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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31) 김동수가옥

 

 지붕같은 하늘채에는 흰구름이 윤무하고 침실 같은 대지와 출렁이는 바다에는 푸른 산과 꼬막 등 같은 사람의 집, 아름다운 물길이 있다. 집 울안을 둘러 쌓은 싸리, 대나무, 과일나무, 탱자나무의 생울과 짚, 보릿대, 밀대, 수수깡, 갈대 바자울은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다. 주변의 돌과 땅 속에서 파낸 흙으로 토석, 석회, 돌담, 전축담에 오지, 도자, 기와, 돌로, 치레한 꽃담과 화장담(화문장) 굴뚝은 여유의 상징이다. 꽃담은 주인의 지혜와 마을 목수와 장안 목수의 기원과 상징이 피어나는 글자꼴, 문자난장과 꽃 그림, 색채 모자이크로 장식된 조선시대의 구수한 설치미술이다.
 조상들의 담은 집을 안 밖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공간이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열린 공간이다. 담의 높이는 안방 마루에 앉아 밖을 볼 때 눈 높이보다 낮다. 아늑함을 주지만 외부인에게 담의 존재는 열린 공간이면서 내외, 성역, 신역 공간의 의미를 느끼는 무한 경계의 환경 예술이다. 담 속에는 삶의 쉼표와 함께 정한과 열정 그리고 무욕 무문의 기도가 숨쉰다.
 정읍김동수씨가옥(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 중요민속문화재 제26호)은 김동수의 6대 할아버지인 김명관이 조선 정조 8년(1784)에 세운 집으로 (전통)꽃담이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다.
 뒷쪽으로 창하산이 있고 앞쪽에는 동진강 상류가 흐르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루고 있다.
 소박한 구조와 건축가의 독창성, 조선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대체로 원형대로 잘 유지하고 있어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좋은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섬약(纖弱)한 부재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지은 중류이상의 주택건물에 보이는 일반적 특징이다.
 건물들은 행랑채, 사랑채, 안행랑채, 안채,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과 바깥행랑채가 있고 바깥행랑의 동남쪽에 있는 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문간채가 있다.
 사랑채 서쪽으로 'ㄷ'자형의 안행랑채를 배치하였는데 그 앞쪽으로 'ㄷ'자 평면을 가진 안채가 있다. 안채는 좌우 대칭을 이루게 지어 좌우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하고 있는 특이한 평면을 갖추고 있다. 안채의 서남쪽에 있는 안사랑채는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일꾼들이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누대를 살아오면서 재산을 누리고 살아온 이름 있는 터로, 점을 쳐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목이 되는 풍수설의 터이기도 하다. 김동수가옥은 김동수씨의 6대조 김명관선생이 17세 되던 해에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풍수상 길지라는 믿음이 강해서 일까, 이 집의 터는 ‘지네 형국’의 명당이다. 뒷산인 창하산은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산이라 불리운다. 집 앞에는 동서로 긴 장방형의 연못이 있는데, 지네의 먹이인 지렁이를 상징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전하고 있다. 오공리(五公里)의 지명도 원래 지네를 일컫는 오공(蜈蚣)이었으나, 일제 때 현재와 같은 한자 표기로 바뀌었다. 김씨 집안은 이 집을 짓고 한 해 추수로 1천2백석을 하는 거부가 됐다고. 김명관선생은 집터가 명당 자리이고, 12대까지 그 기운이 미칠 것이란 풍수 해석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이곳을 절대 떠나지 말것을 당부하고, 아무리 화를 당해 무너지더라도 정확한 위치에 다시 지을 수 있게 끔 안채의 땅 속에 표적을 만들어 두었단다. 그러나 그 후로 7대를 넘지 못하고 빈집이 되고 말았다. 우석대학교 김두규교수는 호남에는 대표적인 지네 명당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김동수가옥이고, 다른 하나는 임실군의 이웅재고가(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2호)라고 말하기도.
 민가와 안사랑채를 연결하는 곳에서 기와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꽃담장을 보았다. 한두 번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모두 5송이가 풀꽃들에 파묻혀 알록달록 꽃을 피우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옛 양반들이 그랬듯, 뒷짐을 지고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 어울릴 듯한 꽃담을 바라보고 있다. 갖가지 와편을 꽂아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 까닭 느긋함과 여유가 그대로 읽혀진다.
 예전에는 해가 아스라이 넘어가고 꽃담장 너머로 땔감 태우는 냄새와 가마솥에서 숭늉 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져나가며 식구들끼리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까닭에 이 꽃담이 온전할지의 여부는 기약할 수 없지만 봄날의 경치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어 그저 황홀하다.
  또 안행랑채의 꽃담장도 아주 멋스러운 모습으로 와닿는다.  크고 작은 반원을 사이사이에 배열하여 끊어졌다 이어지는 직선을 곁들인 채 세월을 붙들고 있고, 바깥 행랑채는 초가 지붕을 두르고 암키와만으로 만든 꽃담이 보인다.
 합각은 사랑채를 포함 모두 3곳에, 굴뚝은 사랑채 앞을 포함 모두 5곳에 있는 등 김동수가옥은 11곳에 제각각의 꽃담을 간직‘꽃밭 천국’으로 인도한다. 시나브로 사랑채 앞 금낭화가 시시각각 뿌듯한 미소를 마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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