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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한국의 사찰 벽화(하)

 

 

국보 제46호, 부석사 조사당 벽화


 부석사 조사당 벽화(경북 영주시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다.


 고려시대(高麗時代)의 회화(繪畵)는 보존된 유적(遺蹟)이 매우 희귀해서 그 양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든다.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 벽화6면(祖師堂壁畵六面)은 이 건물 내진(內陳) 벽면에 그렸던 건축당초의 작품으로서 확인되어 현재 이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에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안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유존(遺存)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벽화는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를 비롯해서 예산수덕사대웅전벽화(禮山修德寺大雄殿壁畵)(1308년 건립(建立)) 개성수락암동고분벽화(開城水落巖洞古墳壁畵) 장단법당방고분벽화(長湍法堂坊古墳壁畵) 개풍군공민왕릉벽화(開풍郡恭愍王陵壁畵) 등의 유례가 있으나 회화적인 격조로 보나 그 보존상태로 보나 유존된 고려시대의 벽화를 대표하는 것은 이 조사당벽화이다.


 이 조사당벽화는 천왕상(天王像) 각 1면(面)과 보살상(菩薩像) 2면(面)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그 내용을 조사당내진(祖師堂內陣) 원위치(原位置)의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보살상(菩薩像)(불명미상(佛名未詳)) (2)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 (3)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 (4)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 (5)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 (6)보살상(菩薩像)(불명미상(佛名未詳))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백색·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양쪽의 두 천부상은 우아한 귀족풍으로 양감이 풍만하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 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 알게 되었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보  제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 삼존벽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 삼존벽화(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94  )는 극락보전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아미타삼존불벽화이다.

 

 앉은 모습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는 구도를 하고 있다. 화면의 맨 위부분에는 구름을 배경으로 좌우에 각각 3인씩 6인의 나한상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작은 화불 2불씩이 그려져 있다.

 

아미타극락회도 장면을 그린 이 벽화는 앞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상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비교적 높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뒤로는 키모양의 광배가 표현되었다. 왼쪽에 서있는 관음보살은 머리칼이 어깨 위에 흘러내린 모습에 얇고 투명한 겉옷을 입고 있으며, 오른쪽의 지장보살은 오른손으로 석장을 짚고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채색은 주로 녹색과 붉은색을 사용했다.

 


 조선 성종 7년(1476)에 화원 대선사 해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온화한 색채나 신체의 표현 등 고려시대의 특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간결한 무늬나 본존불과 같은 크기의 기타 인물 표현 등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어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보물 제1314호,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94)는 극락보전 후불벽화인 아미타후불벽화(보물 제1313호)의 뒷면 그림으로,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보살이 그려진 벽화이다.

 


 하얀옷을 입고 있는 백의관음보살은 당당한 체구에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린 채 두손을 앞에 모아 서로 교차하여 오른손으로는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정병을 들고 서 있다.


 간략화된 옷주름과 더불어 팔찌와 가슴장식 역시 간소화되어 있긴 하나, 힘있고 빠른 필치로 바람에 심하게 흩날리는 듯한 옷자락과 넘실대는 듯한 파도를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관음보살의 뒤쪽으로는 해 모양의 붉은색 원이 그려져 있고, 앞쪽 위에는 먹으로 5언율시가 씌어져 있다. 그리고 앞쪽 아래 구석쪽으로는 둔덕이 마련되어 있고, 관음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벌려 손뼉을 치고 있는 듯한 자세의 비구(比丘)가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구 어깨 위에 머리를 뒤로 돌려 관음보살을 쳐다보고 있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는 것인데, 백의관음보살에 비하여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성종 7년(1476) 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앞면의 아미타후불벽화와 더불어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보물 제1315호, 무위사 극락전 내벽 사면벽화


 무위사 극락전 내벽 사면벽화(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94)는 극락보전 안쪽 벽에 그려진 벽화로 삼존불화, 아미타래영도를 포함하여 총 29점이다. 지금은 모두 해체되어 보존각에 보관ㆍ진열되어 있다.


