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찰의 천왕문(天王門)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부처님이 계시는 사바세계와 정토를 구분 짓는 경계구역에 위치해 있는 천왕문에서 사천왕을 만날 수 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부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세계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가 수용한 것을 의미한다. 사천왕은 33천 중 욕계 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지배자로, 수미(須彌)의 4주를 수호하는 신이다.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구성, 저마다 권속을 거느리고 있는 이 사천왕은 힌두교의 사방 수호신과 내용상 동일한 관념을 채택했지만 신의 명칭에서 그 원어까지 동일하지는 않다.
칼을 들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동쪽을 수호하는 데,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 벌을 주며 온몸에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고는 부릅뜬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며, 앙다문 입이 마치 이곳을 지나는 죄인의 목을 한 칼에 칠 기세다.
또, 남쪽을 수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빛을 띤 몸에 매서운 눈을 하고 있으며,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푼다고 한다.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는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고 하며, 몸은 흰빛이 나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비파를 들고 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쪽을 수호하면서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역할을 한다.
고창 선운사 천왕문은 도솔교를 건너서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해당하는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무엇보다도 맞배지붕의 간결한 선이 아름답다. 지붕마루의 부드러운 곡선이 뒷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선운사 천왕문 앞. 2층으로 된 누각에 ‘천왕문(天王門)’이라 시원스레 쓰여진 파란색 현판이 선운사의 첫 관문임을 알려준다. 조선시대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원교 이광사의 편액인 셈이다.
각종 기록에 의하면 천왕문은 1624년 창건된 것으로 전하지만 현재의 문은 19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최근 사역을 정비하면서 앞쪽으로 이건됐다고 한다. 아래층에는 중앙에 통로를 내고 좌우 협칸에 사천왕상을 봉안하여 천왕문의 성격을 가지게 했는데, 위층에는 범종을 두어 범종루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선운사의 사천왕상은 “너희들이 죄를 짓고 악하게 살면 이렇게 우리에게 짓밟힌 채 지옥에서 고통받게 될 것”이다는 메시지를, 그 목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다. 죄짓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갈파하고 있는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다른 사찰등의 천왕문과는 달리, 선운사 사천왕의 발 밑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서방 광목천왕상의 무릎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탐관오리가 보이며, 남쪽 증장천왕 밑 음녀상은 형벌을 받는 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고통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선과 욕심을 버리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 여인상은 오히려 음탕한 눈빛을 보내면서 추파를 보내고 있다. 참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사천왕상에게 벌을 받고 있으면서 전혀 뉘우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핏발 선 눈으로 오히려 노려본다. “나를 바라보는 너 또한 나의 치마폭에 싸이게 될 걸”하고 윙크하면서 음탕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음녀상은 해학적인 미학과 우리 조상들의 익살이 그대로 읽혀진다.
미망 속에 헤매는 거짓 나로부터 벗어나 본래부터 완전한 참나를 깨달아 진리와 하나가 됨으로써, 인격을 완성하는 등 인간들의 자아를 되돌아보고, 그 진면목을 찾게 만드는 혹독한 형벌은 아닐까.
음녀상의 인상적인 눈빛을 보아라. 대부분의 사천왕상 밑에는 악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엔 방탕한 모습의 음녀가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선운사의 음녀상과 탐관오리상은 그래서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 명물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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