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깊어 꿈도 생각도 없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로 정처없이 향하고 있는가’
진리를 향해 찾아가는 길은 때론 멀기도 하고 때론 험란하기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참 평안과 큰 행복이 깃드는 법이다.
인도의 독립과 민족의 화합을 위해 매일 아침 기도를 올렸던 간디. 간디가 있기 위해서는 고통받는 20억의 유색 인종이 필요했을 터.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함을 강조한 간디는 ‘진리는 나의 등대요, 나의 작은 방패다. 그 길이 비록 험하고 좁고 면도날같이 날카로울지라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가깝고 가장 쉬운 길이다’는 말로 인도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한번 실험적으로 이길 저길 살아보고 다시 돌아와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삶을 선택하여 다시 살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면. 그래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진리를 찾아 앞으로만 달려오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참 진리를 찾아 예수는 골고다로, 석가는 보리수 나무 아래로, 슈바이처는 아프리카로, 달마는 동쪽 중국 대륙으로 갔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며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산을 넘어 하늘을 날아 머나 먼 곳으로 고행길을 떠난다.
혹자는 이미 표현되고 말하는 자비와 사랑은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랑과 자비는 가르칠 것도 없고 실천할 것도 없고 꿈꿀 것도 없다는 게 골자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 그대가 생존하고 있는 그 자체가, 이미 사랑과 자비의 결정체이므로.
진리는 멀리 떨어져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가장 가까운 곳,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보이지 않게 실천하는 삶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까.
부산은 산이다. 그 산은 바로 금정산. 그래서 금정산은 부산의 집이요, 얼이며 기가 된다.
그대들은 범어사(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진입로와 돌담길의 운치를 알고 있는가.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 나라의 고기(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을 지은 것이다.
잠시 나마 일상의 무게 잠시 잊고 범어사 품 속에 안기면 갑자기 투명한 신록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푸르르 떨린다.
일주문 가운데 어칸에는 ‘조계문’이라는 편액과 좌우 협칸에는 ‘금정산 범어사’와 ‘선찰대본산’이란 현판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범어사는 서로 모양이 제각각 다른 맞담과 연기를 배출하는 특이한 느낌의 소각장을 통해 지고의 가치, 최고의 진리를 찾아 지극한 일심을 자극하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오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 천왕문, 불이문, 보제루에 이르고 곧이어 대웅전이다. 불이문을 지나 보제루로 가는 길, 대숲이 왜 저렇게 푸른가. 송죽같은 꼿꼿한 신심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대나무는 근본이 견고하니, 그 견고함으로써 덕을 심는다. 대나무는 성품이 곧으니, 그 곧음으로써 몸을 세운다. 대나무는 마음이 비어 있으니, 그 빔(空)으로써 도를 본받는다. 대나무는 정절이 있으니, 그 정절로써 뜻을 세운다.이 때문에 군자는 대나무를 심는다. 대나무는 그 마음이 비어 있으니 내 벗으로 삼고, 물은 성품을 맑게 할 수 있으니 내 스승으로 삼는다. '양죽기’'
대나무의 견고한 마디는 비바람에도 굴복치 않는 강인한 의지를 가르쳐 주고 있으며, 대나무의 속이 빈 것과 위아래의 마디는 선가의 무심과 절도 있는 생활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선가에서는 '대나무 위아래에 마디가 있다(竹有上下節)'는 구절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금정산 너덜겅(암괴류)으로 나가는 돌담길을 만난다.
3단의 석재 위에 다시 돌과 흙, 기와로 쌓인 채 수십 년 묵은 담쟁이가 돌담을 덮고 있다. 오른 쪽 건물들은 담 너머로 숨어버리고, 왼쪽 요사채들은 담 밑에 잦아들어 담이 갖고 있는 독립성과 은밀함이 백미다.
암키와들이 품어내는 조화는 소박함과 화려함으로 대별된다. 이전의 맞담과 최근에 만든 맞담을 각각 구분하는 확실한 징표이다.
돌담이 주는 수평적 이미지와 나무들이 주는 수직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만일 이곳에 나무 대신 꽃들을 심었더라면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절집 조경이란 애시당초 바로 이런 느낌이다.
