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곡선의 지붕들로 가득한 한옥 마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이 눈에 띈다. 이는 다름 아닌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의 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1914년 지었다. 성당의 기초는 전주 시내 성문과 성벽이 헐리면서 나온 돌과 흙을 사용했으며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했던 포와넬이 맡았다.
구한 말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던 때, 전주는 호남 지역의 천주교도들의 중심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탄압으로 피를 흘렸던 역사의 중심에서 전동성당은 한국 최초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을 기리기 위해 이들이 피를 흘린 순교터에 세워졌다.
영화 '약속'에서 조직보스인 박신양이 경찰서로 자수하러 가기 전 의사인 전도연과의 결혼식을 올리던 장소로 등장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특히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전동성당을 방문했을 때 빼먹으면 안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성모동굴 뒤의 사제관(전북 문화재자료 제178호)이 바로 그것이다.
1926년에 준공한 이 건물은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창 주변은 꽃담으로 도배를 했구나.
성당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당과 같이 북향을 하고 있는 사제관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충식 건물로, 근대 서양풍 건축이다.
전체적으로 완전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으로 보인다. 1층 부분은 2,3층과 달리, 깬돌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창 주변은 벽돌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상부는 모든 창과 마찬가지로 결원 아치를 틀었다.
2,3층 창대에는 화강석을 설치했음은 물론 창틀 외곽은 벽돌로 리아스식 쌓기를 하여 치장했다.
입면에 풍부한 변화와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은 없다’는 말은 십자가 없는 부활을 기약할 수 없으며, 고난의 골고다(십자가) 길을 걸어가야 함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가톨릭에선 순교자 또는 증거자로 선구자적인 삶을 산 사제에게 성인 혹은 복자라는 명예 호칭을 주고 있다. 복자로 추대하는 것을 ‘시복(諡福)’,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을 ‘시성(諡聖)’이라고 한다. 신앙을 증거하며 장렬하게 순교한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본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꽃담의 의미와 함께 그 속에 담긴 깊이를 더하게 만든다.
사제관 난간에 핀 십자형 꽃송이는 무늬쌓기로 정교하게 꾸민데다가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한 구성의 포치가 조형성을 더하고 있다. 네모반듯 단순하면서도 과감하고, 과감하면서도 경쾌한 디자인으로 베푼 솜씨가 고수의 작품에 틀림없다는 확신으로 이끈다.
사제관은 본당 건립 후 2대 주임 신부였던 라크루시니부가 장차 전주교구가 설정될 경우를 대비하여 건축을 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37년 전주교구청사 및 교구장 숙소로, 1960년 이후부터는 주임 신부와 보좌 신부의 생활 공간으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사제관 뒷면엔 붉은 벽돌 2장씩을 상하 좌우로 배치, 모두 8장이 십자가 모양의 꽃을 터트렸다. 측면의 난간엔 7장의 붉은 벽돌이 2장, 2장, 2장, 1장씩 위로부터 아래로 자리하며 한 조(?)를 이룬 가운데 십자가를 상징하면서 끝이 없는 세계로 이끈다.
십자가는 십자가를 낳고, 다시 그 십자가는 또 다른 십자가의 이정표가 되는 만큼 ‘무시무종’ 무늬처럼 느껴진다. 붉은색 전돌로 만든 꽃담은 아마도 예수의 고귀한 희생과 사제의 근엄한 권위를 상징하는 푯대 같다. 아니, 가이없는 사랑과 눈물 바람으로 알짜만 을 짜낸 영혼의 즙이리라.
붉은꽃 인동초는 이름 그대로 엷은 잎 몇 개로 모진 추위에도 말라죽지 않고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의 원동력을 상징하는 식물이며, 아름드리 동백나무는 봄이면 무게를 이기지 못한 꽃송이를 떨어 뜨려놓아 주변을 마치 붉은 카펫처럼 수놓고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지 않은가.
확신하건대, 답답한 사막의 지표면을 뚫고 새 순을 드러내는 선인장보다 강인하게 생명의 소중함과 부활의 기쁨을 느끼는 것은 묵묵히 제 십자가를 이고 지고 가는 착한 사제들 덕분이다. 그래서 사제관의 꽃담을 볼 때마다 나의 교만한 눈빛, 일그러진 표정 하나 때문에 사랑을 잃고 상심에 젖을 법한 사람들의 눈망울을 생각해본다.
활짝 핀 사제의 미소는 정말이지 세상을 아름다이 치장하는 립스틱처럼 정열의 꽃, 참으로 붉다.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가난해야만 하는 청빈,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순명, 그리고 독신으로 지내야만 하는 정결에 이르기까지 어깨를 짖누르는 사제의 숙명. 그러나 육신은 언제나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고 있지만 구십구 마리 어린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성심껏 돌보아 찾는 기쁨으로 삶의 충만 바로 그 자체이리라.
사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포용하는 가슴은 더욱 넓어지고, 두 손과 발은 어둠에 갇힌 사람들의 지팡이가 되고, 두 눈은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천리안이요, 망원 렌즈요, 즐거운 상상의 텃밭이요, 외로운 등대의 깜빡거리는 불빛되어 망망대해도 두렵지 않다.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으로 눈을 돌려 보면 서로 비교해서 보는 단재미에 빠져든다. ‘꽃을 쫓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의 방화수류정은 지붕이 십자가형이고, 팔각형 정자 형태를 변형시켜 서쪽에 벽을 설치했으며, 86개의 십자가(십자형 꽃담)를 새겨 넣었다.
동쪽이 아닌, 서쪽에 십자가를 새겨 넣은 것은 당시 천주학인 서학을 의미하며, 십자가의 광명은 서쪽에서 온다는 의지의 산물은 아닐까. 더욱 놀라운 것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벽의 십자가가 빛이 나게 끔 형광 물질을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십자가로 하여금 어둠을 쫓아내게 하기 위해 이를 넣어 설계했다는 얘기다.
정자 안으로 올라가 천정을 바라보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석가래 또한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다. 방화수류정은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정자의 벽돌이 십자가 모양을 갖추고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다는 논거로 이어질 수 있다. 십자형 꽃담은 수원 화성 축조에 영향을 준 정약용이 자신의 정체성을 암암리에 드러낸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사제관의 십자형 꽃담은 방화수류정보다 모든 면에서 몇 수 위가 되고 있다.
방화수류정의 십자형 꽃담은 담에 바짝 달라 붙어있으나 전동성당 사제관의 것은 돌출되어 밖으로 튀어 나와 사뭇 다른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사제관은 방화수류정보다 훨씬 더 많은 십자형 꽃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담의 존재 여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나그네의 시야에 십자형 꽃담이 잡혔던 것은 무슨 연유일까.
따스한 햇살이 마당에 가득한 오후. 제법 넓은 앞마당과 잘 자리잡은 사제관이 참으로 예쁘다. 바로 옆 성모상도 여느 성당과는 차별을 둔 빼어난 조경을 뽐내고 있다. 왠지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동그란 창들은 하나하나 빛그림자를 수놓는다.
시시각각 인근의 치명자산으로 불어오는 미풍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시원스레 닦아주고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계기로 전동성당의 담을 헐어내고, 대신 새로운 나무로 조경을 해 어느 곳에서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오늘. 보이는 담만 헐어내는데 만족해 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스스로 쌓아놓은 마음의 벽과 철옹성같은 고정관념까지 속시원하게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전동성당 2층의 나무 계단으로 자리를 옮겨 건물 내부의 또다른 꽃담을 다시 구경한 후, 조심스레 내려와 손에 성수를 찍어 바른 후, 십자성호를 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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