슨 냄새가 배어있나요. 편백나무는 저와는 달리, 춥다 하여도 남의 이불을 빼앗지 아니하며, 배고플지라도 이웃의 밥상을 탐하지 않습니다.
편백나무는 늘 그리움에 살지요. 그 그리움은 사랑의 빛깔, 그 만의 향기는 냄새 이상(以上)의 이상(理想)' 어쩌면 이상(理常)한 존재일지도 몰라요.
그는 나이테를 더하면서도 세월을 몰래 감추구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위해 아량을 베풀 줄 알며,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덕으로 동화시켜 언제나 은은한 향취, 솔솔 발산합니다.
허공 이외에는 아무 것도 쥐고 있는 것이 없는 가운데 바람이 불면 같이 울고, 비가 내리면 온몸으로 받다가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스스로 몸을 부러뜨려 남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 늙고 병들어도 그림자 하나 흐트러 뜨리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듬직합니다.
바라옵건대,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큰 나무같은 사람, 많은 사람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고, 바로 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무는 덕을 못 보아도, 사람은 큰사람의 덕을 본다고 했나요. 나무는 큰 나무 곁에 있으면 햇빛이 가려 좋을 것이 없지만 사람은 큰사람 가까이에서 그 덕을 입게 된다는 말을 다시금 믿고 싶습니다.
편백나무는 꽉막힌 저와는 달리, 시시때때로 숲에 곧잘 드러 눞습니다. 벼락보다 더 빨리, 새보다 더 빨리 울지만 풀보다 더 먼저 일어나지요.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에도 슬퍼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큰 나무를 구하려면 깊은 산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가까운 산의 좋은 나무들은 이미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나물도 좋은 것을 많이 뜯으려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요. 큰 것은 대들보로 쓰여 더욱 좋겠지만 작더라도 서까래로, 굽더라도 선산의 나무로 각각 쓰임새가 있구려.
편백나무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그리운 날 입니다. 진한 향기를 내는, 벗을 갖고 싶습니다. 저는 편백나무 밑에서 노니는 닭처럼 그 향기 천천히 퍼뜨리며 있는 듯 없는 듯, 들숨과 날숨 반복하며 그렇게 살고파요.
향기나는 편백나무, 참 아름답습니다.
향기나는 사람은 이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면, 나도 아주 작은 새싹 하나 살째기 피워 아주 보잘 것 없는 향기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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