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 윤두서 등 조선 후기의 이름난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린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는 폭포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이인문의 ‘송하관폭도’는 선면(扇面) 그림이지만 매우 짜임새가 있고 밀도가 높은 작품이다. 작은 크기의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 스케일과 충만감이 있다. 중앙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용소를 향해 구부러진 노송 한 그루와, 그 곁에 단정히 앉아 시상(詩想)에 잠긴 인물 구도는 그의 산수화에 자주 보이는 포치법(布置法)의 특징이다.
주제는 노송과 동떨어져 바위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선비의 유연한 모습으로 특유의 맑고 격조 높은 정신미를 느끼게 한다.
윤두서의 ‘송하관폭도’는 ‘해남윤씨고화첩(보물 제481호)’에 포함되어 있는 윤두서 작품들 중의 하나로, 비단 바탕에 수묵으로 그린 인물산수화 계통의 그림이다.
‘해남윤씨고화첩’은 현재 해남 윤씨 종가인 녹우당(綠雨堂)에 소장, 이 화첩에는〈송하관폭도〉외에도〈무송관수도〉· 〈관폭도〉· 〈자화상〉· 〈채애도〉· 〈선차도〉 등 60여점의 소품들이 실려 있다.
세로 18.5cm, 가로 19cm의 크지 않은 이 그림은 이미 알려져 있는 ‘관폭도’라는 이름과는 달리 폭포가 아닌 평범한 계곡의 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적절한 이름을 짓는다면 송하관란도(松下觀瀾圖)라 해야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관폭도’라 하건 ‘관란도’라 하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물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를 주제로 한 그림이라는 점이다.
요즘처럼 바람 한 점 없는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칠 때, 옛 사람들은 바람 잘 통하는 뜰이나 마당에 두어 자 쯤 높이의 평상을 내어다 댓자리나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지체높은 선비들은 사랑방에서 체온이 뜨거운 마나님 대신 대줄기를 엮어 긴 원통형으로 짜 만든 `죽부인'을 껴앉고 잤는데 허전함을 덜 뿐 아니라 대나무의 서늘한 기운과 통풍이 잘돼 쉽게 잠에 빠지곤 했다.
긍재 김득신(1754~1822)의 '강변회음도(종이에 담채, 22.4×27.0㎝,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에는 천렵 광경이 실감나게 담겨 있다.
강가에 배를 대어 놓은 채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정경을 그린 이 작품은 화면을 이등분한 대각선 오른편에 주공간을 설정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배 위에 걸쳐 놓은 낚싯대가 대각선 방향으로 교차하면서 허공을 향해 휘어나가 마침내는 왼쪽 모서리에 있는 주문방인으로까지 연결되는 시선의 확산을 꾀하였다.
타원형으로 뻗어나간 대나무의 끝부분에는 김득신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유의 새들이 간신히 의지하고 있어서 여유있는 식사 장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변화의 묘미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새들의 다양한 자태나 화면 중앙에서 왼편으로 돌출된 배의 평형감과 어울려 완화되고 있다.
이처럼 주변 경관이나 분위기 설정을 통해 그림의 내용을 하면 전체로 확시시키면서 새롭게 엮어내고 있는 기량은 그가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화격을 이룩하였음을 말해준다.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의 이 작품은 대한 설명이다.
그림을 보면, 바람이 시원한 강가에 물고기 한 마리를 중심으로 6명의 어른이 둘러 앉아 있다. 그리고 잔심부름을 하는 아이와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이가 등장한다. 어른들은 물고기에 젓가락을 대는 사람, 살점을 입에 넣거나 탁주를 마시는 사람, 양념을 준비하는 사람, 한 쪽에서 다리를 모은 채 홀로 앉은 사람 등 표정이 제각각이다.
이들 뒤로 정박해 있는 배에는 다섯 마리의 새가 대나무에 앉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새들이 전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폼이다. 왜 그럴까? 검은색과 부리의 모양으로 봐서 새들은 어부가 기르는 가마우지 같다. '물매'(물에 사는 매)라고도 불리는 가마우지는 예로부터 고기잡이 도구이기도 하다. 가마우지 낚시 방법은 간단하다. 가마우지의 목을 끈으로 묶은 뒤 강에 풀어둔다. 그러면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되 삼키지는 못한다. 이때 부리에서 물고기를 꺼내면 된다. 지금 어른들이 먹고 있는 물고기도 가마우지 낚시로 잡은 것 같다.
뿐만 아니다. 그림에는 흥미로운 등장인물이 있다. 오른쪽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이다. 어른들의 시선이 물고기를 향해 있는데, 이 아이의 시선은 방향이 다르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은 오른쪽의 어른이다. 누구일까? 그들은 어떤 관계일까? 아버지와 아들일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아이는 이 어른 때문에 나무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이를 보고 있는 시선이 있다. 역시 뒷모습으로 앉아 있는 맨 앞쪽의 아이다. 숨어 있는 아이와 동떨어진 어른, 그리고 뒷모습의 아이, 이들의 묘한 관계가 그림에 재미를 더한다. 게다가 그 재미는 두 그룹의 역학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그림의 등장인물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물고기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다섯 명의 어른이고, 다른 하나는 숨은 아이를 중심으로 구성된 어른과 아이다.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쪽은 흥겹고, 다른 한쪽은 심각하다. 이 이질적인 표정의 공존이 은근한 해학성을 부추긴다.
긍재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힌다.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한낮의 소동을 그린 '파적도'나 은밀히 투전을 즐기는 사람들의 '밀희투전'처럼 그림의 주특기는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한 해학적인 풍속화였다. '강변회음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웃음이 번지게 한다. 나무 뒤에서 아이가 펼치는 극적인 상황이 재미있다. 아버지한테 꾸중을 들은 것일까? 아니면 천렵에서 소외된 아버지를 측은하게 엿보는 것일까? 선비들의 내면을 표현한 '탁족도'나 '독서도'와 달리, 이 그림은 긍재가 서민의 생활상을 스냅사진을 찍듯이 기록한 것이다. 서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최우선이었던 만큼 보양의 일환으로 천렵을 즐긴 셈이다. 현대인의 피서는 선조들의 피서법 중에서 긍재의 '강변회음도'에 가깝다. 마음의 단련보다는 몸을 생각하는 보양에 무게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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