 이 벽화는 삼존불화, 아미타래영도, 오불도 2점, 관음보살도를 비롯한 보살도 5점, 주악비천도 6점, 연화당초향로도 7점, 보상모란문도 5점, 당초문도 1점, 입불도 1점 등으로 극락보전 안쪽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삼존불화는 동쪽벽 중앙에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가로로 긴 화면 가운데에 설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본존불을 그리고 좌우로는 서있는 모습의 보살상과 6비구를 배치하였다. 배경으로는 바위산을 그려 넣었다. 본존불의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입고 있는 옷주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아미타래영도는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아미타불을 그렸는데 8대보살과 8비구를 거느린 모습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매우 자연스러우며, 인물의 익살스럽고 자유로운 얼굴 표정, 움직이는 듯한 자세 등 회화성이 돋보인다.


 이들 벽화 중 삼존불화와 아미타래영도 2점과 15세기 추정의 관음보살도, 당초문도 2점 등 4점은 특히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극락보전 동측 내벽 중앙의 삼존불화(三尊佛畵)와 서측 내벽 중앙의 아미타래영도를 비롯한 29점의 벽화로 모두 해체되어 보존각에 보관·진열 중에 있다.

 


1. 삼존불화(三尊佛畵)


동측 내벽 중앙에 그려진 그림으로 지금은 해체되어 보존각에 진열해 놓았다. 가로로 긴 화면 가운데에 설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본존불을 그리고 좌우로는 협시보살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삼존불 사이와 주위로는 합장한 채 본존을 향하고 있는 입상의 두 보살상과 6비구를 배치하였으며, 멀리 뒤로는 마치 기암의 월출산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암산을 그려 넣었다. 비교적 활달한 필치에 적황색의 색조, 당당한 체구의 인물 형태 등에서 고려적 색채가 어느 정도 엿보이긴 하지만, 사각형의 얼굴과 연꽃대좌의 형식적인 꽃잎 표현 등 조선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본존불의 낮은 육계와 정상계주, 고식(古式)의 눈ㆍ코ㆍ입 표현, 다소 위로 올라간 왼손, 회화성이 돋보이는 자연스러운 옷주름 처리 등은 이 삼존불도를 후불벽화와 거의 같은 시기의 그림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겠다.


2. 아미타래영도(阿彌陀來迎圖)

 


극락전 내부 서측벽 중앙에 그려져 있던 것으로 이 역시 지금은 보존각에 보관ㆍ진열되어 있다. 삼존불도와 같은 크기의 화면으로 8대보살과 8비구를 거느린 아미타불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매우 자연스럽고 우측을 향하고 있는 인물들의 동적인 자세와 스케치 풍의 필치, 그리고 익살스럽고 자유로운 얼굴 표정 등으로 회화성과 함께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삼존불도와 거의 동일한 색채와 필치, 인물 형태를 하여 같은 시기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3. 오불도(五佛圖)


삼존불도 위쪽 벽화로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짓고 있는 다섯 부처그림이다. 모두 연화좌 위에 길상좌(吉祥坐)한 자세로 적색 대의를 입었으며, 육계가 뾰족하고 정상계주가 빨갛게 처리 되어있다. 본래 벽화 위에 덧 그린 것으로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4. 오불도(五佛圖)


아미타래영도 위쪽 벽에 그려진 오불도로 중앙의 항마촉지인 부처를 중심하여 하품중생인을 지은 부처를 좌우에 각각 2구씩 배치하였다. 적색 대의에 육계(肉 )가 뾰족하며 정상계주는 빨갛게 처리하여 동벽의 오불도와 같은 솜씨임을 알 수 있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5.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


입상으로 백련좌를 딛고 서있으며, 녹색 두광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어깨 위로는 보발이 길게 늘어져 있고 가슴에는 흉식이 보이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정병을 들고 있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6. 보살도(菩薩圖)


관음보살도와 서로 마주보게 자리한 상으로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어 엄지와 무명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앞쪽으로 하여 경책을 들고 있다. 순번 7 관음보살도와 같은 솜씨를 보여주어 18∼19세기경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7.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

 


정면을 향하여 앉아있는 모습의 보살상으로 어깨 위로는 보발이 드리워져 있으며, 둥근 모양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다. 채색이 많이 박락되어 정확한 형태는 잘 알 수 없지만 연꽃 자방 위에 앉아 선정인을 취하고 있는 듯하며, 머리에는 보관의 흔적이 보인다. 벽 테두리선과 세련된 필치로 보아 15세기경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8. 9. 연화당초향로도(蓮華唐草香爐圖)