막돌 한 켜를 놓은 다음, 흙 한 켜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막돌이나 기와를 놓으면서 차례로 쌓은 맞담이 꽤 길게 이어진다. 맞담 맨 위에는 빗물에 담벽이 씻겨 허물어지지 않도록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
모처럼 황토를 보는 즐거움에 흐뭇하다. 황토의 특성 중에는 열을 차단하여 주는 성질이 있어 실내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유효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잃어버린 황토를 되찾고 그 황토가 있는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갈등과 고통의 과정을 겪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흙과 멀어지면서 비인간적인 도시화와 규격화 등의 현상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흙과 함께 하는 생활', '흙과의 친화 및 교류', '흙으로의 회귀'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제물을 올리거나 출산을 했을 때, 금줄과 함께 황토를 뿌려 놓거나 뭉쳐 놓아 악귀나 부정한 기운의 출입을 막았다. 경복궁을 황토현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다분히 그런 뜻이 배어 었다.
바로 이처럼 흙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친화력을 가졌다는 생각은 철저해 흙을 밟고 살아야 건강하고 탈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흙은 복을 비는 대상이었음은 물론 재산이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흙을 쏟아버리면 복이 나간다고 여겨서 마당을 쓸 때면 집 안쪽으로 쓸어야 했다.
이들 맞담은 ‘뜻이 도달하면 붓은 못 미쳐도’라는 소우 강벽원(1859-1941)의 묵란도 글귀를 연상케 한다.
‘뜻이 도달하면 붓은 못미쳐도. 난을 치는데 잎사귀마다 서로 고르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해도, 도달한다면 붓은 미치지 못해도 무방하다.’
그렇다. '뜻을 얻으면 그것을 전달하던 기호는 잊어도 좋다'. '문장의 일차적인 기능은 수사학적인 기교보다 도를 전달하는 데 있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마음 공부하는 자세의 필수 요건으로 이 글을 마음에 새겨놓았으면 한다.
맞담은 더 큰 사고를 선물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함께 만들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므로. 원수까지 포용하는 참된 사랑, 박애정신이 나와 우리 안에 있을 때 사람도 세상도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금당 마당에서 설법전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소각장이 있다. 기와로 삼층석탑처럼 아름답게 지었음을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속을 끓이며 노심초사했던 아주 사소한 감정을 풀어줄 수 있도록 하는 대상이다.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한없이 부족한 자신의 기준점이 얄밉다. 딱딱하게 굴었던 밴댕이 속알머리가 한없이 부끄럽다. 어느 새, 소각장의 검은 연기가 구름되어 하늘을 뒤덮는다.
'날마다 좋은 날'을 바래는 꽃담은 아닐까.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말은 운문선사의 어록인 '운문광록(雲門廣錄)'에 나오는 말로 너무나도 유명한 선어이다.
운문선사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름 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오늘부터 보름 이후의 일을 표현할 수 있는 시구를 지어 가져오너라"
수행승들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짰으나 무어라고 한마디로 선의 묘미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서로 다른 하루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운문선사가 스스로 지은 짧은 시구를 내보였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이며, ‘해마다 좋은 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오리 오리쇼셔 일에 오리쇼셔 졈그디도 새디도 마시고 새라난 식에 오리쇼셔(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날이) 새거든 주야장상 오늘이소서(양금신보)'
고려말부터 조선중엽까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불렀던 축가 '오늘이 오늘이소서'는 소박한 평민들이 생활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며, 남원에서 채보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노래인만큼 '일일시호일'과 완벽하게 의미가 맞아떨어진다.
‘범어사(梵魚寺)’에서는 ‘범어사(凡於事, 세상의 모든 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경내로 들어올 수 있다. ‘한인물입(閑人勿入)’ 즉, ‘볼 일 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
‘뗑그렁~뗑그렁~’ 처마 끝에서 여울져오는 풍경 소리와 청량한 바람이 맑은 소식만을 가져다줄 것 같다. 이윽고 푸릇푸릇 봄향기 그윽한 동네 어귀에 어머님과 삽살개가 황소 웃음으로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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