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흘려보낸 섬진강은 하얀 매화 붉은 매화로 뒤덮여 온통 장관을 이룬 채 꽃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합니다.
청매실농원 산 중턱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기기묘묘한 꽃물 세상. 청매나무엔 푸른 빛이, 홍매나무엔 연분홍빛으로 제각각 수를 놓으면서 하는 말. 그대여! 숨이 막힐 지경이면 ‘산 첩첩, 물 철철’, 봄노래를 흥얼거리라고.
매실을 담는 항아리들 너머로 '섬진’마을을 거슬러 강 위로위로 오르고 또 오르는 농부의 모습하며, 거센 물살을 뚫고 강바닥에 몸을 바싹 밀착시킨 채 오로지 자갈에 의지하며 자꾸만자꾸만 상류로 오르는 물고기떼들의 반짝이는 금비늘은 또 어떻습니까. 오늘처럼 화려한 날엔 제발, 제발 봄비 대신에 봄 꿈으로 화답하려므나.
꽃을 ‘보는 감상법’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산수유는 노랗게 물든 색깔에, 벚꽃은 꽃보다는 그 규모에 눈길이 가는 법. 매화는 아찔한 향기가 특징인 반면 장미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전주 서신갤러리가 20일부터 30일까지 전주출신 남천 송수남(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 초대전 '선비, 매화에 취하다'를 선보입니다.
선비정신을 머리 맡에 두고 매운 겨울을 건넜을, 선비이고자 했던 이들이 그리워 피어난 꽃을 오래 들여다보는 자리에 다름 아닙니다. 어두울수록 암향 더욱 짙고 기뻤고, 슬펐던 세월의 기억조차 길고 지루한 계절을 지나 매화향 그윽한 이곳 전주에서 그렇게 붉게 물이 듭니다.
그의 문인화는 정평이 나 있지요. 시적인 한글 화제도 일품이지만 약간의 채색을 곁들인 먹산수는 더 더욱 좋지요.
그는 2003년 홍익대에서 퇴임한 이후 화려하고 현란한 색감의 꽃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꽃의 구체적인 형태나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하는 대신 화려한 색을 입혀 대상의 개성을 드러냅니다.
'선비, 매화에 취하다'전은 느린 걸음과 호탕한 웃음 속에 숨은 남천 송수남화백의 수줍은 감성을 연분홍 매화로 피워낸 작품들에 한껏 취해 보게 만드는 자리입니다.
여수의 짙푸른 밤 하늘에 뜬 달과 잔잔히 흐르는 물, 송광사와 신륵사의 고목 매화에 핀 홍매의 가지 뻗음 등 화면가득 표현하는 생명력이 넘쳐나 꽃멀미를 나게 하는군요.
한적한 마을 풍경 속에서 도란도란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소나무 그늘 아래서 가져보는 잠깐의 여유가 그리운 오늘에서는. 이윽고 계곡의 물소리가 시나브로 달려들고, 소나무 숲의 바람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듯, 세속적 갈등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어 유유자적하는 탈속의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화가는 잊지 않고 전주 흑석골에 찾아와주는 꾀꼬리와 파랑새가 고맙고, 해마다 새끼를 낳으러 오는 딱새가 고맙고, 쓰임새 많은 매실과 향기로운 꽃을 내어주는 매화나무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눈보라 속에서도 청매화 작은 꽃봉오리에 푸른 기운이 다부지게 솟듯이, 화가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까지 단단한 땅 속에서 꿈틀거리며 아주 흥건한 그림 잔칫상을 선물합니다.
맑고 향기로운 차를 닮은 화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온기를 느끼며, 앞으로 함께 나아갈 힘을 매화 작품을 통해 얻으면서 참 알록달록한 봄을 온몸으로 맞이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