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4대 사찰에 속하는 개심사는 굽은 소나무가 인상적인 솔숲과 왕벚꽃으로 현대인의 메마른 정서를 다독인다. 쉼 없이 내달려온 일상이 문득 덧없이 느껴질 때, 개심사 솔숲에서 심호흡 해보라. 한 번, 두 번, 세 번…. 깊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송홧가루 묻은 숲 공기가 지친 몸과 마음을 슬며시 어루만져준다. 성난 짐승처럼 날뛰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몸은 기운을 회복한다.
속도 강박증에 걸린 채 먹고사는 일로 허우적거릴 때, 헛된 망상과 강퍅해진 마음으로 심란할 때,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눈앞을 가릴 때, 솔바람 소리가 그 무엇보다 든든한 위안이 된다. 봄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솔바람 소리로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자 개심사(開心寺)로 향한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솔바람 소리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송운(松韻)’ ‘송성(松聲)’이라 칭하며 솔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어머니들이 솔밭에 정좌하여 솔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면서 시기와 증오와 원한을 가라앉혔던 이유도 솔바람 소리가 상처 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때 묻은 마음을 씻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절집인들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지 않으랴만, 솔바람 소리가 품고 있는 의미와 관련해 개심사를 떠올린 이유는 솔숲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표석에 대한 옛 기억 덕분이었다. 바로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절집’이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개심사(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진덕여왕 5년(651)과 의자왕 14년(654)은 다른 해에 해당한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654)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1941년 대웅전 해체 수리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건물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각기 세심동과 개심사가 새겨진 두 개의 조그마한 표석은 솔숲을 오르는 돌계단 초입 양쪽에 붙박이 모양으로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세태에도 변함없이 정겨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그 광경에 가슴이 저려왔다. 절집으로 향하는 숲길은 구도와 사색과 명상을 위한 길이 아니던가. 그 숲길이 편리함과 효율을 좇아 점차 자동차 길로 변하는 세태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는 감회가 복잡했다. 산천의 깊이와 크기에 따라 작은 인공물조차 앉힐 자리를 헤아려 배치했던 옛 스님들의 안목이 그립기만 하다. 공간 활용에 대한 옛 사람의 지혜가 새삼 그리운 이유는 오늘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찰 주변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자연파괴 행위 때문만은 아니다. 무작정 실용만을 좇는 우리네 삶의 가벼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돌계단은 울창한 솔숲 사이로 나 있어 한낮에도 그늘이 짙다. 장방형의 연못 가운데 외나무다리가 놓였는데, 현세와 피안을 잇는 다리인 셈이다. 잔잔함 느껴지는 푸근한 외나무다리서 ‘마음’을 시험해보며 다시 한 번 ‘무욕의 나’를 닦는다.
계단 길을 두세 굽이만 돌면 바로 다다를 수 있는 짧은 거리를 긴 여정인 양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가슴을 펴고, 귀를 활짝 열고 천천히 걷는다. 마침내 고대하던 솔바람 소리가 쏴~하고 불어온다. 솔숲 위로 바람이 인다. 가지가 흔들리고, 가지 끝의 솔잎들도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장자는 바람을 ‘대지가 뿜어내는 숨결’이라고 했던가.
솔잎 사이로 지나면서 만드는 바람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영혼을 흔 드는 소리를 담는다. 막혀 있던 귀가 뚫린다.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던 망상이 심호흡과 함께 빠져나간다.
부탁하노니, 연어처럼 그리움에 사무쳐 개심사에 찾아왔다면 꼬옥 두 가지의 사물을 보시오. 투박한 와편 굴뚝과 푸른빛이 감도는 청벚의 꽃지짐을.
불가에서 '개산(開山)'은 바로 이같은 ‘신선’이 '산의 문'을 여는 일, 즉 절의 창건을 의미한다. 개산대제란 절의 창건일을 기념해 여는 큰 법회를 말하거나 사찰을 창건한 스님이 입적한 날을 기리는 입적 기일 법회를 뜻하기도 한다.
개산의 의미를 더하는 와편 굴뚝, 기와 조각과 흙을 함께 쌓아올린 까닭에 투박하면서도 더욱 멋스럽다.
화초들이 뿌리내린 땅 위에 서서 뭉게구름을 그리워하듯 한가롭게 지나가는 바람이 되고 싶다고 귀띔하고, 하늘에서 아지랑이 그리워하듯 '무량수'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싶다고 속삭인다.
가람은 번잡하거나 조잡하지 않고 본 건축과 주변 경관과 어울릴 수 있도록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 만들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지붕의 구도가 수직과 수평적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만큼 기품마저 느껴진다.
굴뚝을 통해 '개심(開心, 마음을 열다)'은 곧 '개심(改心, 마음을 고쳐 먹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어느 새, 순진무구한 상태로 부처님의 나라에 도착한다. 살랑살랑 봄바람결에 실려 온 계절의 독특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자연의 진수를 남보다 더 깊고 진하게 체득하는 자연주의자일 것이다.
진지하게 묻노니, '개심(開心)'과 '개심(改心)'의 차이는, 그리고 같은 점은 무엇 인가. 또 하나, ‘개심(開心)'이 먼저 인가, ‘개심(改心)’이 먼저 인가.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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