향목(香木)을 꽂은 중앙의 향로를 중심으로 거의 좌우대칭되게 연화당초문을 배치하였다. 당초문대는 비교적 자연스러우나 연꽃무늬의 도식화는 이 그림이 18∼19세기경에 그려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10.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왼 무릎을 구부리고 오른 다리를 편 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도(天人圖)이다. 몸은 정면 향인데 비하여 얼굴은 우측으로 돌려 역동적 자세로서 두 손으로 박(拍) 형태의 악기를 다루고 있다. 흩날리는 치마자락과 천의자락, 머리띠로 말미암아 유유히 떠가는 듯 하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11.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생황(笙簧)을 연주하며 하늘을 날고 있는 천인그림이다. 두 무릎을 모두 구부린 채 몸과 얼굴을 한 방향으로 하여 몸이 활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곡선을 그리며 길게 흩날리는 천의자락과 머리띠로 운동감이 강조되고 있다. 비천의 앞뒤로는 바람개비 모양의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12. 입불도(立佛圖)


두광부분이 크게 손상되긴 하였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잘 남아있다. 우향한 입상으로 오른손은 하복부, 왼손은 어깨 위에 두어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적색 대의에 양록색 하의를 입었으며 끝단은 검은색으로 처리하였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인물의 형태, 색채, 필선으로 보아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13.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입불도와 서로 대칭되게 자리한 정면향의 지장보살도로서 오른손으로는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석장을 잡고 왼손으로는 구슬을 받쳐들고 있다. 이 역시 적색법의를 착용하고 있는데, 옷의 처리와 끝단의 표현기법 등이 입불도와 한 솜씨임을 알게 해준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14.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


순번 10 동벽 관음보살도와 서로 마주한 곳에 북쪽을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둥근 모양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으며, 마치 구름 위를 떠가듯 흰색 연꽃잎 배를 타고 있다. 아래쪽 멀리로는 구름 위로 솟아오른 바위산을 선으로 나타내었다. 솜씨로 미루어 보아 18∼19세기경 작품으로 생각된다.


15. 16. 연화당초향로도(蓮華唐草香爐圖)


향목을 꽂은 중앙의 향로를 중심으로 연화 당초문을 대칭되게 묘사하였다. 자연스러운 당초무늬와는 달리 연꽃이 도안화되어 다소 경직된 느낌이다. 동벽의 연화당초향로도와 같은 시기인 18∼19세기경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17.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거의 'V'자에 가까운 자세로 입에는 퉁소(洞簫)를 물고 있는데, 마치 하늘 위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듯 하다. 천의 자락과 치마자락 역시 위로 휘날려 운동감을 더욱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앞 뒤 공간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구름 무늬가 그려져 있다. 비천상 앞부분의 벽체가 떨어져 나간 부분을 보면 본래의 벽체와 그림 일부분이 엿보인다. 바탕색채와 뇌록색 무늬, 세련된 필치, 그리고 벽 테두리선 등이 삼존불도나 아미타래영도 등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후에 그 위에 덧 그렸음을 알 수 있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18.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순번 17과 서로 마주보게끔 배치된 주악비천도로 입으로는 추 모양의 훈(塤)이라고 생각되는 악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불고 있다. 쭉 뻗어 있는 두 다리와 길게 흩날리는 천의자락으로 인하여 유유히 떠가는 것과도 같다. 앞뒤의 여백에는 바람개비 형태의 구름무늬가 그려져 있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19. 연화당초향로도(蓮華唐草香爐圖)


동벽 순번 11과 동일하다.


20.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입에 훈과 같은 악기를 물고 하늘을 떠가는 주악천인상으로, 몸과 얼굴이 정면향을 하여 다소 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앞 뒤 공간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있다.


21. 연화당초향로도(蓮華唐草香爐圖)


동벽 순번 11과 동일하다.


22. 23. 24. 보상모란문도(寶相牧丹文圖)


중앙에 화분을 마련하고 그곳으로부터 가지가 뻗어 나온 것처럼 표현한 그림으로, 흰색과 붉은 색의 탐스러운 보상모란문을 거의 좌우 대칭 되게 배열하였다. 꽃과 꽃 사이의 여백을 짙은 녹색의 잎사귀로 빈 틈 없이 꽉 채워놓아 무성한 느낌을 준다. 18∼19세기경에 덧 그린 그림으로 떨어져 나간 벽체 밑 부분 그림을 보면 매우 세련된 필치와 선명한 색채를 엿볼 수 있다.


