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몸이 천냥이면 우리의 눈은 분명히 구백냥이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전, 지독한 근시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겂도 없이 멀리만 보려하다가 가장 가까운 것을 곧잘 놓치곤 하기 때문입니다.
전, 나이 탓에 노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상과 만나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사물을 보며 접하다 보면 눈동자가 맘대로 잘 굴러가지 않고, 제멋대로 아프고, 아무 때나 눈물이 흘러내리곤 합니다.
전, 원시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위의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고, 대부분의 일들이 결정돼 현실에 종종 안주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 밖 세상을 잘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리빙스턴 씨걸처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바라본다는 말이 남의 얘기입니다. 조금만 가시청 범위를 넘어가면 깜깜한 동굴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또,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히 본다는 말도, 가장 고요히 나는 새가 가장 깊게 본다는 말도 저에게는 해당되는 게 없습니다.
때론 현미경을 들이대고, 때론 망원경을 잡아들고, 때론 반사경에 의존하지만 현미경이 필요한 시점에서 망원경을 사용하고, 망원경이 필요한 찰나에 현미경으로 응수하며 어지러움증과 멀미를 호소하곤 합니다.
그래서 촉각과 냄새에 의존한 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다보면 실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모든 게 문제이지만 근시가 가장 큰 적입니다.
언제나 가족, 형제, 친구, 그리고 부모님 등 가까운 사람들과 원만하지 못해 갈등을 조장하며, 때론 이별과 실망을 가져다 줍니다.
오히려 소중한 사람에게 강하고, 그밖의 사람들에게 약한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현재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하는데, 있을 때 더 신경써줘야 하는데, 이들 맘을 잘 헤아려줘야 하는데, 도통 잘 되지 않습니다.
있는 힘껏 사랑하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이별하고, 또 다시 목청껏 사랑을 외치다 지쳐 쓰러지기도 하는 일을 자주 겪다 보면 성숙한 내가 서있음에 놀라기도 하며, 대견한 자신이 있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제라도 근시를 면할 수 있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내일 헤어질 것처럼, 따스한 눈빛으로 그들을 대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 잘 나눌 줄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마냥 좋은 것만을 보려하고, 좋은 생각을 담으려 하며, 시간만 나면 마실을 나가 세상과 만나며 생긴, 삶의 안압을 땀으로 빼내는 게 생활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모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사랑합니다.
망원경과 현미경, 반사경이 종종 오작동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눈빛으로, 더 큰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종근의 행복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