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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미륵사지 석탑, 한국문화의 보고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청동합의 주인이 당시 백제 고위관리였음을 입증하는 글자가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월 미륵사지 석탑 사리공(舍利孔)에서 금동사리호 등과 함께 발견된 청동합(靑銅盒) 6점을 열어본 결과, 이중 1번 합 뚜껑에 백제 고위 관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금제구슬 370여 점을 비롯한 금제고리, 금제소형판, 유리구슬 등 4800여 점에 이르는 백제 무왕 시대 다양한 공양품도 함께 나왔다”고 밝혔네요.

금모장식 곡옥 (현미경 사진)


 지난해 1월 석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백제 무왕 왕후가 조성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등 수수께끼가 하나둘씩 풀리고 있는 것입니다.

 
 청동합은 발견 당시 부식이 심해 개봉이 미뤄졌다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보존 처리를 실시하면서 처음 내부를 드러냈답니니. 청동합에서 이처럼 많은 유물이 나온 것은 아직까지 유례가 없으며 유물은 탑이나 절을 지을 때 올린 공양품으로 추정되고 있구요,

 

                                                                             명문이 새겨진 청동합


 청동합은 모두 6점으로 높이는 3cm에서 5cm, 직경은 6cm에서 8cm로 작은 편입니다. 이 가운데 6번합에는 초화무늬와 당초무늬가 그려져 있고 1번 합에서는 시주자 관직과 이름을 음각으로 새긴 명문도 확인되네요.

 

 무엇보다도 청동합 뚜껑에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진 ‘상부달솔목근’(上部達率目近)’이란 여섯 자의 글자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는 ‘상부’에 사는 ‘달솔’(백제 16관직 서열 중 제2품) 벼슬을 가진 ‘목근’이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미륵사를 창건할 당시 백제 고위 관리가 시주한 공양품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동합 (개봉 후)


 이보다 앞서는 미륵사지 석탑 기단부 발굴 조사에서 토제 나발(소라 모양으로 말아 올린 부처의 머리카락)과 금동장식편 등 백제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27종 290여점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토제 나발은 89점이나 나왔고, 청동뒤꽂이는 조각만 남은 다른 청동제품과 달리,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탑이나 건물의 붕괴를 방지하고 액을 예방하려고 땅속에 묻는 공양품들인 진단구(鎭壇具)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동합 (4번합 출토 모습)


 시시각각 미륵사는 백제문화의 보고가 아닌, 한국문화의 보고임이 입증되고 있는 만큼 세계문화유산으로의 진입도 아주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