25.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다른 주악비천도와 같은 솜씨의 그림으로 하늘을 날며 왼쪽으로 하여 젓대(大대)를 불고 있다. 앞 뒤 공간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구름이 그려져 있다. 18∼19세기경 조성으로 추정된다.


26. 연화당초향로도(蓮華唐草香爐圖)


동벽 순번 11과 동일하다.


27. 보상모란문도(寶相牧丹文圖)


남벽 26·27·28과 동일하다.


28. 당초문도(唐草文圖)


당초무늬만 좌우 대칭되게 그려져 있다. 좌우로 뻗친 넝쿨무늬의 세련된 필치와 벽 테두리 선 긋기 방법으로 보아 15세기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9. 보상모란문도(寶相牧丹文圖)


남벽 26·27·28과 동일하다.


이들 벽화 중 삼존불화와 아미타래영도 2점과 15세기 추정의 관음보살도, 당초문도 2점 등 4점은 특히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보물 제1614호,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 벽화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 벽화(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는  1997년 1월 16일에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보존처리 한 후 사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화면은 중방부분이 휘어지면서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아 제 모습을 상당히 잃었으나 구도 및 색채 그리고 일부의 문양 등은 판별이 가능하다. 내용은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는 도상으로, 남아 있는 화기를 통해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실 때의 장면을 도해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전반에 걸친 무거운 적·녹색 위주의 채색을 사용하여 다소 묵직한 느낌이 강하지만, 본존불의 선홍색 법의와 호분이 많이 가미된 연하늘색과 연분홍색 등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뛰어난 필치와 밀도 높은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벽화는 현재 정확한 제작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대웅전 해체수리 때 종보 하단에 덧댄 통보아지 상면에서 발견된 1435년의 「대웅전중창기」, 1436년의 정면 어칸 기둥 묵서명 등을 통해서 볼 때 1435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봉정사 대웅전벽화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로서 1476년 <강진무위사아미타후불벽화>와 함께 조선 초기 불화의 쌍벽을 이루는 벽화이며 이후 전개될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는 물론 여타 불회도(佛會圖)의 조형(祖型)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현재 준비중입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402호, 김해 은하사 대웅전 벽화


 

김해 은하사 대웅전 벽화(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는 은하사 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내부 벽면 전체에 그려져 있으며, 주제는 삼세불, 아미타내영, 보살상, 신장상, 나한상, 도인상, 모란 등으로 총 32점이다.


 전각 내의 좌우측 중심벽화인 삼불회도와 아미타내영도는 다른 벽화 간에 기법상 차이가 있는데, 다른 벽화보다 시기가 다소 앞서는 것으로 보이며 조선후기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세불 벽화는 대웅전 본존을 중심으로 좌측 벽면에 녹청안료를 전체적으로 펴 바르고 석가여래 입상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좌우에 배치하였으며, 육신부는 백색으로 육신선은 주색선으로 묘사하였다.

대웅전 본존을 중심으로 좌측 벽면에 녹청안료를 전체적으로 펴 발랐으나, 갈색으로 변색된 상태이다. 도상은 화면 가운데 석가여래 입상을 중심으로 왼쪽(향우측)에 약사여래, 오른쪽(향좌측)에 아미타여래 입상 등 총 3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답할연좌 위에 정면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육신부는 백색안료를 바르고, 육신선은 주색선으로 묘사하였다. 안면의 코는 콧등의 윤곽을 그은 뒤 콧방울을 이중으로 겹쳐 긋고, 비공은 먹을 발라 표현하였다. 원형 두광은 녹청을 비교적 짙게 바른 뒤, 테두리는 안쪽에서부터 백색·주색·적갈색·녹청색·백색의 순으로 윤곽선을 두르고 있다.


 벽화의 테마는 삼세불, 아미타내영, 보살상, 신장상, 나한상, 도인상, 모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웅전 전각 내의 좌우측 중심벽화와 그 외 벽화 간에 기법상 차이가 보여, 동시기에 모두 제작된 것으로 보기 힘을지만 대웅전 벽화중 좌우측 벽면의 중심벽화인 삼불회도와 아미타내영도는 다른 벽화보다 시기가 다소 앞서는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조선후기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