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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9>도토릿골교와진북교

 

유연대에서 어은골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은 가운데 산등성이 하나를 두고 두 갈래로 에워싸는 산세를 형성한다. 그 산 아래 전주천변 쪽으로 자리잡은 동네가 도토릿골과 어은골이다. 도토릿골은 산의 지형이 마치 배의 돛대와 닮았다고 하여 ‘돛대골’로도 불렸다.

다가교를 지나면 도토릿골교(1999년), 구 진북교(1975년), 쌍다리(어은1교, 1962년) 어은교(어은2교, 1990년), 진북교(1996년), 서신교(1996년), 백제교(1991년), 사평교(2007년), 가련교(1997년), 추천교(2000년)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다가교를 지나면 첫번째 만나는 다리가 도토릿골교다. 도토릿골과 마주한 부성쪽으로 석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석보에서 지금의 태평동쪽, 이전 시기에는 장재뜰에 생활용수를 대는 물길이 하나 있었다. 그 물길을 따라 비석거리와 물방앗골이 형성된다.

일제시대 비석거리 뒤쪽에 유곽골목이 있었는데 그 유곽 골목에서 전주천을 넘어 맞은편에 도토릿골이란 마을이 있었다. 도토릿골은 돛대골, 주동, 진송마을 등으로 불렸으나 가호 수는 대여섯에 불과한 조그마한 동네였다. 도토릿골과 어은교 사이에 길게 뻗어내린 산자락 부근에 일본인 작부들이 기거하는 유곽이 들어섰다는 김남규선생의 기록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 말로는 도토릿골 쪽 유곽에 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했으며 그래서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당시 방귀 꽤나 뀌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유곽이 생긴 것은 왜인들이 전주부성의 서문과 부근의 성벽들을 허물고 형성한 근대적 도시 공간의 끝부분에 자신들을 위한 욕망의 배설 창구를 만든 까닭이다.

학날 끝 즉 왜인 유곽이 있던 그 자리에 예전에 ‘잉어바우’가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금을 채취하기 위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또 그 때 나온 돌을 가지고 전주천 제방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잉어바우’ 자리에 도토릿골교가 세워졌다.

이 다리는 1936년 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38년 태평동의 일제시대 명칭 상생정의 이름을 따서 상생교라 하였다가 해방 후 진북교라 불렀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도토릿골 다리라고 불렀으며, 지금 그 자리에 도토릿골교가 다시 세워졌다.

전주시청에서 전주초등학교를 지나 도토리골로 진입하는 이 다리는 동네지명인 도토리골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들고 있는 모습의 다리 난간의 문양이 매우 정겹다.

구 진북교는 1936년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1938년에 다시 가설하여 당시 태평동의 구 명칭인 상생정의 이름을 따서 상생교라 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상생교를 진북교라 부르게 되었다. 최근에 서살미자락에 진북터널이 뚫리면서 전주천에 놓인 다리가 진북교가 되고, 원래의 진북교는 구 진북교가 되었다.

1950년대 말, 살인교라고 이름붙여졌다. 이는 난간이 썩어 없어진 채 방치되어 숫한 인명피해를 보아왔다고 1960년 말 보수공사가 진행되어 다시 주민들의 통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토리골 진입로로 쓰였던 이 다리는 어은골 쌍다리와 함께 전주천의 오래된 명물다리로 남아있다. 편도가 불가능한 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다리다.

최근들어 구도심과 신도심 지역을 이어주는 진북교에는 해바라기꽃 무늬로 새롭게 단장한 교량 측면에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됐다.

진북교 바로 인근엔 호암산(화산공원) 중턱에 자리잡은 아담한 절이 하나 있으니 진북사다. 신라 말 도선(827∼898)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다.

창건 당시에는 (전주 4고사 중 북쪽에 위치 한다고 해서) 북고사(北固寺)라고 했다고 하며 전라관찰사 이서구가 전주부성의 북쪽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북사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전주시 진북동 도토리골 우측산 절벽에 위치하며 신라 고승 도선국사가 북고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그후 관찰사 이서구가 전주부성의 북쪽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북사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 전주에는 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진북사) 등 4고사가 있었다. 동고사는 전하는 말에 의하면 후백제 견훤왕조시대 이전부터 창설된 절이라고 한다. 그 처음 위치로는 승암산 배부분, 지금의 동고사 자리로 여겨진다. 도량 천년의 연륜을 산다는 귀목나무 머리를 짚어 유지(遺址)라고도 말한다.

서고사는 서산(황산,황방산)의 중턱에 있는 사찰로 유명한 ‘효자천(孝子泉)’이 있으며, 남고사는 남고산성 내에 위치한 절로 만경대,천경대,억경대 등에 둘러쌓여 있다.

북고사(진북사)는 완산칠봉 중 용두봉의 자락이 북으로 흘러내리는 유연대 북서단 속칭 부엉바위절(호랑이 아가리터)라 부르는 곳(진북터널 옆)에 있다. 관찰사 이서구 선생의 고사가 담긴 절로 경내엔 오백년 내내 숲정이 바람 속에서 다소곳이 지키는 미륵불의 품에 선 고요가 흐른다.

진북사는 창건 이후 기록들은 남아있지 않는다. 현재의 진북사는 1922년 김성근이 중건,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 미륵전, 산신각, 요사(적묵당) 등이 있고, 유물로는 창건 당시의 것으로 전해지는 석조미륵불상이 남아 있다.

진북사 미륵불상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30 년대에 미륵불이 절 인근에 사는 한 노파의 꿈에 미륵이 나타나 ‘나는 전주천변에 있는데, 현재 매우 괴로우니 편안하게 옮겨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노파가 나룻배를 타고 이 절 아래의 전주천변 늪으로 가서 이 불상을 찾아냈다.

몇년 후 이 절의 신도들이 미륵전을 짓고 미륵불을 남향으로 세웠는데, 이번에는 미륵불이 일꾼들의 꿈에 나타나 동향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그 일꾼들이 무거워서 옮기기 어렵다고 하자, 손만 대면 움질일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주지와 일꾼이 미륵불을 모신 불단에 손을 대자 저절로 동향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전주천에는 대형 철근콘크리트 다리가 속속 들어섰다. 80년대 전주시 서신.중화산동지역이 개발되면서 시가지와 연결하는 다리가 신축되기 시작해 예수병원을 연결시키는 다가교와 서신동지역 주민들의 통로인 서신교가 들어섰다.

이어 어은터널과 진북터널이 뚫리면서 어은교와 진북교가 건축됐고 전주도심을 통과하는 교통량 분산을 위해 서부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백제교가 신축됐다.

전주시 진북동 어은터널 밑에 거주하는 어은골 및 도토리골 주민들의 유일한 시내 진입로였던 ‘쌍다리’와 ‘(구)진북교’는 ‘도토리골교’와 ‘진북교’가 새로 들어서면서 자전거도로 정도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으로 변했다. 전주의 관문인 백제교는 후백제 유적지에서 출토된 전통 기와 와당의 연꽃문양을 디자인한 교량 난간에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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